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관점의 전쟁

신앙에세이 
 
 
과거부터 전쟁은 언제나 치열했다. 결과에 따라 부족 혹은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모든 소유와 자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비록 총탄이 빗발치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 치열하고 처절하다. 우리는 이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전쟁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인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반드시 되어야 하는 어떤 상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과 욕망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 선명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인간에게는 창조의 순간부터 성취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셔서 동산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2:15).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에 에덴동산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존재했다. 지키기 위해 직면한 전쟁에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최초의 인류 아담은 무참히 실패했다. ‘지키라’는 명령에 대해 안일하기 짝이 없었고,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창조주의 축복도, 배우자와의 친밀함도, 에덴의 풍요함도 모두 빼앗겼다. 그리고 인류에게 메임을 물려주었다. 그 상태를 로마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죽음이 바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왕 노릇 했다면”(롬 5:17a). 
인간은 종, 패배자,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전략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셨다. 우리는 해방되었고, 자유자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같이 어리석은 일들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굳게 서서 자유를 지켜야 한다(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 5:1). 
이 전쟁의 이름은 바로 ‘관점의 전쟁’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보는 관점의 전쟁을 치렀다. ‘자신을 신이 되게 할 열매인가 아니면 죽음에 이르게 할 열매인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됐다.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도 이 관점의 전쟁이 아주 치열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마음에 내키는 관점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개성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생명과 죽음의 관점이 있고, 승리와 패배의 관점이 있다. 우리는 살게하는 관점을 취해야 하고, 그 관점 위에 인생과 사회를 세워가야 한다. 
C. S. 루이스는 이 전쟁에 군사들을 소집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님께 진실하고자 한다면 기독교인의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 침묵하면서 모든 것을 묵인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소리 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온누리교회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깨어있는 교회로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 
/ 조준목 목사(열린새신자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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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