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탐방_살아 숨 쉬고 있는 기독교 역사를 만나다

대한민국 기독교 부흥의 뿌리 ‘서울’
살아 숨 쉬고 있는 기독교 역사를 만나다

 

본격적으로 여름 아웃리치가 시작됐지만 갈 사정이 안 되는 성도들도 있다. 아웃리치 현장에는 가지 못하더라도 이 여름을 뜻 깊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뜻 깊은 여름을 보낼 수 있을까. 숨어 있는 기독교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은 어떨까.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 숨어 있는 기독교 유적지만 해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서울의 기독교 역사를 만났다.
/ 김현준 기자 khj@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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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대한민국 기독교 부흥의 뿌리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될 때 서울(한양)은 조선의 수도였다. 당연히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서울을 기점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미국 북감리회 소속 매클레이가 최초로 서울에 온 선교사다. 그는 고종으로부터 학교와 병원 사업을 허가 받았다. 비슷한 시기 미국 북장로회 소속 알렌 선교사도 서울에 왔다. 그는 의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에 정착한 최초의 선교사다.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부부가 인천에 도착한 이후 미국 북감리회와 북장로회는 정동에 선교지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조선선교를 시작했다.
성결교에서는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일본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과 정빈이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종로 염곡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세우고 전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파나 교회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러다 1921년부터 ‘성결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 조직을 갖추었다. 이렇듯 서울은 다양한 교파가 들어와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 곳곳에 기독교 유적지가 많다. 뿌리 깊은 교회도 많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서울을 기반으로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김양선 목사의 눈물로 세운 ‘한국기독교박물관’

 

7호선 숭실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 ‘한국기독교박물관’ 외관이 보인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은 3층으로 된 건물이다. 1층은 한국기독교역사실, 2층은 숭실역사실, 근대화와 민족운동사, 3층은 고고미술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기독교박물이 설립된 데에는 매산 김양선 목사의 역할이 컸다. 그의 눈물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양선 목사는 신성중학교, 숭실전문학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에 비밀결사대 ‘청구회’에 가입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평양지역 학생시위를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신산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교회사와 민족문화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교회사 자료를 모으고, 고고유물을 수집‧정리했다.
김양선 목사의 집안은 한국기독사를 표증하는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이다. 외할아버지 백홍준이 최초의 한글성경 번역 사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온 식구들이 전도, 교회개척, 교육사업, 기독교사 연구에 이르기까지 이 민족 복음화를 위해 노력했다.
김양선 목사는 해방 직후 북한에 있던 기독교 유물을 남한으로 옮겨 1948년 남산에 기독교 박물관을 설립했다. 남북한을 오가며 기독교 유물을 옮기는 중 부인과 딸을 잃었다. 기독교박물관은 김양선 목사의 목숨을 건 모험과 부인과 딸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고 나서야 설립될 수 있었다.
1967년 4월, 가족의 생명을 대가로 지켜온 3,600여점의 기독교 유물을 모교 숭실대학교에 기증했다. 그 유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한국기독교박물관이다.
한국기독교박물관 1층은 ‘한국기독교역사실’이다. 한국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기독교 일파 경교에 대한 자료도 있다. 경교는 7세기 중국에서 전래되었다. 당시 당나라와 교류가 있었던 통일신라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출토된 경교돌십자, 십자무늬장식, 마리아상이 전시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는 특이한 점 하나가 있다.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하기 전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다. 이것은 자생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예수셩교젼셔, 마가전복음서언해, 찬성시 등 당시 성경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2층은 ‘숭실역사실’이다. 숭실대학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믿음의 선배들이 민족 운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를 알 수 있다.
3층은 ‘고고미술실’이다. 토기류, 석기류, 금속기류, 유리, 옥제품 등 600여 점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문화발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다. 8월 31일까지는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토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한다.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

 

종로에 있는 새문안교회도 가볼만하다. 새문안교회는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로 알려져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집에서 14명의 한국인과 언더우드 목사, 로스 목사가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1972년에 교회신축으로 옛 예배당이 철거되었다. 지금은 예전 모습이 남아 있지 않지만 종탑은 남아있다. 단편적이나마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기념관 3층에 마련된 교회사료관에서 새문안교회의 역사와 한국교회사에 대한 다양한 문헌 및 사진자료를 볼 수 있다.
정동제일교회도 의미가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벧엘교회당’을 세우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인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기존의 예배당이 비좁아졌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97년 새 예배당을 세우고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이 바로 정동제일교회다.
정동제일교회 역시 한국기독교역사의 자료를 볼수 있다. 사회교육관 5층에 ‘만곤기독교역사자료실’이 있다. 그곳에 가면 아펜젤러 선교사가 사용했던 성찬기, 최병헌의 친필원고, 한문성경 등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 배재학당도 아펜젤러 선교사가 터를 닦았다. 1886년 6월 문을 연 학교의 이름을 1887년 고종이 ‘배재학당’이라고 지어줬다. 지금은 동관만 남아있다. 배재학당 시절 유일한 건물이다. 2층짜리 건물인데 지금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에 숨은 기독교 유적지가 많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정동 북장로회 스테이션터, 연동교회, 아현 감리교회 등 한국기독교사에 중대한 역할을 한곳들이 정말 많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꼭 서울지역 기독교 역사를 만나보자.
찾아가는 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주소: 서울시 동작구 상도로 369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입구역 3번 출구.
새문안교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9
정동제일교회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