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내 ‘마음의 전부’를 보시는 하나님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내 ‘마음의 전부’를 보시는 하나님
 
“직장에 다닌 지 꽤 됐는데도 어려운 형편에 십일조를 내는 것이 힘이 들고 부담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명기> 14장을 보면, 십일조에 대한 규례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 14:22~23).
성경은 십일조를 내는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십일조를 구별해서 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구별하셨기에, 우리도 자격 없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께 경외함을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서 최초로 십일조를 드린 이가 아브라함이다. 그는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과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는 살렘 왕 멜기세덱을 찾아 그에게 십일조를 바친다(창 14:17~20). 이는 하나님이 그돌라오멜과 싸우셨으며 승리하신 분도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십일조의 참된 의미는 내 삶의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헌금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씀이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다. 부자들이 성전으로 나아와 헌금함에 많은 돈을 넣었다. 잠시 뒤 가난한 과부가 다가와 렙돈 동전 두 개를 헌금함에 넣었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그 누구보다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녀가 가난한 가운데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 곧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3~44).
하나님의 시선과 세상의 시선은 다르다. 세상은 부자들이 넣은 큰돈을 보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마음의 전부를 바라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나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분에게 드리는 돈의 가치를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되는 모습으로 말씀을 따라 순종하였는가’, 둘째, ‘나의 마음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는가’이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르게 점검한다면 내 형편이 아닌 순종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십일조를 내는 의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십일조를 내는 게 힘이 드는 이유는 나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만 한다는 자기 부담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부담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순종과 예배에 집중할 때 하나님이 모든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게 하실 것이다.
/ 전진 목사(CHPLUS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