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1-“쫄지 마라!”
멘토님, 알려주세요
라떼는 말이야
“쫄지 마라!”
“사는게 너무 팍팍합니다. 3포세대, 취업난, 갈수록 치솟는 집값과 결혼비용 등 생각할수록 숨이 턱턱 막히고, 자괴감이 들고 의기소침해집니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청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십시오.”
열정, 도전의식, 자신감, 시간, 체력으로 무장된 젊음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청년들도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누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안타까운 처지의 청년들도 많다. 아픈 손가락 하나 때문에 온 몸이 아프듯, 나를 포함한 모든 멘토들이 청년들과 함께하고,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 청년의 때를 살아내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들이 힘들 듯 나도 가장 혈기왕성했던 청년 시절이 힘들었다.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에는 시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청년 시절은 재정도, 경험도 부족하다. 외연도 좁고 안목도 일천하니 시행착오가 일상이다. 꿈은 현실 앞에 날아가 버리고, 숨은 턱에 차고, 새가슴이 되어버린다. 청년의 때에는 젊음이 특권인줄 모르고 지나쳤다. 후회와 아쉬움 속에 그 시절을 그리워해 보지만 다시 가고픈 생각이 없는 것은 그만큼 그때가 힘든 시절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청년의 때는 시대를 초월해서 철저한 광야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세월과 당당히 부딪혀야 한다. 좌절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우리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세울 때 먼저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섣부른 열정이나 자기(능력)중심적 삶을 통해 거침없이 꿈을 이룬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다. 요셉도 노예의 삶과 누명, 갖은 고초와 옥살이 가운데 믿음이 자랄 수 있었다. 그가 30세에 이집트 총리에 오를 줄 알고 기다렸다면 믿음은 결코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십수년의 자기성찰 시간을 갖고난 뒤 비로소 쓰임받기 시작했다. 이집트 왕자로 명문 귀족의 혜택을 누리며 자신감에 가득찼던 모세는 그 넘치는 자신감과 성급한 열정이 화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 40년을 보내야 했다. 황량한 광야에서 자기성찰 시간을 통해 ‘다시 만들기’ 작업이 끝난 후에야 하나님이 모세에게 새로운 소명과 거룩한 열정을 주셨다. 성숙한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광야학교, 모진 고난의 길을 걷는 자기성찰의 훈련이 필수라는 것을 성경 속 인물들이 증거하고 있다. 깜깜한 시절, 가난한 심령을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채울 때 비로소 길이 열리고 쓰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니 지금 고난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사인(Sign)이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의 다른 말이 연륜(年輪)이다. 나이테는 보통 1년에 하나씩 생기는데, 기후 변화가 없는 열대우림지역의 나무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하지 않은 인생이다. 고난 수만큼의 연륜이 우리의 영적 근육을 담보하고, 우리가 단단히 세워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금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부디 믿음의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기를, 말씀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은 “근심하지 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말씀한다. 인생에 바람 잘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청춘의 아픔이 인내를 키우고, 거룩하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면 이 아픔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연단과 돌이킴이 반복되는 인생 가운데 때로는 모진 폭풍을 만나서 기진하여 쓰러질 것 같지만 크리스천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떤 상황도 넉넉히 이겨내리라 확신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내가 증인이고, 내 삶이 그 증거이다. 브엘세바의 황량한 벌판 그 무섭고 떨리는 장소에서 야곱이 베고 잤던 돌베개가 ‘하늘의 문’이 되고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었다. ‘폐허의 산’ 호렙 산 위에 있던 왜소하고 볼품없는 가시덤불이 부르심의 장소가 되었다. 대단한 곳에만 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사각(死角)에도 오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힘든 상황과 환경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쫄지 마라! 우리는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사는 크리스천 아닌가! 끝 모를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가? 분명히 끝이 있다는 믿음과 폭풍이 지나고 나면 새롭게 된 자신을 바라보며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의 감사제목이 쏟아져나올 거라는 믿음이 오늘을 넉넉히 살아내게 할 것이다. 