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낮은 곳, 더 작은 자에게
권사칼럼
/송보성 권사
(성동광진공동체)
“저 사람은 한낱 목수가 아닌가? 그 누이들도 여기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막 6: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습니다”(막 6:6).
우리에게 있는 상식과 경험이 편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이다.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세상에서 들리는 말을 듣고 너무 쉽게 행동하고 판단한다. 예수님은 천덕꾸러기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셨고, 간음한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사형수에게도 천국에 간다 하셨고, 금기시하는 사마리아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며 식량을 대신 할 정도로 기뻐하셨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에게는 회개할 필요조차 없다고 비난하셨다.
어느덧 나의 신앙도 기력이 쇠하였다. 지속적으로 거듭나고 갈고 닦아야 따를 수 있는 예수님의 길이 희미해진 것 같다. 일상을 따라 가는 권태를 느낀다. 이러한 일상에서 불협화음이 오는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기회로 보고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된다.“하나님은 피난처시니”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묵상하면서 내안에 있던 편견과 선입관이 무엇이었을까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작고 천한 낮은 자 속에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는 그 무리를 이루는 정해진 흐름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성령의 흐름이 주류에서 벗어날 때도 있다. 그럴 때 ‘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 알지어다’라는 찬양이 떠오른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가만히 기도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 속해있던 무리에서 떨어져야 했던 모세도 묵상하게 된다.어쩌면 그는 파라오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순을 깨달았기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있는 광야에서 무엇을 할까? 매주 무릎기도에서 기도하면서 알게 된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지금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자연히 자기소개서 작성과 입시와 진로상담을 하게 된다. 나의 사회 경험이 조금이라도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을 느끼게 된다. 많이 가짐이 우리의 영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게 작은 마음으로도 봉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있어 감사하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눔을 할 수 있는 지경이 넓어지기를 기도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내 주변 사람들과 서로의 자원을 활용하여 언제든지 도움이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만들 수도 있겠다.이제 내 주변의 사사로운 일상의 사건들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 내가 필요한 곳, 나의 나됨을 주신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이제 권사로서의 나의 직분은 교회 안에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낮은 곳, 조금 더 작은 자에게로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편견과 상식을 뚫고서 진정 주님의 뜻이 있는 곳이라면 교회가 주는 질서에 순종하며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한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