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장애인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이 겪고 있는 고통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2020년 기준으로 약 260만 명에 달한다. 이를 5인 가족 기준으로 본다면 네다섯 가정 중에서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 더이상 나와 관계없는 남의 가정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장애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123만 명이 지체장애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청각, 시각, 뇌병변,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은 약 24만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9% 정도에 해당한다. 수치상으로는 9%에 불과하지만,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서 발달장애인 문제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 그 이유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 정책을 평가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바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 나머지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2020년 기준으로 약 260만 명에 달한다. 이를 5인 가족 기준으로 본다면 네다섯 가정 중에서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 더이상 나와 관계없는 남의 가정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장애인의 절반에 해당하는 123만 명이 지체장애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청각, 시각, 뇌병변,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은 약 24만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9% 정도에 해당한다. 수치상으로는 9%에 불과하지만, 장애인 정책과 관련해서 발달장애인 문제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 그 이유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 정책을 평가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바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 나머지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결코 평등하지 않은 재난
더 많은 관심과 배려 필요
더 많은 관심과 배려 필요
장애인사역을 섬기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가정의 소식을 종종 듣게 된다. 그로 인해 알게 되는 장애인 가정의 형편은 단순히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미 1년 이상 지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전혀 다른 차원의 끔찍한 고통이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학령기 발달장애인을 특수학교에 보내서 돌봄을 해결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다른 곳을 찾아 맡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맡길 곳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주간보호센터, 장애인 가족지원센터, 복지관 등의 돌봄에 의존했는데 이들 기관도 코로나19로 인해 지극히 제한적인 돌봄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어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된 것은 학령기 장애인들과 동일하다.
어쩔 수 없이 센터에 사정해서 간신히 최소한의 돌봄 서비스를 받고는 있는데 긴급돌봄을 제외하고는 센터를 운영하지 않는 상황이라 두 경우 모두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일을 주로 가정에서 감당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단순히 장애인 자녀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특수학교 등교가 늦춰지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됨에 따라 장애인 자녀를 혼자 둘 수 없는 부모가 생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생계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지역사회의 서비스 단절이 비장애인에게는 일시적 멈춤에 불과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얻은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 기술의 퇴행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복지관 혹은 주간보호센터에 갈 채비를 하고, 스스로 버스에 올라타고, 복지관이나 센터에 도착해서는 선생님과 활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일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 경우에 따라서는 십여 년 이상의 반복훈련과 교육으로 이뤄낸 소중한 결과이다. 장애인들에게 규칙적인 일상을 정착시키기까지 정말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코로나19가 빼앗아간 장애인들의 일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기나긴 노력을 또다시 요구한다.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사회성은 없지만 그나마 밖으로 나가 반복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립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그게 사라져 버렸다”면서 “가까스로 만들어진 규칙적인 일상이 너무 쉽게 무너져서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자녀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이 아이를 다시 집에서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데 또다시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서 무너진 일상이 다시 세워질 수 있을까 걱정되고, 혹시라도 무너진 일상이 회복이 안 되면 영영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걱정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지역사회의 돌봄 서비스의 일시적 중단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코로나19로 인해 발달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비장애인과 비교할 때 결코 평등하지 않다.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장애인들의 사회적 통합이 요원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지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의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장애인과 장애인 가정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야한다. 결코 평등하지 않은 재난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그들이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줘야 한다. 만약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지만, 장애인과 장애인 가정들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학령기 발달장애인을 특수학교에 보내서 돌봄을 해결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다른 곳을 찾아 맡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맡길 곳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성인 발달장애인들은 주간보호센터, 장애인 가족지원센터, 복지관 등의 돌봄에 의존했는데 이들 기관도 코로나19로 인해 지극히 제한적인 돌봄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어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이 된 것은 학령기 장애인들과 동일하다.
