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기대한다

이찬우 목사
고통의 영성 – 필립 얀시, 폴 브랜드
이찬우 목사(관악금천공동체)

 

 

2009년 3월, 당시 섬기던 교회 청년들과 함께 운동을 하다가 쓸데없는 승부욕으로 다리뼈가 골절된 적이 있다. 그것도 웬만해선 잘 골절되지 않는 대퇴골 뼈가 세 조각으로 부러졌다. 약 40cm가 넘는 제법 긴 철심으로 부러진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헸다. 한동안 다리를 고정시키고 누워서 병원생활을 했다. 나름 병원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병문안 오시는 분들이 심심하지 말라고 책을 선물해주셨다. 그 중 제목부터 상당히 기분 나쁜 책이 있었다. 한 쪽 구석에 처박아놓았던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고통의 영성’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거들떠보지 않던 책을 퇴원한 후 읽기 시작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중에 책 제목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내용은 고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 특별히 공동체 영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물학에서 다세포 생물들 안에 있는 개별 세포들은 생존하기 위해 다른 세포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살아있는 세포들은 상처를 입으면 소리를 지르고 생물전체는 그 소리를 듣는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무슨 의학사전의 정의를 보는 것 같았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실제로 깨닫게 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6개월 정도 목발을 짚고 다녔다. 목발을 뗄 때쯤  쩔뚝거리며 한 발 한 발 딛게 되었다. 그러면서 방금 소개한 그 구절이 무슨 말인지 깨달아 한 동안 길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다리를 쩔뚝거리는 이유는 불편한 한 쪽 다리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단지 불편한 한 쪽 다리 때문에 쩔뚝거리며 걸었던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한 쪽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온 몸의 감각들이 더 긴장하고 온전한 다른 한 쪽 다리에 더 많은 힘을 주고 걷기 때문에 쩔뚝거리는 것이었다. 즉, 한 쪽 다리의 고통을 온 몸이 분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영성은 고통의 영성이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공동체 안에 고통을 받는 지체가 있다면, 약간 부족함이 느껴지는 지체가 있다면, 발달된 신경과 감각으로 그 고통을 분담하여 함께 걸어가는 것이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는 놀라운 특권의 상실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하다고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쩔뚝거릴지라도 그래서 조금 늦게 간다할지라도 온 몸의 신경이 긴장해서 고통을 분담하여 함께 걸어가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신앙공동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사신 교회 공동체임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인식한다면, 부족하고 힘들어하는 지체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분담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영성이고 그것이 신앙일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는 놀라운 특권이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몇 년 했는지 무슨 직분인지가 그 사람을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이야기해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섬김과 희생의 헌신이 그 사람의 영성과 신앙을 평가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치열한 전쟁터이다. 그래서 도태되면 버린다. 돌아보지도 않고 버려 버린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다르다. 아니, 세상과 완벽하게 달라야만 한다. 고통 받고 신음하는 지체가 있다면 그 지체에게 손을 내밀어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것, 그래서 함께 가기 위한 노력과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그것이 교회공동체일 것이다.
고통의 영성은 예수님의 영성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죄악 가운데 고통 받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렇다.
얼마 전 공동체를 섬기게 되면서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공동체 안에 이런 저런 모습의 지체들이 있을 것이다. 공동체 식구 전부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아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공동체 안에서 나름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반대로 ‘이 정도면 됐지’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런 다양한 분들이 서로의 고통을 사랑으로 분담하며 늦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기대한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5, 개역개정).”
/ 이찬우 목사(관악금천공동체)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