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세계관을 알아야 하는 이유] 세계관이란?
당신이 세계관을 알아야 하는 이유
세계관이란?
언젠가부터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관이 무엇일까?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포괄적 의미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고 한다. 그의 3대 비판서 중 하나인 <판단력 비판>에서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다. 크게 중요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지는 않은 듯하다. 칸트는 단 한 번 이 단어를 사용했고, 반복하지 않았다. 어떤 학자는 칸트가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우연히 만들어 낸 말’이라고 했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가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계관을 의미하는 독일어 ‘벨탄샤웅(Weltanschauung)’을 직역하면, ‘세계에 대한 직관’이라는 뜻이다. 우주, 신, 인간, 생명 등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은 “세계관 자체가 세계의 실존과 의미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에는 왜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왜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것이다. 이를 볼 때 세계관이라는 주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셸링이 설명하는 세계관의 특징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계관은 무의식적 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깊이 있게 의식해보지 않았고, 공부해보지도 않았지만, 우리의 지각은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관은 수업시간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물론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각자의 세계관은 삶의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부모, 형제, 친구, 교사 등 수 많은 만남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의 세계관을 의식적으로 꺼내 볼 필요가 바로 여기 있다. 모든 것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점검하고 검토해야 한다.
이 시대 세계관의 가장 큰 도전은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관한 보편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본원적 특징도 갖고 있지 않고, 그것을 해석하는 다른 방식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상대주의는 결과적으로 세계관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또 진리가 아닌 거짓된 생각들이 우리의 삶을 노략질하도록 허용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모든 길이 산 정상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길이 존재하듯 모든 세계관이 옳고, 선한 결과로 인도해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을 비롯해 많은 선진국이 오랜 기간 삶의 풍요와 성장을 가져다줬던 성경적 세계관을 버리고, 거짓된 세속의 세계관에 열광하며 따라가고 있다. 인본주의적 세계관,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 다신론과 범신론적 세계관 등 무수히 많은 세계관이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이 성경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영역도 참 많다. 이것이 우리에게 성경적 세계관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을 배우고, 무의식 속에 있는 잘못된 세계관들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해서 스스로 높아진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고후10:5) 것과 같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롬12:2) 것과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진리를 좇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해서 분별력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 조준목 목사(온누리세계관학교)
세계관이라는 단어는 포괄적 의미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라고 한다. 그의 3대 비판서 중 하나인 <판단력 비판>에서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다. 크게 중요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지는 않은 듯하다. 칸트는 단 한 번 이 단어를 사용했고, 반복하지 않았다. 어떤 학자는 칸트가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우연히 만들어 낸 말’이라고 했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가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계관을 의미하는 독일어 ‘벨탄샤웅(Weltanschauung)’을 직역하면, ‘세계에 대한 직관’이라는 뜻이다. 우주, 신, 인간, 생명 등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은 “세계관 자체가 세계의 실존과 의미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에는 왜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왜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것이다. 이를 볼 때 세계관이라는 주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셸링이 설명하는 세계관의 특징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계관은 무의식적 지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깊이 있게 의식해보지 않았고, 공부해보지도 않았지만, 우리의 지각은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관은 수업시간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물론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각자의 세계관은 삶의 다양한 환경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부모, 형제, 친구, 교사 등 수 많은 만남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의 세계관을 의식적으로 꺼내 볼 필요가 바로 여기 있다. 모든 것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점검하고 검토해야 한다.
이 시대 세계관의 가장 큰 도전은 ‘상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관한 보편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본원적 특징도 갖고 있지 않고, 그것을 해석하는 다른 방식들이 존재할 뿐”이라는 상대주의는 결과적으로 세계관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또 진리가 아닌 거짓된 생각들이 우리의 삶을 노략질하도록 허용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모든 길이 산 정상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길이 존재하듯 모든 세계관이 옳고, 선한 결과로 인도해줄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을 비롯해 많은 선진국이 오랜 기간 삶의 풍요와 성장을 가져다줬던 성경적 세계관을 버리고, 거짓된 세속의 세계관에 열광하며 따라가고 있다. 인본주의적 세계관,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 다신론과 범신론적 세계관 등 무수히 많은 세계관이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이 성경적이지 않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영역도 참 많다. 이것이 우리에게 성경적 세계관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을 배우고, 무의식 속에 있는 잘못된 세계관들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해서 스스로 높아진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고후10:5) 것과 같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롬12:2) 것과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진리를 좇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해서 분별력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 조준목 목사(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