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공동체 – 일산 사랑의집 아웃리치
강촌공동체는 지난달 18일 다랑방 아웃리치로 일산에 있는 사랑의 집에 다녀왔다. 그곳은 7살 인우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29명의 자폐 및 지적장애 형제자매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사랑의 집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한방에 둘러 앉아 예배를 드렸다. 공동체 담당목회자인 이준호 목사님은 가장 어린 아이인 인우의 이름을 손바닥에 써놓으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손바닥에 써놓은 이름은 지워질 수 있지만 하나님 마음에 새긴 한명 한명의 이름은 지워질 수 없습니다.”
그날 나와 박경희 순장님은 인우와 인수, 민수를 차에 태우고 파주에 있는 임진각으로 나들이를 갔다. 숙소에 남아 있던 공동체 식구들은 저녁 준비와 청소를 하기로 했다. 특히 이때는 전국이 메르스로 인해 야외활동과 외부 봉사를 제한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의 섬김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와 함께한 몇몇 친구들은 몸이 많이 불편하고 장애도 심했다. 임진각에 도착하자마자 한 친구의 돌발행동으로 여 집사님이 얼굴을 다치는 일이 있었고, 결국 그 친구는 감당할 수 없는 격한 행동으로 사랑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을 잃어버리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우리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연과 연못에 있는 소금쟁이도 보았다. 준비해 간 과자와 음료도 들판에 앉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숨바꼭질도 했다. 짧은 나들이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려는데 한 여자아이가 돌아가기 싫은지 땅에 주저앉고 발버둥을 쳤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두 명의 선생님이 겨우 그 아이를 진정시키며 차량에 탑승시켰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일이 있었고 난감한 상황들도 많았다. 아홉 대의 차량이 무사히 사랑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한번도 꺼낸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 기쁨이 사라졌다. ‘하나님 제가 기도한 것은 이런게 아니에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믿지 않는 남편이 일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온 다음날 홀로 아웃리치를 왔다. 이전에도 핸드폰을 분실한 후 찾은 경험이 있었기에 남편의 핀잔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받지 않는 핸드폰을 뒤로 하고 사랑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함께한 집사님들이 걱정해주시고 하면 우리가 받은 은혜와 사랑에 누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한 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데 내 맞은편에 앉은 집사님이 내 핸드폰을 들고 계셨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두 아들과 지인 몇몇과 함께 세곡동에 있는 다니엘 복지관으로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섬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니엘 복지관 아이들과 함께했던 일 년의 시간은 참 많이 행복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갑자기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 한편으로 미안했다. 하나님은 내게 ‘잃어버렸던 마음’과 ‘잊고 살았던 아이들’, ‘천사’들을 생각나게 해주신 것이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핸드폰을 잃어 버렸을 때 순간 기쁨이 사라진 것처럼 제가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못했을 때 슬프셨나요? 세상 사람의 잣대로는 그 아이들이 부족하고 힘든 삶을 살지만 주님의 시각에서는 제가 너무도 부족하고 불순종한 삶, 불쌍한 삶을 살고 있지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수가 연을 날려 보고 싶어 했는데 그 흔한 연 하나 사 줄 수 없었던 짧은 시간과 상황을 주님은 아시지요?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인수가 연을 날릴 수 있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예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주님은 내게 눈물과 사랑, 긍휼의 마음을 주셨다. ‘딸아, 이제는 좀 더 나누며 살아라. 내가 너에게 준 사랑이 이것밖에 안되니?’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낮은 곳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싶다.
/ 박수미 성도(강촌공동체 평강6순)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