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이데올로기보다 복음!

전문가 기고

호국보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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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대학생들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져 싸웠지. 어른들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이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데모하지 말라고 걱정했지만, 그나마 이 정도 민주화가 된 건 미얀마처럼 피 흘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 준비나 돈 버는 것 외에는 도무지 의식이 없는 것 같아!”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자주 입에 올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꼰대’라는 호칭을 들을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태극기집회가 한창이던 때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곤혹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가족끼리 식사하다 아버지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정권을 비판하면 자녀들과 언쟁이 붙었다. 부모와 정치색, 가치관 차이가 큰 자녀들은 아예 대화를 기피한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조금이라도 좌편향적이거나 우편향적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예배 중에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는 일도 있어 목사님들이 예배 때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이 신경이 쓰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도 그것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 20년 가까이 크리스천 CEO들과 함께해 온 기도모임에서다. 이 모임에는 사회적으로도 각 분야를 대표하고,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들이 함께 해왔는데 모이면 자신의 삶에서 역사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예수님을 회장으로 모시기 때문에 회장이나 조직도 없다. 그래서 정치인은 처음부터 회원으로 들이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인, 법조인 중에서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면으로 모이면 서로 말을 조심하는데 단체채팅방에서 보수 야당의 비례대표 한 분이 태극기집회 공지를 올리자 진보 여당 의원이 반발하고 나가버리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경색되었다. 이쯤 되니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지방색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신라와 백제, 고구려와 신라의 싸움 같았다. 방장인 나한테 항의와 우려가 담긴 전화들이 오기 시작했다. 모임을 해체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당혹감과 실망감을 느꼈다. 한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예수님을 중심으로 가져온 정기모임이었지만 일단 코로나19를 핑계로 오프라인 모임을 중단하고 단체채팅방에 말씀과 회원들의 동정만 공유하고 있는데 왠지 옛날 같지 않다. 
나는 이데올로기가 복음의 가치보다 앞설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25 한국전쟁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5월과 6월이 되면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며 몸살을 앓는다. 5월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고, 6월에는 6.25 한국전쟁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SBS에서 종영한 ‘오월의 청춘’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1980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며 희생자를 통계로만 보기에는 모든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대로 원수지간인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처럼 대공수사과장의 아들과 할아버지 때부터 빨치산 낙인이 찍힌 집안의 청춘남녀가 갖은 훼방 속에서도 수채화 같은 사랑을 키워나가지만 결국 5.18로 인해 꿈과 사랑이 짓밟힌다. 희생자 중에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던 만삭의 임산부도 있었고, 귀가하던 고등학생과 어린 초등학생도 있었다. 외할머니와 함께 숨진 5살 어린이도 있고,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는 행방불명자도 적지 않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불씨는 7년 후인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다.
지난 6월 6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 ‘재일학도의용군 포화 속으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한반도는 비극의 전장이 되었다. 불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무기력하게 밀려나는 국군에 낙동강 방어선이 최후의 전선이 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위기를 맞고 있던 그때 병역 의무도, 참전 의무도 없었지만 기꺼이 바다를 건너와 전쟁의 포화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조국 수호를 위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들이다. 맥아더 사령부와 함께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천 앞바다에 도착한 이후 원산을 거쳐 함흥, 나진, 압록강 일대까지 진격하고, 장진호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쳐 혁혁한 공을 세운 재일학도의용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뤘다. 그들은 일본 명문대학 유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외친 ‘조국을 구하는 길에 군번도 계급도 중요하지 않다’는 구호는 뜨거운 참전 열기를 말해 준다. 나라를 잃은 설움과 차별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재외동포들이었다. 도쿄와 오사카, 규슈 지역의 15개 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원 입대자들이 모여들었고, 신체검사 등을 통해 최종 선발된 642명이 1진부터 5진까지 나뉘어 차례로 구국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전황이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3년 동안의 전쟁에서 국군과 미군 각 부대에 배속돼 참전했던 재일학도의용군 642명 중에서 135명이 전사했다. 그들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군대에 남아 장교나 하사관으로 오늘날 한국군의 초석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사기획 창> 블로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그 중부전선에서 산화한 청년들, 1999년 6월 15일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함정과 서해교전을 벌이다 순직한 장병들도 우리의 자녀들이다.” 
 
교회 안에서 이데올로기가 
복음의 가치보다 앞서지 않도록 
 
6.25 한국전쟁은 1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그 이야기만 꺼내면 젊은 사람들은 라떼를 말하는 꼰대 세대의 한풀이나 옛날 전쟁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한국전쟁에는 사상 유례 없는 총 41개국(16개국에서 전투참전, 5개국에서 의료지원, 20개국에서 물자지원)이 참전했다. 수많은 젊은이가 전쟁에 참전해서 흘린 피의 대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전사자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상이군경회, 월남참전전우회, HID북파공작원, 고엽제전우회, 재향군인회 모두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다. 
비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어디 이뿐이랴! 온누리교회가 매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와 1월 1일 신년예배를 드릴 때 마지막 순서로 다 같이 일어나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태극기가 극보수 애국단체, 꼰대들의 깃발처럼 여겨지는 것이 가슴 아프다. 미국인들이 평일에도 성조기를 집과 사무실에 게양해 놓고, 지도자들은 언제나 프로필 사진으로 성조기를 세워 놓듯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도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기성세대들은 ‘1980년 광주’에 대해 호남에서 일어났던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으로 소중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이데올로기가 복음의 가치보다 앞서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故 주기철 목사님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것은 일제나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국전쟁 때 나환자를 돌보던 故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살해한 공산군을 양아들로 맞아들일 수 있었던 용서의 힘도 예수님의 사랑을 좇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최근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며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 헛되지 않도록, 선교의 문을 통해 새 생명의 복음이 그 땅 가운데 뿌리 내리도록 기도해야 한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기업인)
<발문>
교회 안에서 이데올로기가 복음의 가치보다
앞서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故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는  
온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故 손양원 목사님의 용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좇았기 때문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