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선교 재능기부 ‘ON편지팀’-러시아 아웃리치
수동태와 능동태의 절묘한 조화
2000선교 재능기부 ON편지팀의 올해 여름 아웃리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공항의 거센 밤바람을 맞으며 시작됐다. 서둘러 겉옷을 꺼내 입고 종종걸음으로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러시아 땅을 밟았다는 게 실감났다. 선교사님들이 ‘눈과 얼음의 나라’라고 편지에 쓰시던 그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이번 러시아 극동지역 아웃리치는 ON편지팀의 첫 아웃리치였다. 편지로만 접하던 선교사님들을 만나서 교제하고, 현지의 필요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자 떠난 걸음이었다. 그동안 ON편지팀은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는 온누리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도정보지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선교사님들이 보내온 편지를 재능기부자들이 편집하고, 디자인을 입혀서 소책자로 만들어 중보기도자들에게 보내는 일이다.
나는 러시아가 속해 있는 유라시아 지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수년 동안 이 지역 선교사님들의 소식을 편지로 접해왔다. 수도인 모스크바뿐 아니라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지역의 선교사님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러시아는 몇 년 전 테러방지법이라는 명목으로 종교법을 강화하였고, 이로 인해 외국인의 포교 및 종교활동에 큰 제약이 생겨 선교사님들이 운신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도 선교사님들은 위축되지 않고 관계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이번 아웃리치에서는 편지로 만나던 분들과 교회를 실물로 접할 수 있었다. 편지로만 접하던 소식을 비로소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의 풍경까지 담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일행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마냥 눈물이 났다. 슬픔도 아니고 아픔도 아니었다. 희로애락의 정서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간절하고 애틋한 그 마음을 다시 기도로 올려드리곤 했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일찍이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 되어준 곳이다. 기근과 탐관오리를 피해 연해주 지역으로 갔다가 사할린으로 강제이주하게 된 ‘고려인’들은 러시아 곳곳에 흩뿌려져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그 땅에 정착했다. 황무지를 개간해서 ‘모범농장’을 일구고, ‘노동영웅’이라 불리기도 하던 고려인들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는데, 이 땅에 한국 선교사들이 들어오자 고려인들이 선교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선교사님들은 현지 사역에 힘쓸 뿐 아니라 북한을 품고 중보기도하며 통일한국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는 선교사님이 중보기도 모임에서 만났다는 러시아인 형제와 식탁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하루 15시간씩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러시아인 성도들과 한 번씩 북한에 들어가곤 한다고 했다. 비록 전도를 할 수는 없지만 북한 땅을 밟으며 기도하고 북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고 하였다. 우수리스크의 중국인 예배에서 만난 한족 크리스천들도 손수 만든 물품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간다고 했다.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짐작해보았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은 크게 보아 수동태이다. 자기 의와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면서 또 순간마다 싸우고, 매일 힘쓰는 능동태의 삶이기도 하다. 물설고 낯선 땅에 풀처럼 뿌리내린 선교사님들의 삶은 수동태와 능동태의 절묘한 조화 속에 있었다. 그분들의 기도와 예배와 삶 자체만으로 선교이기에 나는 선교사님들의 편지를 읽을 때 사역의 열매보다 선교사님들의 생각에 더욱 주목하게 될 것 같다.
/ 김효진 성도(ON편지팀)
2000선교 재능기부 ON편지팀의 올해 여름 아웃리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공항의 거센 밤바람을 맞으며 시작됐다. 서둘러 겉옷을 꺼내 입고 종종걸음으로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러시아 땅을 밟았다는 게 실감났다. 선교사님들이 ‘눈과 얼음의 나라’라고 편지에 쓰시던 그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이번 러시아 극동지역 아웃리치는 ON편지팀의 첫 아웃리치였다. 편지로만 접하던 선교사님들을 만나서 교제하고, 현지의 필요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자 떠난 걸음이었다. 그동안 ON편지팀은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는 온누리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도정보지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선교사님들이 보내온 편지를 재능기부자들이 편집하고, 디자인을 입혀서 소책자로 만들어 중보기도자들에게 보내는 일이다.
나는 러시아가 속해 있는 유라시아 지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수년 동안 이 지역 선교사님들의 소식을 편지로 접해왔다. 수도인 모스크바뿐 아니라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지역의 선교사님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러시아는 몇 년 전 테러방지법이라는 명목으로 종교법을 강화하였고, 이로 인해 외국인의 포교 및 종교활동에 큰 제약이 생겨 선교사님들이 운신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도 선교사님들은 위축되지 않고 관계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이번 아웃리치에서는 편지로 만나던 분들과 교회를 실물로 접할 수 있었다. 편지로만 접하던 소식을 비로소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의 풍경까지 담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일행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마냥 눈물이 났다. 슬픔도 아니고 아픔도 아니었다. 희로애락의 정서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간절하고 애틋한 그 마음을 다시 기도로 올려드리곤 했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일찍이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 되어준 곳이다. 기근과 탐관오리를 피해 연해주 지역으로 갔다가 사할린으로 강제이주하게 된 ‘고려인’들은 러시아 곳곳에 흩뿌려져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그 땅에 정착했다. 황무지를 개간해서 ‘모범농장’을 일구고, ‘노동영웅’이라 불리기도 하던 고려인들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는데, 이 땅에 한국 선교사들이 들어오자 고려인들이 선교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선교사님들은 현지 사역에 힘쓸 뿐 아니라 북한을 품고 중보기도하며 통일한국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는 선교사님이 중보기도 모임에서 만났다는 러시아인 형제와 식탁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하루 15시간씩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데, 러시아인 성도들과 한 번씩 북한에 들어가곤 한다고 했다. 비록 전도를 할 수는 없지만 북한 땅을 밟으며 기도하고 북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눈다고 하였다. 우수리스크의 중국인 예배에서 만난 한족 크리스천들도 손수 만든 물품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간다고 했다.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짐작해보았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은 크게 보아 수동태이다. 자기 의와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면서 또 순간마다 싸우고, 매일 힘쓰는 능동태의 삶이기도 하다. 물설고 낯선 땅에 풀처럼 뿌리내린 선교사님들의 삶은 수동태와 능동태의 절묘한 조화 속에 있었다. 그분들의 기도와 예배와 삶 자체만으로 선교이기에 나는 선교사님들의 편지를 읽을 때 사역의 열매보다 선교사님들의 생각에 더욱 주목하게 될 것 같다.
/ 김효진 성도(ON편지팀)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