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겠어요?”
특집_ 국내 아웃리치 여기로 가자!
강원도 태백시 탄광촌 성광교회의 눈물 나는 사연
석탄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1960년대 강원도 태백과 정선을 중심으로 탄광들이 세워졌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물 좋고 산 좋던 강원도 오지가 삽시간에 발전했다.모든 것이 풍요로웠다. 탄광촌 주민들은 그 시절을 “지나가던 개들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추억한다. 물질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영혼은 무척 가난했다. 전쟁터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곳이 바로 탄광이었다. 탄광촌 사람들은 석탄을 캐기 위해 날마다 목숨을 걸었다. 그 스트레스를 억지로 풀어내려고 소비적인 문화와 유흥문화가 발전했다. 미신이나 우상숭배 또한 횡행했다. 당시 수많은 교회들이 탄광촌 주민들의 불안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품고 돌보려고 노력했었다.
부의 상징이던 탄광촌이 지금은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석탄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석탄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많던 탄광들이 문을 닫고, 주민들도 탄광촌을 떠났다. 15만 명이 넘던 강원도 태백시 인구가 지금은 4만 명으로 줄었다. 몇 안 남은 탄광을 지키는 광부들과 그 곳을 떠나도 살 방법이 마땅치 않은 늙은 광부들만 남았다. 탄광촌 곳곳에는 과거의 영광을 증명하는 건물들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성광교회 강내봉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자기마저 떠나면 누가 탄광촌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느냐며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프고 안타까운 성도들과 노(老) 목사
사모가 아르바이트해서 근근이 교회 운영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 있는 성광교회는 연탄 같은 교회다. 부유하고 풍족한 사람들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탄광촌에 남아 있는 이웃들에게는 성광교회는 천국이 따로 없다.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과 늘 술에 취해사람대접 못 받는 알코올 중독자 노총각도 성광교회에 가면 가족과 이웃이 생긴다. 지난 25일 성광교회 주일 예배에는 어김없이 가장 소외된 이웃 5명이 참석했다. 예배당에 술 냄새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강내봉 목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성도들이 조금 독특하죠? 우리 교회에는 안타까운 성도들 밖에 없어요. 자기들이 보기에 건강한 성도들은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버리지요.”
강내봉 목사는 20년째 태백시 장성동 성광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강 목사가 처음부터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는 특수목회를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성광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는 이미 석탄산업 호황기가 끝나 있었고 도시는 죽어가고 있었다. 성광교회에는 시각장애인, 하반신마비 장애인, 연세 지긋한 할머니성도 3명이 있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목회했더니 성도가 80명까지 늘었는데 한 성도가 다른 교회를 세우겠다며 나머지 성도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그때 몸이 성한 성도들이 다 나가고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만 남았어요. 교회 아니면 갈 곳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사람들이죠. 그때부터 우리는 한 가족같이 살고 있어요.”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성도가 늘지 않았다. 어쩌다 주민들이 예배에 나왔다가도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듯이 교회를 떠났다.그런데 전도를 하지 않아도 성도들이 늘 때가 있다. 돌봐줄 가족이 없고, 오갈 곳 없는 소외된 이웃들이 성광교회에 가면 사람대접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하나 둘 찾아올 때다. 그 중에는 술 먹고 동네에서 온갖 말썽을 부리는 형제들도 많았다.“소위 문제아들 때문에 교도소에 면회도 가보고, 검사 바짓가랑이 붙잡고 사정도 하고 별짓을 다해봤어요. 어쩔 때는 제 속이 다 뒤집어져요.”
강 목사는 성도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고,사고를 치면 사정사정해서 경찰서에서 꺼내오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병원비가 없으면 돈을 빌려다가 내줬다. 누가 보면 목회자인지 사회복지사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다. 겨울이면 언덕 아래까지 몸이 불편한 성도들을 바래다주다 같이 넘어지고 뒹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강 목사도 대접받고 배려 받아야 할 나이다. 올해로 딱 일흔이다. 그런 그가 성도들앞에서는 늘 청춘이고 든든한 보호자다.“저는 괜찮아요. 이 사람들 제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어요.”
10년 전부터는 예배당을 쪼개 방을 만들어서 성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성도 3명과 함께 살았는데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자녀들이 모셔가고, 지금은 하체를 움직일 수 없는 주옥순 권사만 남았다. 주 권사는 성광교회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
나이 일흔의 목회자가 하반신마비 환자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모라도 곁에 있으면 좋을 텐데 강 목사와 아내 최정희 사모는 떨어져 살고 있다. 교회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최정희 사모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교단에서는 미자립교회 목회자에게 적게나마 지원금을 주는데 성광교회는 헌금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나오는 지원금도 없다. 교회를 운영하고 성도들에게 생활비라도 조금씩 나눠주려고 최정희 사모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원룸관리를 하고 금요일 저녁이면 성광교회로 온다. 이렇게 고생해서 번 몇 푼 안 되는 돈을 성도들을 돌보는데 대부분 쓴다. 후원자라도 있으면 숨통이 트이겠는데 후원자라고는 강 목사의 세 아들 뿐이다.
시끌벅적한 예배 한번 드려봤으면…
강 목사 부부의 소망은 참 소박하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성광교회 문 안 닫고 성도들 돌보다 하늘나라 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소망은 시끌벅적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이다.“우리 교회에도 아웃리치 좀 왔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시끌벅적하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몰라요. 벽화도 그려주고, 연탄도 좀 날라주고,전도까지 해줬으면 더 좋겠어요. 젊은이들 웃음소리를 동네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서울에서 성광교회까지 승용차로 3시간 걸린다. 먼 거리 때문인지 성광교회에서 아웃리치를 받아본 적이 손에 꼽힌다고 한다. 아직 국내 아웃리치 장소를 정하지 못한 공동체가 있다면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성광교회로 아웃리치를 가면 어떨까. 소외된 이웃들과 강내봉목사 부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성광교회 아웃리치에서는 낡아서 칠이 떨어지는 벽화를 새로 그리고, 강 목사와 성도들이 겨울을 든든하게 날 수 있게 연탄을 날라주고,이웃 주민 전도 등의 사역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재정적인 후원도 절실하다.
문의: 양재 농어촌선교회 010-2112-6685
성광교회 강내봉 목사 010-2301-0203
주소: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협심길 7-14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