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 우리 연약함을 지신 예수
말씀: 하용조 목사마태복음 8장 14~22절예수님은 베드로 장모 집에 유숙했습니다. 그런데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모의 손을 만지시자 열이 내렸고 장모는 곧 일어나 예수님을 섬겼습니다.(15절) 이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의 손이 날 만지는 것을 느껴야합니다.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졌을 때 열병이 떠나간 것처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만지실 때 여러분의 병이 떠날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당한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 옷자락을 통해 능력이 전이돼 병이 나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로 전이되길 바랍니다. 치유 후 기쁨으로 섬겨 베드로 장모는 건강해진 후 곧 일어나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할렐루야. 병으로 고통 받으며 전혀 맥을 추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날 치유되고 건강하게 일어나 쓰레기를 치우고 남이 안하는 일을 기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간증과 체험이 있는 사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좋아서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안가도 되는 데 가는 사람입니다. 누릴 수 있는데 누리지 않고, 가질 수 있는데 가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좋으니까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세상 어떤 행복과 쾌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축복입니다.전 폐병의 은혜로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폐병을 앓고 요양원에 누워 있던 어느 날 밤 내 마음 속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나를 위해서 살지 않으련?”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전 간염을 앓고 간경화로 진행되다 간암으로 발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교만한 걸 알기 때문에 항상 가시처럼 병으로 꽂아놓으십니다. 제가 당뇨를 한 30년 째 앓고 있고, 고혈압도 있고, 신장이 망가져 투석을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설교만 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전 설교만 하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마귀가 끊임없이 설교하지 못하도록 공격했지만 전 끊임없이 주님의 교회를 붙들고 있습니다. 병이 날 어쩌지 못합니다. 여러분 사탄이 공격해 와도, 병이 와도, 환경이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여러분을 어쩌지 못합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만 바라고 나가면 파도를 넘고 산을 넘듯 모든 고난을 뛰어넘어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아플 때 전 치유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고통스러울 때마다 교회가 도약했습니다. 저는 고통스럽고 아플 때마다 영적인 충만을 경험합니다. 성도님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이 ‘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한 것처럼 제가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온누리교회가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말씀으로 병을 고치다 16절을 보십시오.“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예수께 귀신 들린 사람들을 많이 데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아픈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모든 어둠의 세력들, 귀신을 말씀으로 쫓으시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으로 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 안에 말씀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길 바랍니다. 대부분 귀신과 병은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으면 병이 낫습니다. 귀신이 들어가면 인격을 파괴시킵니다. 어떤 분은 한번 화를 내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자기 이성이겠습니까? 어떤 힘이 여러분을 압도해 화내게 하고 거친 말을 하고 공격적으로 하게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입으로 “뭐에 씌었지.”라고 말합니다. 자기 힘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더러운 귀신의 힘과 억압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 사라지길 바랍니다. 17절을 보십시오.“이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몸소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셨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과 ‘예언의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신 것은 능력이 있어서 그냥 행하신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예언한 ‘그는 몸소 우리 연약함을 담당하셨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다’의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강해졌고 건강해졌고 새로워졌고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강물처럼 넘치길 축원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예수께서 많은 무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전혀 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기를 거절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집중되어 있을 때 인기 안에 들어가지 않고 흩트리셨습니다. 사람을 피해 산 깊은 곳으로 가서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때로 대중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쁜 의미에서 고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나만의 하나님과 관계가 필요합니다. 능력과 고독 사이의 삶19~20절을 보십시오.“그때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를 둘 곳이 없구나.’”예수님은 무소유였습니다. 단순한 분이셨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 단순한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소유가 인생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군더더기가 많으면 불편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항상 단순하고 고독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독하지 않은 까닭은 하나님과 계셨기 때문입니다.21~22절을 보십시오.“다른 제자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을 묻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라.’”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뭔가 부수입이 많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가보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모든 것을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할 때 은퇴하면, 돈 좀 벌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등 여러 핑계와 이유로 늘 머뭇머뭇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를 장사지내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부모가 죽고 난 다음이라는 뜻입니다. 죽을 때까지 부모를 공양해야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까? 핑계대지 마십시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누가 들어도 수긍할만한 괜찮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에 속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여러분의 갈 길을 가십시오. 그것이 후회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우리는 두 양면성을 봤습니다. 기적과 귀신이 나가는 능력을 행하는 것, 그러면서 고독과 단순함.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은 이 두 기둥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화려함을 바라보지 않고 끊임없이 고독하고 외롭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정리 전성희 기자 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