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멘토가 멘티에게]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멘토가 멘티에게
 
인생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적 가치관이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개인의 자아실현’이다. 한 유명연예인이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 마음 가는 대로 사세요!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세대의 가치관을 잘 대변한 축사다. 반대로 성경적 가치관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살다 보면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적 가치관이 부딪쳐 신앙 양심에 맞지 않는 일을 거부해야 할 때가 많다. 다니엘은 신앙 양심을 따라 왕궁의 음식을 거부해야 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며 예의를 갖춰서 요청했다(단 1장). 에스더는 3일 금식기도 이후 최대한 예의를 갖춰 왕 앞에 나아갔다(에 4장).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들에 복종(롬 13:1)하고, 사랑으로 대한 것이다(마 19:19). 
그런데 예의를 갖춘다고 해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세상은 이럴 때 ‘Speak Up’, 즉 자신을 위해 외치고, 싸우라고 한다. 성경에도 억울한 일을 당한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과 요셉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나오면서 왕의 만수무강을 첫 번째로 언급했고, 왕을 여전히 존중했다(단 6:21).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애굽에 팔려 온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여겼다(창 45:5). 이 인내와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의 다짐으로 되는 게 아니다. 기도를 통해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다니엘과 에스더, 예수님의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였다.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했던 다니엘, 죽음을 각오하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에스더, 인간의 소욕이 꺾일 때까지 기도했던 예수님처럼 자아가 죽는 기도다. 
우리의 기도가 이처럼 되지 않은 이유는 성공을 위한 욕심, 질투, 미움, 시기 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욕심, 질투, 미움, 시기 등은 죄의 부산물이지 죄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죄다. 죄의 부산물들은 자신이 주인 되어 살 때 따라온다. 때로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돌이켜야 할 죄일 수 있다. 자신이 주인이라는 죄의 본질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오히려 불안해지고, 불평이 쌓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처럼, 해결책에만 집중하게 된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지 않고는 세상 가치의 유혹에 속절없이 무력해지고,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을 바꾸는 자(회개하는 자)에게는 회복의 은혜와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이 부어진다.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은 믿음(용기)을 강하게 하고,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다니엘과 에스더, 요셉에게 주어졌던 믿음의 인내와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 된 삶에서 먼저 회개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진정한 회복이 이뤄진다. 회복이 믿음의 간절한 기도를 가능하게 하고, 믿음의 간절한 기도가 인내를 가능하게 해서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는 힘이 생긴다.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적 가치관이 충돌할 때마다 무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지혜로 믿음(용기)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요셉과 다니엘 인생의 목표가 총리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매일 은혜를 구하며, 믿음(용기)으로 세상을 이긴 사람들이다.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은 한 번의 싸움이 아니라 평생의 싸움이다(때론 패배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 닮아 가게 된다. 필자도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회복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여전히 회개해야 할 죄인임을 고백했다. 우리는 매 순간 주인이 되고 싶은 자신을 내려놓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겸손과 지혜, 믿음(용기)을 간절히 구하는 자일 뿐이다.
/ 강찬휘 멘토(W청년부)
 

작성자  김다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