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보라, 얼마나 큰 사랑인가!

요한일서 3장 1~10절
이재훈 목사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되십시오. 죄로부터 회복될 것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부르심을 받은 주간이 되면 여러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하 목사님과 라이온 킹이라는 뮤지컬을 봤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 목사님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유명하고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과 무대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두 달 후에 하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밤 12시쯤이었습니다. 온누리교회에서 OMC(부흥축제)를 하는데 뮤지컬 라이온 킹 무대처럼 만들고 싶다면서 그 무대를 제작하는 사람이 서울에 와서 무대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알아봐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사역이 탁월하기를 원하는 목사님의 열정에 놀랐습니다.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입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만든 작품입니다. 무파사라는 사자 왕이 동물들을 잘 통치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아들 심바에게 동물들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심바는 철이 없고 놀기만 바빴습니다. 그러던 중에 무파사의 동생인 스카라고 하는 사자가 반역을 해서 무파사를 죽게 합니다. 스카는 심바에게 아버지가 죽게 된 책임을 물어서 왕국에서 쫓아냅니다. 그 사이 동물의 왕국은 완전히 폐허로 변했습니다. 잘못된 통치자의 권력과 탐욕으로 동물의 왕국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심바는 고향소식을 들었지만 자신의 과거를 직면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서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무파사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심바는 그 음성을 듣고 용기를 냅니다.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찾게 되면서 동물의 왕국을 다시 회복시킵니다.
심바가 왕국을 떠나 방황하고 있을 때 죽은 사자가 나타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가 네 안에 살아있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에 나를 잊은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라.”
이 대사가 계속 제 마음속에서 울렸습니다. 요한일서의 주제를 현대어로 표현하면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무능력하고, 믿음이 후퇴하는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축복

 

요한일서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일 1:4).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것은 여러분의 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됐기 때문입니다”(요일 2:1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요일 5:13).
이 글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기쁨이 넘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됐으니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요일 3:1).
요한은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감격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끌어 오르는 감동과 감격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는지를 다시 깨닫고, 감격해 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동적인지를 다시 한 번 음미해야합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이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이런 진단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감동이 메마른 시대입니다.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메마른 사막처럼 눈물도 마르고, 감동도 마른 시대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 즉, 하나님의 자녀 된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감동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고의 효도, 최고의 영광, 최고의 찬양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어버이날 설문조사한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받기 싫어하는 선물 1순위가 건강식품입니다. 하도 건강식품을 많이 받아서 싫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자녀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얼굴 보여 주는 것보다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당신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 아닐까요. 연약하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못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자랑스럽지 못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가 “당신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이 나의 부모님인 것을 정말 기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보다 큰 효도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당신이 나의 하나님인 것을 가장 기뻐합니다”라고 고백할 때 가장 좋아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효도, 최고의 영광, 최고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창조의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필요해서 창조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할 대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랑하시기에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저 높고 높은 하늘에서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보라”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롬 5:8).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됐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인해 그분과 화목하게 됐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해 확실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롬 5: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직 원수 되었을 때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울 때가 아니라 원수 되고, 죄인 되고,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누었던 친밀한 사랑을 우리도 나눌 수 있도록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사람을 대신해 죽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사랑부터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사랑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기억할 때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확인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속성 중에서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주만물이 그대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되어야 하고 확증되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말로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확증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인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불공평, 테러 등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보라.”
하나님은 그 어떤 악보다 크고, 위대한 사랑으로 세상을 덮어주시고, 우리 모두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에 차이

 

오늘 본문 1절, 2절, 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 됨에 차이가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은 상태입니다. 아직 연약함이 있고, 불의함이 있고, 죄와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2절과 3절에는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자녀 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2~3절).
1절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림을 받는 단계입니다. 2절과 3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단계입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받아들여주십니다. 그때는 우리가 어떤 상태여도 상관없습니다. 연약하고, 죄 가운데 있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어도 자녀로 부러 주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닮은 자녀로 변화되도록 이끄십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변화되게 할까요. 그것 역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닮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닮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닮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해주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를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닮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또 사랑은 소망을 낳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그분을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언젠가 그분과 같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소망을 만들어내고, 그 소망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 마지막 날에 예수님 다시 오시면 한 순간에 예수님처럼 변화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도 그분과 같이 정결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과 같이 될 것을 소망하게 하고, 그 소망이 우리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변화되어 갑니다. 처음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때에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변화됩니다.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은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4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6절).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9절).
NIV 영어번역에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Continue’라는 단어를 삽입했습니다. 이것을 다시 번역하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 가운데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난 사람은 죄를 계속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그 DNA를 받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부모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커갈수록 부모의 모습과 습관이 점점 강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녀가 된 우리들도 믿음의 초기단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됩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하나님의 씨가 있기에”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씨앗, 성령의 씨앗, 믿음의 씨앗이 점점 자라 죄를 짓지 않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단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죄를 네 가지의 상태로 구분한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타락하기 이전 인간의 상태를 ‘아직 죄가 없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이후 인간의 상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죄가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될 때에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차이를 깨닫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어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몇 단계에 있습니까. 대개 세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는 죄가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짓기를 일삼아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요일 3:8).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감격하며 사는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림 받는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녀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짓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소망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정결함을 이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라는 것을 기억할 때 능력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