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부활에서 바라본 십자가


 
프랑스에서 단기선교 활동을 하던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길을 걷고 있는데 한 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그 미술관에 들어갔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던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빠르게 작품들을 스캔하며 지나갔다. 저 코너만 돌면 드디어 출구였다. 출구로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구석 끝에서 나를 강하게 붙잡는 한 작품이 있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찌릿찌릿한 전기가 온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 대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시선과 십자가의 모양이 일반적인 모습과 사뭇 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시선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모양이 달랐다. 단순히 나무를 교차로 겹쳐놓은 것이 아니라 활과 같은 모습이었다. 예수님의 두 팔이 달린 나무가 위를 향하고 반원 모양으로 둥글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릴 팽팽한 활시위를 연상케 하는 십자가였다. 작가의 통찰에 무릎을 쳤다. 작가는 부활에서 십자가를 해석한 것이다.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빛의 조명 속에서 바라볼 때 감추어진 의미가 분명해진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실패요, 절망이요, 수치이다. 그러나 부활에서 십자가를 보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희망과 소망이 된다. 수많은 사람이 마을에서 골고다 언덕 위에 있는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를 저주라고 말했고, 실패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활해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골고다의 십자가를 내려다볼 때 십자가는 곧 은혜이자 승리였다. 
베드로는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는 예수님을 보고 절망을 느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터벅터벅 호숫가로 걸어갔다. 자신의 본래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위로해주셨다. 그 이후 베드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새 삶을 살아간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베드로에게 새 소망과 희망이 생긴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용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생겨난 소망으로 인함이다. 부활 이후 곧 앉게 될 예수님의 보좌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미리 내려다보았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는 결코 실패가 아니다. 영광이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몰려오고, 뜻하지 않은 아픔이 찾아오곤 한다. 반복되는 계획의 실패와 일상의 무너짐을 겪다 보면 짊어진 고난의 십자가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를 어깨에서 내려놓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다. 하늘 보좌에 예수님과 나란히 앉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보좌에서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절망의 십자가가 아니다. 소망의 십자가가 된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두려움을 가져다주지만, 부활에서 바라본 십자가는 희망을 가져다준다.  
마지막 날 우리 모두 부활해서 하늘 보좌에 나란히 앉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골고다의 십자가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것 봐. 십자가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지?”
/ 송동주 전도사(여호수아청년부) 
board image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