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지 결코 사람의 손이 아니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지
결코 사람의 손이 아니다!
 
“지인들을 전도하고 싶은데 제가 그럴만한 사람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둑은 9개의 화점을 포함해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약 360일을 1년으로 보는 것을 기반한다. 총 361곳에서 흰 돌과 백 돌이 접점을 보이며 변화무쌍한 수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바둑에 우주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고 칭송했다. 바둑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놀이로 그동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난 2016년 3월 9일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D-day 충격의 알파고, AI가 인간을 이긴 날’. 바로 이날은 딥마인드라는 회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가 인간 대표로 출전한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쥔 날이었다. 이 알파고와의 대국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에 관심과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과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당시 알파고보다 훨씬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가 개발될 것이다. 사람과 컴퓨터 간의 격차가 더욱 선명하게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게 되었다. “과연 과학의 발전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이 컴퓨터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지표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모른다’를 인정하는 반응 속도일 것이다. 가령 우주여행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당신은 우주여행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그 답을 우리가 연산하고 결괏값을 도출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마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연산을 끝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기계보다 유일하게 빠르고 낫다고 인정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아마도 ‘모른다를 인정하는 반응 속도’일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철학이 시작되었고, 신학도 생겨났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성경도 인간의 모름, 할 수 없음, 무기력함에 대한 자기성찰의 결과를 소망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사순절도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는 말 그대로 물건을 태우고 남은 재, 가루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 3:19)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선 자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갈망할 수 있고, 그분이 주시는 부활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우리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바울의 선고가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선고인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있는 가능성으로 성공적인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죄인 중에 괴수 같은 나조차 자녀로 부르시고, 구원을 주심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전하는 것이다.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Not I but Christ’ 나의 나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묵상했던 <호세아서>의 키워드가 무엇인가? <호세아> 6장 6절에 담긴 메시지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더러워진 고멜의 삶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지 결코 사람의 손으로 드려지는 그럴싸한 제사나 거룩한 선지자 호세아가 아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이 말씀처럼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우리를 고쳐 주실 것이다. 그가 우리를 싸매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전하면 된다. 
/최대흥 목사 (요셉청년부)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