어쩔 수 없이 센터에 사정해서 간신히 최소한의 돌봄 서비스를 받고는 있는데 긴급돌봄을 제외하고는 센터를 운영하지 않는 상황이라 두 경우 모두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일을 주로 가정에서 감당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단순히 장애인 자녀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특수학교 등교가 늦춰지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됨에 따라 장애인 자녀를 혼자 둘 수 없는 부모가 생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생계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지역사회의 서비스 단절이 비장애인에게는 일시적 멈춤에 불과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얻은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 기술의 퇴행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복지관 혹은 주간보호센터에 갈 채비를 하고, 스스로 버스에 올라타고, 복지관이나 센터에 도착해서는 선생님과 활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일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보통 수개월에서 수년, 경우에 따라서는 십여 년 이상의 반복훈련과 교육으로 이뤄낸 소중한 결과이다. 장애인들에게 규칙적인 일상을 정착시키기까지 정말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코로나19가 빼앗아간 장애인들의 일상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기나긴 노력을 또다시 요구한다.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사회성은 없지만 그나마 밖으로 나가 반복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립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그게 사라져 버렸다”면서 “가까스로 만들어진 규칙적인 일상이 너무 쉽게 무너져서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자녀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이 아이를 다시 집에서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데 또다시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서 무너진 일상이 다시 세워질 수 있을까 걱정되고, 혹시라도 무너진 일상이 회복이 안 되면 영영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걱정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지역사회의 돌봄 서비스의 일시적 중단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코로나19로 인해 발달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비장애인과 비교할 때 결코 평등하지 않다.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장애인들의 사회적 통합이 요원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지는 것이고, 인간다운 삶의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장애인과 장애인 가정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야한다. 결코 평등하지 않은 재난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그들이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줘야 한다. 만약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지만, 장애인과 장애인 가정들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31년 만에 장애인 아들 찾은 사연
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감동적인 사연을 접했다. 잃어버린 장애인 아들을 무려 31년 만에 찾은 엄마 이야기다. 1990년 7월 전북 완주에서 만 6살 지적장애인 남자아이가 실종되었다. 당시 27살이었던 친모는 그 아들을 ‘굴착기를 좋아했던 소년’으로 기억했다. 그날도 소년은 좋아하던 굴착기를 구경한다며 나갔는데 그 길로 사라져버렸다. 친모는 아들이 실종된 지난 31년 동안 날마다 가슴 아파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함께 찾던 남편은 끝내 아들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아내는 남편처럼 아들도 죽은 줄로 알고 마음속에 품고 살려고 했는데 31년이라는 세월도 아들을 찾고자 하는 모정을 포기시키지 못했다. 최근 전북 완주경찰서에 다시금 실종신고를 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채취해서 제출했다. 그런데 유전자를 대조한 실종아동전문기관에서 올해 1월 친자로 추정되는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연락을 친모에게 보냈다. 재차 이뤄진 검사에서 두 사람의 유전자가 99.99% 일치해서 친자관계에 해당한다는 통보를 받고 31년 만에 잃어버렸던 아들을 만났다.
30대가 된 아들은 실종 당시 논산의 한 거리에서 발견되어 장애인복지시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30년 동안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너무 기쁜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이 기사를 접하면서 만약 지역사회 누군가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장애인을 좀 더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잃어버린 31년이 단축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가끔 인용하는 ‘Toy like me’라는 사이트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장난감들은 장애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청각장애인 헐크와 휠체어를 탄 슈퍼맨, 보청기를 끼고 휠체어를 탄 원숭이 치타, 장애인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산타와 같은 장난감들이다. 이 장난감들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비장애인들이 어릴 때부터 이와 같은 장난감(Toy like me)을 가지고 놀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장난감을 통해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장애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때 지역사회는 비로소 성숙한 공동체로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교회는 지역사회가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박철웅 목사(장애인사역본부장)
30대가 된 아들은 실종 당시 논산의 한 거리에서 발견되어 장애인복지시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30년 동안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너무 기쁜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이 기사를 접하면서 만약 지역사회 누군가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장애인을 좀 더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잃어버린 31년이 단축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가끔 인용하는 ‘Toy like me’라는 사이트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장난감들은 장애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청각장애인 헐크와 휠체어를 탄 슈퍼맨, 보청기를 끼고 휠체어를 탄 원숭이 치타, 장애인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산타와 같은 장난감들이다. 이 장난감들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비장애인들이 어릴 때부터 이와 같은 장난감(Toy like me)을 가지고 놀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장난감을 통해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장애인을 단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때 지역사회는 비로소 성숙한 공동체로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공동체로 부름을 받은 교회는 지역사회가 공동체로 변화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박철웅 목사(장애인사역본부장)
<발문>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