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21절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재훈 목사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느끼고 계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지금 나의 모습에 실망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심각한 죄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분들은 하나님이 지금 나의 모습에 분노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크고 많은 죄를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분들은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실 때 사랑이 샘솟고, 미소가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이 된 우리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실망하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실망과 분노가 있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시기에 죄와 허물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있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으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성경은 두려움에 대한 상반된 메시지를 줍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두려움은 제거하고,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은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벗기고, 담대함을 입히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벌거벗은 것이 두려워 숨었습니다’”(창 3:9~10).
아담은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벌거벗은 것이 두려워 스스로 옷을 입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지식의 옷, 문화의 옷, 종교의 옷을 입는 것은 자신을 포장해서 두려움을 감추는 것입니다. 때로는 선행을 통해서 죄를 감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옷을 벗겨버리십니다. 죄책감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또 두려움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아주 교묘하게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관계의 문제도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관계가 파괴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많을수록 미신에 잘 빠집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민감해서 잘 흔들립니다. 그런데 두려움 자체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통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랑을 위한 길을 예비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도 없다. 두려움이 약이라면 사랑은 치료이다. 두려움은 사랑으로 인도된다. 사랑이 온전해질 때 두려움은 끝난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완성되면 우리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행하기 때문입니다”(16~17절).
담대함이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내쫓을 때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담대함은 뻔뻔함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섰을 때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한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16절).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학자 벵겔은 그리스도의 영적생활의 발전을 네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두려움도 사랑도 없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 없이 두려움만 있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완전히 믿게 되는 단계입니다.

 

조건 없는, 아낌없는, 값없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9~10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압니다”(13절).
하나님의 사랑이 왜 온전한 사랑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신 사랑이 아니라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해 스스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전에 조건 없이, 아낌없이, 값없이 그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10절).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9절).
온전한 사랑은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밉니다.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조건적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먼저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먼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7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11절).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0~21절).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향하여 사랑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어떤 사랑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의 근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가운데 임하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갑니다. 만약 내 안에 사랑이 말랐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서 사랑이 흘러나게 됩니다.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요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흘리기까지
성령님을 보내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큰지를
우리가 믿고 알고 누리게 하옵소서.
그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두려움이 떠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온전케 되는 담대함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