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신다!
멘토가 멘티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신다!
“자꾸만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요?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나는 혼자’라는 느낌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 같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 때때로 겪는 감정이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누구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기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예수님도 그 무거운 십자가 앞에서 혼자 계셨기에 다 알고 계신다. 게다가 우리는 진리보다 각자의 견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기에 ‘우리’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나를 도와준 자세 몇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나의 정체성 말하기’, ‘밝고 긍정적인 지체들과 함께하기’, ‘마음과 온몸으로 찬양하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하기’ 등이다. 또한 기도에 구체적인 응답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낙심되었던 것은 회개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고발하는 신랄한 목소리였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보다 참소자 또는 거짓 자아의 목소리인 경우가 상당 부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패턴, 생활패턴을 주님의 기준으로 바꿔야 하는 훈련이 많았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첫째, 성경을 따라 자신에게 나의 참 정체성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빛 이신 하나님처럼 너도 빛이구나’,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야!’, ‘너는 의로운 사람이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야’ 등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또한 주님의 몸인 다른 지체와의 연합은 머리되신 주님과의 동행을 일깨우는 것에 중요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밝은 사람과 함께 대화하는 것은 즐거움의 영으로 샤워하는 것처럼 새 힘을 얻게 한다. 게다가 큰 악기 통 같은 몸을 두드리며 리듬과 소리로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 다가오시는 듯했다. 마치 악기와 연주자가 가깝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처럼 강력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연습의 시작은 소리 내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침묵으로 하나님께 귀 기울여 집중하게 된다. 매번은 아닐지라도 내적 음성을 듣거나 어떤 그림을 보거나 말씀의 구절이 떠오르는 식이다. 마음에 평강이 차오르면서 삶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하고, 그냥 기쁨이 되는 때도 많았다(하나님 나라는 희락과 평강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라는 말씀처럼, 큐티로 하나님을 알고, 듣는 큰 즐거움과 더불어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동행의 확신을 주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요 10:27).
진실한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다윗의 시가 우리 마음 깊이 울리는 것은 그가 실제 보고, 들은 것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주님을 알고, 보고, 듣는 개인적 친분 가운데 증언해야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이 무뎌지면 주님을 못 듣는 줄 알고, 못 느낀다고 여길 뿐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있다고 약속하셨다. 혼자라는 느낌과 달리 우리는 이미 주님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일 수도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 허은주 멘토(갈렙청년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나를 도와준 자세 몇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나의 정체성 말하기’, ‘밝고 긍정적인 지체들과 함께하기’, ‘마음과 온몸으로 찬양하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하기’ 등이다. 또한 기도에 구체적인 응답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낙심되었던 것은 회개 후에도 지속적으로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고발하는 신랄한 목소리였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보다 참소자 또는 거짓 자아의 목소리인 경우가 상당 부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패턴, 생활패턴을 주님의 기준으로 바꿔야 하는 훈련이 많았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첫째, 성경을 따라 자신에게 나의 참 정체성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빛 이신 하나님처럼 너도 빛이구나’,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야!’, ‘너는 의로운 사람이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야’ 등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또한 주님의 몸인 다른 지체와의 연합은 머리되신 주님과의 동행을 일깨우는 것에 중요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밝은 사람과 함께 대화하는 것은 즐거움의 영으로 샤워하는 것처럼 새 힘을 얻게 한다. 게다가 큰 악기 통 같은 몸을 두드리며 리듬과 소리로 경배와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 다가오시는 듯했다. 마치 악기와 연주자가 가깝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처럼 강력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연습의 시작은 소리 내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침묵으로 하나님께 귀 기울여 집중하게 된다. 매번은 아닐지라도 내적 음성을 듣거나 어떤 그림을 보거나 말씀의 구절이 떠오르는 식이다. 마음에 평강이 차오르면서 삶의 방향이 정해지기도 하고, 그냥 기쁨이 되는 때도 많았다(하나님 나라는 희락과 평강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라는 말씀처럼, 큐티로 하나님을 알고, 듣는 큰 즐거움과 더불어 그분의 임재를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동행의 확신을 주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요 10:27).
진실한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다윗의 시가 우리 마음 깊이 울리는 것은 그가 실제 보고, 들은 것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주님을 알고, 보고, 듣는 개인적 친분 가운데 증언해야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이 무뎌지면 주님을 못 듣는 줄 알고, 못 느낀다고 여길 뿐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떠나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있다고 약속하셨다. 혼자라는 느낌과 달리 우리는 이미 주님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일 수도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 허은주 멘토(갈렙청년부)
작성자 김다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