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의 꿈이 나의 꿈이 되기를
이촌공동체 남아시아 H국 아웃리치
난생 처음 해외 아웃리치를 다녀왔다. 국내 아웃리치는 여러 번 갔지만 시간 없다는 핑계로 해외 아웃리치는 미루고 있었는데 선교팀장을 맡게 되어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이번 아웃리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아 시작부터 힘이 들었다. 이천선교본부 김홍주 목사님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셨다. 배려해주시고 믿음으로 해결해주셨다.
10주 동안 남아시아 H국 아웃리치를 빈틈없이 준비했다. 그리고 7월 23일 엄청난 짐을 싣고 도마가 선교했던 그 곳으로 향했다.
“내가 그 땅에 가다니…”격한 감동이 내 심장을 울렸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유일하게 타밀어를 쓰는 곳이다. 남부의 가장 큰 도시이자 덥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도마에 얽힌 일화가 많은 곳이다. AD 72년경 도마가 순교할 당시 남겼던 그의 발자취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130년에 불과한 한국선교 역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기독교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곳곳에서 재난의 흔적이 발견됐다. 수많은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힌두교가 지배적인 땅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는 현지 교회의 영혼들을 보면서 “우리가 제대로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틈 사이 비좁은 공간에 교회가 보였다. 그 곳에는 과부들이 모여 있었다. 무더위 속 골방에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서투르지만 타밀어로 찬양하고, 손을 잡고 교제했다. 서로의 마음을 느꼈다. 죄에 대해 고민하는 과부들의 간증을 듣고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려진 14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그룹홈을 방문했다. 그곳은 8~16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교제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니 곧장 친해졌다. 마치 천국의 아이들 같았다.
코너스톤(Corner Stone)교회에서 100여 명의 교인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다. 우리 팀은 타밀어로 특별 찬양을 준비했고, 김홍주 목사님이 설교하셨다.
교인들의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잊을 수가 없다. 4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됐다. 천장에 달려 있는 선풍기는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지지 못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청년들과 나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알려주며 청년들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심어주었다. 이곳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정마다 겪고 있는 폭력, 질병, 생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나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첫 해외 아웃리치에서 도마를 만났다. 이천년 전, 도마는 무엇 때문에 복음을 들고 떠났을까. 도마의 마음을 상상하며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시내 도처에 널린 힌두사원. 그 사이에 보이는 십자가. 그들에게 보이는 천국이 바로 도마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 꿈이 나의 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강찬옥 성도(이촌 공동체)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