주 안에서 당당히, 가슴 쭉 펴고 마음껏 젊음의 특권을 누리면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 심희돈 장로(여호수아청년부 대표멘토)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 청년의 때를 살아내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들이 힘들 듯 나도 가장 혈기왕성했던 청년 시절이 힘들었다.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에는 시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청년 시절은 재정도, 경험도 부족하다. 외연도 좁고 안목도 일천하니 시행착오가 일상이다. 꿈은 현실 앞에 날아가 버리고, 숨은 턱에 차고, 새가슴이 되어버린다. 청년의 때에는 젊음이 특권인줄 모르고 지나쳤다. 후회와 아쉬움 속에 그 시절을 그리워해 보지만 다시 가고픈 생각이 없는 것은 그만큼 그때가 힘든 시절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청년의 때는 시대를 초월해서 철저한 광야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세월과 당당히 부딪혀야 한다. 좌절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우리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세울 때 먼저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섣부른 열정이나 자기(능력)중심적 삶을 통해 거침없이 꿈을 이룬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다. 요셉도 노예의 삶과 누명, 갖은 고초와 옥살이 가운데 믿음이 자랄 수 있었다. 그가 30세에 이집트 총리에 오를 줄 알고 기다렸다면 믿음은 결코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십수년의 자기성찰 시간을 갖고난 뒤 비로소 쓰임받기 시작했다. 이집트 왕자로 명문 귀족의 혜택을 누리며 자신감에 가득찼던 모세는 그 넘치는 자신감과 성급한 열정이 화가 되어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해 40년을 보내야 했다. 황량한 광야에서 자기성찰 시간을 통해 ‘다시 만들기’ 작업이 끝난 후에야 하나님이 모세에게 새로운 소명과 거룩한 열정을 주셨다. 성숙한 인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광야학교, 모진 고난의 길을 걷는 자기성찰의 훈련이 필수라는 것을 성경 속 인물들이 증거하고 있다. 깜깜한 시절, 가난한 심령을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채울 때 비로소 길이 열리고 쓰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니 지금 고난받고 있다면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사인(Sign)이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의 다른 말이 연륜(年輪)이다. 나이테는 보통 1년에 하나씩 생기는데, 기후 변화가 없는 열대우림지역의 나무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하지 않은 인생이다. 고난 수만큼의 연륜이 우리의 영적 근육을 담보하고, 우리가 단단히 세워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지금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부디 믿음의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기를, 말씀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은 “근심하지 마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말씀한다. 인생에 바람 잘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청춘의 아픔이 인내를 키우고, 거룩하게 하고, 단단하게 한다면 이 아픔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연단과 돌이킴이 반복되는 인생 가운데 때로는 모진 폭풍을 만나서 기진하여 쓰러질 것 같지만 크리스천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떤 상황도 넉넉히 이겨내리라 확신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내가 증인이고, 내 삶이 그 증거이다. 브엘세바의 황량한 벌판 그 무섭고 떨리는 장소에서 야곱이 베고 잤던 돌베개가 ‘하늘의 문’이 되고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었다. ‘폐허의 산’ 호렙 산 위에 있던 왜소하고 볼품없는 가시덤불이 부르심의 장소가 되었다. 대단한 곳에만 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사각(死角)에도 오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힘든 상황과 환경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쫄지 마라! 우리는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사는 크리스천 아닌가! 끝 모를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가? 분명히 끝이 있다는 믿음과 폭풍이 지나고 나면 새롭게 된 자신을 바라보며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의 감사제목이 쏟아져나올 거라는 믿음이 오늘을 넉넉히 살아내게 할 것이다. 주 안에서 당당히, 가슴 쭉 펴고 마음껏 젊음의 특권을 누리면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복한다.
/ 심희돈 장로(여호수아청년부 대표멘토)
*‘라떼는 말이야’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멘토님들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조언과 위로를 건네주는 코너이다. 청년들이 고민이나 사연을 보내주면 대학청년부 멘토들이 조언과 위로를 선물한다. 고민이나 사연 보내는 곳: joo@onnuri.org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