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 있습니다!]차별이 아니라 구별!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에 대해 편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 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알려주세요, 목사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되고 정말 많은 논란과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기를 원하는 쪽에서는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 아직까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금의 법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확실한 법, 더 나아가 처벌할 수 있는 법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와 크리스천을 향해 “편협한 시각이며 구시대적 발상이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해질 수 있는 법을 반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우리에게 “차별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약 3:1, 9, 13). “내가 창조한 저 사람을 왜 너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차별하느냐? 내가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해서 구원한 저 사람을 왜 네가 차별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느냐? 그것은 죄다. 거기에는 심판이 있다”고 매우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처벌이 겁나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무서운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차별의 모습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문제는 차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구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은 계속해서 젠더 이슈,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차별에 대해서도 분명하시지만, 구별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하고 세심한 분이시다. 특히 죄의 문제, 죄 오염의 문제, 죄가 들어오는 문제에 있어서는 잔인하리만큼 철저하시고 단호하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왜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려야 하는가?’, ‘왜 예물을 구별해서 드려야 하는가?’, ‘다른 돈은 차별하시는 건가?’ 결코 아니다. 구별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결혼을 통해서 한 사람의 배우자만 선택해야 하는가?’ 그것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이 사람만을 구별해서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왜 세례를 받느냐?’도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 구별해서 드리겠다는 신앙적 선택이자 결단이다.
레위기 20장 24절에서는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분이 우리를 구별하셨다. 에스겔 44장 23절에서는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해서 가르치라고 하신다.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이고, 속된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자녀들과 가족들,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구별하라, 구별하리니, 구별하여, 구별되라, 구별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별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구별을 차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 외에 또 다른 성을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남자와 여자 외의 성에 관해 지적하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혹은 그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면 처벌해야 하니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코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구별의 문제이다. 만약 이것이 차별의 문제였다면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은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를 구별해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사랑은 차별에 있지 않고 오직 구별함에 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만 구별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구별되어질 뿐이다.
/ 최대흥 목사(J4U청년부)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우리에게 “차별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약 3:1, 9, 13). “내가 창조한 저 사람을 왜 너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차별하느냐? 내가 내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해서 구원한 저 사람을 왜 네가 차별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느냐? 그것은 죄다. 거기에는 심판이 있다”고 매우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처벌이 겁나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무서운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차별의 모습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문제는 차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구별에 대한 문제다. 세상은 계속해서 젠더 이슈,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차별에 대해서도 분명하시지만, 구별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하고 세심한 분이시다. 특히 죄의 문제, 죄 오염의 문제, 죄가 들어오는 문제에 있어서는 잔인하리만큼 철저하시고 단호하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다. ‘왜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려야 하는가?’, ‘왜 예물을 구별해서 드려야 하는가?’, ‘다른 돈은 차별하시는 건가?’ 결코 아니다. 구별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결혼을 통해서 한 사람의 배우자만 선택해야 하는가?’ 그것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이 사람만을 구별해서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왜 세례를 받느냐?’도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 구별해서 드리겠다는 신앙적 선택이자 결단이다.
레위기 20장 24절에서는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분이 우리를 구별하셨다. 에스겔 44장 23절에서는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해서 가르치라고 하신다.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이고, 속된 것인지 구별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자녀들과 가족들,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구별하라, 구별하리니, 구별하여, 구별되라, 구별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구별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구별을 차별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남자와 여자 외에 또 다른 성을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남자와 여자 외의 성에 관해 지적하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혹은 그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면 처벌해야 하니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코 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구별의 문제이다. 만약 이것이 차별의 문제였다면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분은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를 구별해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사랑은 차별에 있지 않고 오직 구별함에 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만 구별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구별되어질 뿐이다.
/ 최대흥 목사(J4U청년부)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