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기독교 세계관 정립이 왜 필요한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기독교 세계관 정립이 왜 필요한가?
세계관의 충돌은 영적 전쟁이다. 반성경적 세계관은 하나님 없는 세상을 주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主)되심과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과 진리, 생명을 부정한다. 다른 세계관과의 충돌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다(엡 6:12). 불신앙의 뿌리에는 악한 영과 영적 무지, 교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오스 기니스의 말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변절과 타협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반성경적 세계관의 공격과 유혹이 신앙의 박해보다 위협적이고, 위험해 보인다.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과 젠더 이슈는 부지불식간에 가정과 교회를 약화시킨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정체성을 공격하고, 신앙과 삶이 분리된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만족하게 한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전인 우리의 신앙을 방어하기 위한 성문과 성벽이다.
성경적 우선순위와 절대적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의 세계관, 즉 독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롬 12:2). 그 변화는 본질적 변화이다. 자기중심적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 즉 성경적 관점으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관점에 말씀을 맞추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에 비춰 나를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마 6:33), 요동치는 세상에서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히 13:8), 사랑 가득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영적 민감성과 영적 통찰력도 회복해야 한다. <창세기> 3장의 타락을 통해 인간은 선의 유일한 근원이며, 선악의 최종판단자인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욕망과 목적에 따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주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다. 말씀은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추는 빛이다(시 119:105). 드러난 것보다 중요한 근원을 볼 수 있는 영적 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진리를 깨닫는 마음을 회복하게 한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반성경적 시대정신과 징조를 파악하는 영적 민감성과 현상을 넘어 뿌리를 보고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 삶 전체를 요구하는 절대적 이야기다. 복음이 출발점이 되고, 하나님이 주(主)가 되셔서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삶의 목적과 방향을 매 순간 재정립해야 한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모든 이의 삶에서 세워지고 이루어져 간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신앙 여정에는 개인의 성품의 열매와 삶의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변화된 성품과 삶을 통해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확장해야 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총체적 세계관이 세워지지 않으면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자신도 모르게 반성경적 세계관의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도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평생에 걸친 성화 과정이다.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해석하고, 복음의 능력과 삶의 현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창조-타락-구속-완성의 통합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며, 숲(통독)과 나무(QT)를 동시에 보는 게 중요하다. 지성과 감정, 의지를 사용한 전인적 성경 읽기가 되어야 한다. 지적인 이해를 통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감정적 경험을 통해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앎이 믿음이 된다. 의지적 결단으로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는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말씀을 다림줄 삼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하나님 나라의 복된 삶을 경험하고, 확장됨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 강애리 목사(드보라선교회, 온누리세계관학교)
성경적 우선순위와 절대적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의 세계관, 즉 독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롬 12:2). 그 변화는 본질적 변화이다. 자기중심적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 즉 성경적 관점으로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관점에 말씀을 맞추는 게 아니라 성경 말씀에 비춰 나를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마 6:33), 요동치는 세상에서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히 13:8), 사랑 가득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영적 민감성과 영적 통찰력도 회복해야 한다. <창세기> 3장의 타락을 통해 인간은 선의 유일한 근원이며, 선악의 최종판단자인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욕망과 목적에 따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주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다. 말씀은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추는 빛이다(시 119:105). 드러난 것보다 중요한 근원을 볼 수 있는 영적 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 진리를 깨닫는 마음을 회복하게 한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반성경적 시대정신과 징조를 파악하는 영적 민감성과 현상을 넘어 뿌리를 보고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 삶 전체를 요구하는 절대적 이야기다. 복음이 출발점이 되고, 하나님이 주(主)가 되셔서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삶의 목적과 방향을 매 순간 재정립해야 한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모든 이의 삶에서 세워지고 이루어져 간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신앙 여정에는 개인의 성품의 열매와 삶의 실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변화된 성품과 삶을 통해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확장해야 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총체적 세계관이 세워지지 않으면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자신도 모르게 반성경적 세계관의 폭풍에 휩쓸리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도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평생에 걸친 성화 과정이다. 성경의 렌즈로 세상을 해석하고, 복음의 능력과 삶의 현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창조-타락-구속-완성의 통합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며, 숲(통독)과 나무(QT)를 동시에 보는 게 중요하다. 지성과 감정, 의지를 사용한 전인적 성경 읽기가 되어야 한다. 지적인 이해를 통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감정적 경험을 통해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앎이 믿음이 된다. 의지적 결단으로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세상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는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말씀을 다림줄 삼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하나님 나라의 복된 삶을 경험하고, 확장됨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 강애리 목사(드보라선교회,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