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다”
강동온누리교회 가족연합예배 …백미는 어린이 세례식
지난 주일(4일) 여기는 강동캠퍼스. 아침부터 교회가 분주하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가족연합예배 준비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11층 로비, 고소한 팝콘냄새가 솔솔 풍긴다. 전도팀에서 팝콘을 튀겨 봉지에 나눠담고 있었다. 오늘 성도들에게 나눠줄 팝콘이었다. 고소한 냄새를 뒤로하고 12층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리허설이 한창이다. 가족연합예배를 위해 파워웨이브에서는 밴드를, 꿈땅에서는 찬양과 율동을 준비했다. 교사들과 부모, 아이들이 동작을 맞춰보느라 여념이 없다.
11시30분 가족연합예배가 시작됐다. 옹알대는 어린 아기를 안고 예배드리는 젊은 부부부터, 부모보다 키가 훌쩍 큰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가족까지 다양하다. 평소에는 자녀들은 어린이예배부서(예꿈, 꿈땅, 파워웨이브)에 맡기고 부모들은 따로 예배를 드려서인지 예배 초반에는 어색함도 엿보였다. 찬양과 율동이 시작되자 어색함이 사라졌다. 어린아이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 부모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모두 율동을 따라했다. 이어 전문 복화술사 김성수 교수팀이 인형극을 선보였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의 눈높이에 맞춘 인형극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족연합예배의 백미는 어린이 세례였다. 총 10명의 자녀들(유아세례2명, 입교4명, 성인세례 고등학생 4명)이 세례를 받았다. 이날 세례를 받은 차세대들은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대표간증은 주경아 성도(유아세례 송지용母)가 했다. 그녀는 간증에서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나에게 맡겼을 뿐”이락 고백했다. 주경아 성도 혼자만의 다짐이 아니었다. 거기 모인 부모들의 고백이었다.
강동 온누리교회 부모들은 자녀들의 자녀교육관이 돋보였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혼란을 겪고 있지 않았다. 이구동성으로 자녀를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아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최선영 성도는 “아이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한다”고 말했다.
강동 온누리교회 가족연합예배는 부모와 자녀가 유대감을 키우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재확인하는 그런 자리였다.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유아세례간증> “하나님이 귀한 아들을 맡기셨다”
지용이가 세례를 받기 전에 많이 아팠다.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젖먹이고, 안아주고, 기도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네 아이가 병균과 잘 싸워 이길 것을 믿으라”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지용이를 치유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용이를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어설픈 믿음이 바로 나의 신앙이었다.
하나님은 부족한 나에게 당신의 귀한 아들을 맡기셨다. 태중에 있지 않을 때 아들임을 보여주시며 지용이가 하나님의 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지용이가 어떤 길을 가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할 것이다. 내 아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하나님의 아이들이고, 내 아이의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이다.
/주경아 성도
<축하합니다-어린이 세례>
이세훈 파워웨이브
김민주 파워웨이브
한태희 사랑부
유재성 사랑부
입교
김혜주 파워웨이브
정윤수 파워웨이브
송명화 파워웨이브
배성연 사랑부
유아세례
송지용 (부:송의선, 모:주경아)
한태윤 (부:한승완, 모:박지현)
<목회 일정>
어버이 주일 기념 다과회
대상 : 강동온누리 65세 이상 성도
일시 : 금일(11일) 1부 예배 후 다과, 2부 예배 후 식사
장소 : 10층 충성홀
OBC 하나님의 성품-지대근 목사반
기간 : 5월10일~6월28일(8주)
시간 : 매주 토요일 오전 7시30분
장소 : 11층 두란노홀
Basic QT-이태희 목사반
기간 : 5월11일~6월8일(5주)
시간 : 매주 주일 오후 2시
장소 : 11층 두란노홀
사랑부 체험학습
일시 : 5월31일(토) 강화도 자연체험 농장
문의 : 배성우 목사 010-3530-8746
<목회 칼럼>
정도전과 예수님이 다른 이유
지난 5월 첫째 주일 설교 본문인 누가복음9:18-27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또 제자들은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셨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멋진 신앙고백을 했다. 당연히 칭찬을 받으리라 생각했겠지만, 베드로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하셨다. 우리말 성경은 ‘단단히 경고하다’라고 번역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티마오’는 ‘꾸짖다’라는 매우 강한 단어다. 예수님이 귀신을, 바람을 꾸짖을 때 사용하신 단어다. 왜 제자들을 꾸짖으셨을까?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사실은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관(=메시야관)은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강한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그리스도였다. 얼마나 멋진가! 요즘 30,40대가 한국 남성들이 드라마 정도전에 환호하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가 되시는 길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차 당하실 십자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인류구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던 비결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기도였다. 누가는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기 전 예수님이 혼자 기도하고 계셨다고 말한다(9:18). 마태복음(16:13이하)과 마가복음(8:27이하)에도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님이 당시에 기도하고 계셨다는 언급은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기도는 세상의 환호성을 따라가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자 이 놀라운 이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들고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중들의 대관식을 거부하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산에는 왜 가셨을까? 기도하시기 위함이었다(마14:23, 요6:15).
이처럼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분이셨음을 특별히 강조하는 복음서가 바로 누가복음이다. 우선 누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의 후편이라고 할수 있는 사도행전에는 ‘데에시스’, ‘데오마이’, ‘프로슈케’, ‘프로슈코마이’등과 같은 기도에 관한 용어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기도에 관한 비유 3개가 나온다. ‘밤중에 찾아온 친구’(11:5~8),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끈질긴 간청’(18:1~8),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18:9~14). 누가는 예수님이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늘 기도하셨다고 말한다(물론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때만 기도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먼저,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올 때, 예수님은 기도하고 계셨다(눅3:21,22).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들을 택하실 때도 먼저 산에 가셔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6:12,13).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셨을 때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신 적이 있는데,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올라가셨고,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하셨다고 말한다(9:28,29).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때도 먼저 예수님은 기도하셨다(11:1~4).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기 전에 기도하는 분이셨다는 말이다. 또한 예수님은 비록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할 것을 아셨지만 그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하셨다(22:31,32). 누가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대단히 세심히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무릎을 꿀고 기도’(22:41)하셨으며, 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22:43,44)고 서술함으로써 예수님의 기도가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였음을 마치 세밀화처럼 그리며 강조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기도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는 외침은 사실 시편 31:5(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를 인용한 것인데, 유대인들이 취침기도문으로 사용되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누가는 예수님이 그의 생애에 중요한 때마다 기도하신 것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펼쳐나갈 교회에게 기도로써 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누가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항상 기도하여 깨어있고”(21:36), “시험에 들지않게 기도하여”(22:40,46) 성령충만해 있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계속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원준 목사(강동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