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비결
기쁨의 비결
요한복음 15장 1~11절
이기원 목사
어떤 상황가운데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자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지 않을 때에도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안에 기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내 안에 기쁨이 없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않을 때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참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충만할 때와 없을 때
“또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이 주신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살전 1:6).
리차드 포스터는 기쁨은 마치 발전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할 때 이 땅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기쁨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쁨이 없는 사람은 거짓 기쁨을 추구합니다. 거짓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으면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들로 나를 채우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고갈됩니다. 거짓 기쁨을 추구하게 되면 관계의 어려움도 생깁니다.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집니다. 기쁨이 없으면 기도의 자리에 앉아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어려워집니다.
기쁨이 없으면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기쁨의 용량을 계속 늘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쁨의 용량을 늘리는 세 가지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가지를 쳐야합니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자르실 것이요,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신다”(2절).
포도나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포도나무 자체는 볼품이 없습니다. 포도가 열리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서 농부가 영양분이 열매로 가게 하려고 포도나무 가지를 쳐주는 것입니다. 기쁨도 열매로 나타납니다. 열매가 풍성하기 위해서는 가지를 쳐줘야합니다.
기쁨의 열매 맺지 못하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율법주의자와 바리새인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진정한 제자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쓸데없는 가지를 제거해야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가지를 쳐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가지를 치십니다.
“청년이 어떻게 그 길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따라 주의하는 것입니다”(시 119:9).
불필요한 가지를 제거하시는 주님 앞에 날마다 거함으로 자기를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를 징계하심으로도 가지를 치십니다.
“모든 연단이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통해 연단된 사람들에게 의로운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히 12:11).
징계와 고통, 환란을 겪을 때는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 연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징계를 통해서 가지를 치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합니다. 인생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징계를 당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그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집니다.
그 어떠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4절).
예수님은 기쁨이 없는 가나안 나사렛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기쁨이 없는 죄인들, 세리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생명을 주시고,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분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그분 안의 들어가는 것이고, 그분의 생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뜻과 생각과 고집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버리고 주님의 뜻과 생명과 길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7절).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고, 순종하면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내 뜻을 추구하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기도로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 16:24).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가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임재가운데 들어갈 때 순종하게 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합니다. 기쁨의 열매가 맺히게 합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으니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합니다”(시 4:7).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환란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는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배가 됩니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나를 학대하고 힘들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기쁨의 용량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캘커타 수녀는 자서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사랑입니다. 기쁨은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랑의 그물입니다. 하느님은 너그럽게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으로 주는 사람은 더욱 많은 것을 줍니다. 하느님과 사람에게 감사를 나타내는 최고의 형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은 사랑으로 타오르는 가슴에서 비롯된 가장 일반적인 결과입니다.”
그녀 안에 기쁨이 넘쳤기 때문에 사랑을 전할 수 있었고, 섬길 수 있었고,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땅에 가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기쁨이 충만하면 환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환란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그분 안에 있는 기쁨의 용량으로 이겨내셨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게 되셨습니다”(히 12:2).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은 수치요,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수치와 고난과 모욕과 침 뱉음과 좌절과 배신을 경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예수님처럼 고난당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은 모든 부끄러움을 기쁨으로 이겨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가운데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보시면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안에 계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구원을 베푸실 용사시다. 그분께서 너 때문에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노래를 부르시며 너로 인해 기뻐하실 것이다”(슥 3:17).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