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꼬헐뿔에 응답하신 하나님
CMN 라파팀_네팔
네팔 꼬헐뿔에 응답하신 하나님
의료선교팀 CMN 라파팀이 올해 처음으로 해외 아웃리치에 도전했다. 안산M센터 봉사자들을 주축으로 네팔의 작은 도시 꼬헐뿔 교회를 찾아 갔다. 아웃리치 60일이 남았을 무렵부터 릴레이 기도를 하면서 준비했다. 아웃리치 30일이 남았을 때는 광고와 소개를 한 덕분에 아웃리치 팀원이 많이 보충됐다. 의외로 20, 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지원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어우러진 환상의 드림팀이 모였다. 매주 모여 합심기도를 했고, 꼬헐뿔 교회 예배에서 부를 찬양과 간단한 네팔어를 연습했다.
비가 많이 온 탓에 꼬헐뿔은 마을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아한 교회건물을 보면서 선교사, 현지 목회자, 성도님들의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료를 받으러온 주민 대부분이 복부에 가스가 차는 병을 앓고 있었다. 햇볕이 강해서 피부병이나 외상환자도 많았는데 치료시기를 놓친 분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환자는 수두증을 앓는 4세 된 남자아이였다. 머리가 지나치게 부풀어 있었고 안구가 돌출되어있고 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통성으로 그 아이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었는데 힌두교인 부모가 다음 주일 또 아들을 안고 와서 기도를 받으셨다고 한다. 가버나움에서 행하셨던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지금 네팔 땅에서도 일어나기를 확신하며 계속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사흘 동안의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해를 가려 평소보다 낮은 기온을 유지해주셨다. 팀원들 간에도 단 한 번의 불협화음도 없었으니 우리가 기도한대로 미리 준비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졌다.
진료를 마친 다음날은 오지마을의 가정교회를 방문했다. 카스트제도 아래 있는 네팔에서 4계급의 최하위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s)들이 사는 마을에 세운 가정교회였다. 야무지게 다져진 토담집의 방안에 들어섰더니 벽에 제법 큰 나무 십자가가 박혀 있었다.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했다. 마당으로 나와 그곳 성도님들의 얼굴을 봤는데 꼬헐뿔에서 진료 중에 보았던 힌두교인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피부도 윤택해 보였다. 선교사님께서는 이분들은 카스트제도나 윤회설 등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가축을 사육해서 먹고 농사도 지어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경외하는 자에게 ‘영육의 복을 다 주시는 하나님’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번 아웃리치팀은 하나님께서 모아주신 것처럼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인재들로 채워졌다. 그야말로 환상의 드림팀이었다.
/ 박명희 집사(인천 온누리교회)
비가 많이 온 탓에 꼬헐뿔은 마을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아한 교회건물을 보면서 선교사, 현지 목회자, 성도님들의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료를 받으러온 주민 대부분이 복부에 가스가 차는 병을 앓고 있었다. 햇볕이 강해서 피부병이나 외상환자도 많았는데 치료시기를 놓친 분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환자는 수두증을 앓는 4세 된 남자아이였다. 머리가 지나치게 부풀어 있었고 안구가 돌출되어있고 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통성으로 그 아이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었는데 힌두교인 부모가 다음 주일 또 아들을 안고 와서 기도를 받으셨다고 한다. 가버나움에서 행하셨던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지금 네팔 땅에서도 일어나기를 확신하며 계속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사흘 동안의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해를 가려 평소보다 낮은 기온을 유지해주셨다. 팀원들 간에도 단 한 번의 불협화음도 없었으니 우리가 기도한대로 미리 준비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졌다.
진료를 마친 다음날은 오지마을의 가정교회를 방문했다. 카스트제도 아래 있는 네팔에서 4계급의 최하위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s)들이 사는 마을에 세운 가정교회였다. 야무지게 다져진 토담집의 방안에 들어섰더니 벽에 제법 큰 나무 십자가가 박혀 있었다. 마치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했다. 마당으로 나와 그곳 성도님들의 얼굴을 봤는데 꼬헐뿔에서 진료 중에 보았던 힌두교인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피부도 윤택해 보였다. 선교사님께서는 이분들은 카스트제도나 윤회설 등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가축을 사육해서 먹고 농사도 지어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경외하는 자에게 ‘영육의 복을 다 주시는 하나님’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번 아웃리치팀은 하나님께서 모아주신 것처럼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인재들로 채워졌다. 그야말로 환상의 드림팀이었다.
/ 박명희 집사(인천 온누리교회)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