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하나님께 벗어던지자!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시기심과 열등감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혼한 친구가 부럽고, 좋은 회사 다니는 친구가 부럽고, 재테크 잘하는 친구가 부럽습니다.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사는데 여전히 저는 그들보다 낫지 않습니다. 신앙인으로서 그들을 축복하고 전도해야 하는데, 그들이 신앙까지 가지면 제가 나은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서 기쁨으로 축복해주지도 못하고, 전도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어떻게 해야 이 열등감이 없어질까요?”
열등감이란 자기자신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저마다 열등감이 있다. 다만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드러내면 남이 무시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비교의식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대적인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무의식 중에 끝도 없이 비교한다. 누구 키가 더 큰지, 누가 돈이 더 많은지, 누구 가족이 더 잘났는지. 수많은 비교를 하면서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아버지의 월급을 비교한다고 한다. 비극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애정결핍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졌다. 사랑을 받아야 살아나고, 사랑받지 못하면 주눅든다.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하면 애정결핍이 생긴다. 그 결핍이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열등감은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현실도피형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일은 우선 피하고 본다. 엘리야가 대표적인 현실도피형 인간이다. 둘째, 나약한 겁쟁이형이다. 이 사람들은 모든 일에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다. 스스로를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뒤떨어진다 생각하고 모험이나 경쟁을 피해 숨으려고만 한다. 무시를 당해도, 기분이 나빠도 참는다. 이길 자신이 없어서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셋째, 유머형이다. 큰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 한다. 약점을 들키느니 한 번 망가지고 말겠다는 작전이다. 넷째, 줏대 상실형이다. 열등감은 자존감과 반비례한다. 열등감이 높으면 자존감이 낮다. 남의 눈치 보느라 본인 주관이 없다. 이리저리 휘둘린다. 다섯째, 공격형이다. 열등감은 분노를 잔뜩 머금고 있다. 본인의 열등감을 들키지 않으려고 타인을 공격적으로 쏘아붙인다. 몇 해 전 강남역에서 일어났던 ‘묻지마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남자가 그 분노를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에게 푼 것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길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열등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첫째, 열등감을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몸이 불편했지만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대신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가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약함을 주님의 강함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한다. 괜히 부자인 척, 괜히 교양 있는 척, 괜히 괜찮은 척한다. 위선으로 감추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 “나 대학 안 나왔어”, “내가 잘생긴 건 아니지”, “나 지금 백수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 나의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지만 들춰보면 그만한 문제 없는 사람도 없다.
둘째, 믿음의 눈으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의 눈으로 점수 매기듯이 뜯어보면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자. 꽤 괜찮은 모습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별로인 사람이 없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다 잘 될거야”라고 하루 세 번,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자.
셋째,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큰 열등감을 느꼈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심해져서 다윗을 죽여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잘못된 비교는 상대에 대한 증오를 낳고, 현재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할 만큼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면 좋겠다. 열등감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았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 그대로 씩씩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장점이 분명히 있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되 나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열등감을 하나님께 벗어던지자. 당당한 삶이 시작될 것이다.
/ 이정환 목사(송파B공동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연약함이 건네는 위로> 저자)
또 다른 이유는 애정결핍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졌다. 사랑을 받아야 살아나고, 사랑받지 못하면 주눅든다.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사랑받지 못하면 애정결핍이 생긴다. 그 결핍이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열등감은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현실도피형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일은 우선 피하고 본다. 엘리야가 대표적인 현실도피형 인간이다. 둘째, 나약한 겁쟁이형이다. 이 사람들은 모든 일에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다. 스스로를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뒤떨어진다 생각하고 모험이나 경쟁을 피해 숨으려고만 한다. 무시를 당해도, 기분이 나빠도 참는다. 이길 자신이 없어서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셋째, 유머형이다. 큰 웃음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 한다. 약점을 들키느니 한 번 망가지고 말겠다는 작전이다. 넷째, 줏대 상실형이다. 열등감은 자존감과 반비례한다. 열등감이 높으면 자존감이 낮다. 남의 눈치 보느라 본인 주관이 없다. 이리저리 휘둘린다. 다섯째, 공격형이다. 열등감은 분노를 잔뜩 머금고 있다. 본인의 열등감을 들키지 않으려고 타인을 공격적으로 쏘아붙인다. 몇 해 전 강남역에서 일어났던 ‘묻지마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남자가 그 분노를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에게 푼 것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길을 가로막는다. 따라서 열등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첫째, 열등감을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몸이 불편했지만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대신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가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약함을 주님의 강함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한다. 괜히 부자인 척, 괜히 교양 있는 척, 괜히 괜찮은 척한다. 위선으로 감추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냥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 “나 대학 안 나왔어”, “내가 잘생긴 건 아니지”, “나 지금 백수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 나의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지만 들춰보면 그만한 문제 없는 사람도 없다.
둘째, 믿음의 눈으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의 눈으로 점수 매기듯이 뜯어보면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보시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자. 꽤 괜찮은 모습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별로인 사람이 없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다 잘 될거야”라고 하루 세 번,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자.
셋째,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큰 열등감을 느꼈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심해져서 다윗을 죽여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잘못된 비교는 상대에 대한 증오를 낳고, 현재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할 만큼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면 좋겠다. 열등감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았다면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등감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 그대로 씩씩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장점이 분명히 있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되 나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 열등감을 하나님께 벗어던지자. 당당한 삶이 시작될 것이다.
/ 이정환 목사(송파B공동체, <내 마음이 아픕니다>, <연약함이 건네는 위로> 저자)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