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복이 되라
창세기 12장 1절~4절

이재훈 목사
우리 안에 있는 성을 허물고 쌓아올린 탑을 허무십시오. 열방을 향해 흩어지는 축복 전달자로 헌신하십시오. 이 세상의 통치자로, 승리자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선택하고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인지를 먼저 구해야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우선순위가 되어야합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복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쾌해합니다. 복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을 무분별하게 구합니다. 그들은 이세상의 복과 하나님의 복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기복이라고 합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기복주의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기복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복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권위주의가 잘못된 것이지 권위는 좋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는 이유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은혜로운 성품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한나에게 사무엘을 낳는 복을 주셨고,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은 나오미와 그의 자부 룻이 메사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하셨습니다. 오해와 미움을 받던 요셉에게는 민족을 구원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저주를 선택한 인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해 땅에 가득하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습니다’”(28절).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세 번 복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복은 다섯째 날 하늘에 나는 새와 물고기에게, 두 번째는 여섯째 날 인간에게, 세 번째는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땅을 정복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타락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창세기 3장 이후부터 11장까지 복이라는 단어가 한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주라는 단어는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이 창세기 1장 28절에서 주신 복을 잃어버리고, 비전과 사명 없이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저주 받은 인생을 살다가 결국 창세기 6장에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진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 인간을 떠났습니다. 그 대신 저주가 임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복 대신 저주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만을 살리기 위해 방주를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림들이 심판을 믿지 않았고 구원받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이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씻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해 땅에 가득하라. 땅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이것들을 너희 손에 준다’”(창 9:1~2).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셨던 복과 심판 이후 살아남은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주신 복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두 번째 아담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노아에게도 똑같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번성하고 충만해야 합니다. 번성하고 충만하기 위해서는 흩어져야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흩어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그의 후손들은 심판 이전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지만 마음속에 있는 죄가 씻기지 않았습니다.
성과 탑을 쌓는 사람들
노아는 의인이었지만 불행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심판받는 광경을 본 노아의 후손들이 이상합니다. 그들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바벨탑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해 성을 쌓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창 11:4).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놋땅에 처음으로 에녹성을 지었던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에게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온 세상을 바라보면서 흩어져 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흩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성을 쌓았습니다. 한곳에 머물렀습니다. 흩어지라는 사명을 잊은 채 탑 쌓는 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흩어져야 할 존재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갈 목적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입니다. 성을 쌓고 탑을 쌓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엄청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삶과 정반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 땅에 흩어져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이 땅의 통치자로 살아가야 할 인간이 흩어지지 않고 성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복된 삶이 아니라 저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했던 행동을 동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
이세상의 악은 사람들이 성을 쌓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성을 쌓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하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교회가 온 세상에 흩어져 하나님의 통치자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위기가 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 성을 쌓고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물로 심판하셔야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신 사람들을 흩어버립니다. 언어를 복잡하게 해서 사람들을 흩어버리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노아의 경건한 후손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축복의 역사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전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고 창세기 12장부터는 한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하나님이 집중한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뤄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새로운 일을 하십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도 변화하지 않는 인간들의 심성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게 하는 계획입니다. 놀라운 구원의 계획입니다.앞서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에게 같은 말씀을 주셨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갔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는 75세였습니다”(창 12:1~4).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복이라는 단어가 5번 등장합니다. 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부터 11장까지는 복이라는 단어가 한번 나오고 저주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에서는 복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연이어 등장합니다. 저주에서 복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순종했던 역사를 모두 씻어 내는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아담과 노아에게 주셨던 복을 아브라함에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흩어짐’
하나님은 우리가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끼는 것으로부터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이 복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익숙하고 친밀한 환경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이 주는 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복을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떠남을 통해 우리가 복된 삶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노아의 후손들은 성과 탑을 쌓아야만 복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과 탑을 쌓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과 탑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는 것이 복된 삶을 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노아의 후손과 다르지 않습니다. 흩어짐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복을 보지 못하고 성과 탑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지시하신 땅으로 우리가 떠나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사실 그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복이 드러나게 됩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 삼아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족속에게 복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가서’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한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과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같은 것입니다. 또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명령의 반복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통로가 될 사람을 선택해 온 세상에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법칙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첫째, 주지 않은 복을 전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떠나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떠나도록 만드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3절).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함께 하시는 복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의 인생을 복되게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을 뿐인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군사력도 갖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기 때문에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력하고 애 쓰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큽니다. 창세기 분량이 많은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얼마나 복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를 먼저 복되게 하시고 그가 온 세상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씨앗과 열매의 법칙
둘째, 하나님의 복은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절대 혼자 누리지 못합니다. 혼자만 누린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반드시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복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장합니다. 씨앗과 열매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씨앗으로 시작해서 열매로 맺힙니다. 처음부터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자연의 법칙에 하나님의 복주심의 원리가 그대로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씨앗입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복의 씨앗이 되는 구성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씨앗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만약 씨앗이 썩어지지 않는다면 그 씨앗은 죽은 것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썩어져 생명을 나눠야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은 흘러갑니다. 절대 머무르지 않습니다. 혼자만 복되게 하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십니다. 요셉을 통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고, 야곱을 통해 바로가 복을 받았듯이 우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셋째, 순종하는 자에게, 복이 넘칩니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2장까지 나오는 아브라함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또 불신앙으로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통로로 선택했다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러분,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순종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른 상속자입니다”(갈 3:29).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복의 통로, 복의 근원, 축복의 전달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노아의 후손들은 두려워서 성을 쌓고 탑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열방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축복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을 쌓고 탑을 쌓는 것을 절대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을 허물고 쌓아올린 탑을 허무십시오. 열방을 향해 흩어져 열방의 통치자, 축복의 전달자로 헌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온누리교회를 부흥시킨 이유는 선교에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이 세상의 통치자로, 승리자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온누리교회의 교구는 온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온누리의 복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순종하십시오. 헌신하십시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