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25일 말씀 | 하용조 목사

믿음을 챙기십시오 본문: 누가복음 8장 16~25절 어떤 환란과 위기를 만나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항상 그 폭풍과 비바람과 환란 가운데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오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먼저 16절을 보십시오.“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대 밑에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등불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등잔대 위에 두는 것이다.”하나님 나라에 대한 첫 번째 비유는 씨 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등불의 비유입니다. 어제는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오늘 두 번째 비유로 ‘등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등불을 켰는데 침대 밑에 두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빛은 캄캄할수록 환하게 빛나듯 진리는 어두울수록 힘 있게 비춥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입니다.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빛을 드러내듯이 예수님을 드러내십시오.또한 여러분의 믿음을 드러내십시오. 그러면 믿음이 더 왕성해지고 비전이 커집니다. 믿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 비전을 가진 사람에게 생깁니다. 비전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집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씨를 주십니다. 그것을 내가 품고 있으면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등불의 비유는 등불을 켜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높이 두고 빛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목적을 이루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사람은 목적이 없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말씀을 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삽니다. 여러분 모두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세워진 목적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합니다. 빛이 나가면 공격이 옵니다. 그러나 공격과 상관없이 빛은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두움이 떠나고 절망이 떠납니다. 영적 원칙, 빈익빈 부익부 18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말을 조심해서 들으라. 가진 사람은 더 받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줄로 생각하는 것조차 빼앗길 것이다.” 조심해서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들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의라는 것은 있는 사람 것을 빼앗아서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논리가 이데올로기로 발전해서 사회주의적인 이론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법칙은 이런 원리와는 다릅니다. 영적인 법칙은 있는 사람은 더 있을 것이며 없는 사람은 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은 해방시켜야 합니다. 교육도 평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있는 것은 뺏고 없는 것에 더해질 때도 있지만 영적인 논리는 다릅니다. 있는 사람은 더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물질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더 있을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더 성령충만하게 될 것입니다.믿음을 가지려면 내 마음 가운데 믿음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겠다고 생각하면 가난해집니다. 가난하게 살기 싫다는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더 도와주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입니다. 영적인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너는 내게로 가까이 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가까이 가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믿음을 가지려고 애쓰라는 말입니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뒤집으라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꿈을 꾸십시오. 일어설 수 있습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오늘부터 여러분은 건강해질 것이고, 비전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묶어 놓았던 비밀의 벽을 허물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건강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가족의 영적 의미 19~21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혈육보다 말씀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형제와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많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일들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형제와 집안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제가 한 일은 큰 잘못이라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 핏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깨뜨립니다. 사회주의적인 발상을 깨신 것 같이 가족끼리, 핏줄끼리 뭉쳐 살고 다른 사람을 이방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가족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만 중요하지 않고 이방인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중요하지만 다른 민족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내 핏줄, 내 고향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가족관이 여러분의 가족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타국에서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줘야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내 가슴에 품고, 세계를 나의 교구로 삼기 바랍니다. 100만이 넘는 외국인이 이곳에 삽니다. 내 형제 내 가족처럼 외국인을 만나면 잘해주십시오. 그 사람들을 학대하면 안됩니다. 가족처럼 따뜻하게 받아줘야 합니다.  환란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다른 동네로 가시던 예수님과 그 일행이 갑자기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힐 뻔한 경험을 합니다.(22~25절) 이것은 우리 인생의 요약본입니다. 우리 인생이 배를 타고 가다 폭풍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폭풍이 몰려와도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반대로 폭풍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제자들은 극도로 불안해져서 결국 예수님을 깨우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향해 꾸짖으십니다. 놀랍게도 순식간에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집니다. 제자들은 놀랍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환란이 오자마자 믿음이 순식간에 없어지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배를 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실패는 예수님의 실패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실패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예수님은 주무시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 배에는 예수님이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공동운명체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주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환난을 겪고 있다면 예수님이 그 환난 한복판에 서계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먼저 구원요청을 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꾸짖다’는 것은 인격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바람과 바다는 죄가 없습니다. 그 안에 귀신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나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배경 뒤에 영적인 배후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배후세력을 향해 ‘더러운 귀신아 떠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 물러가니까 바람과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어떤 환란과 위기를 만나도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이 여러분과 동행할 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항상 그 폭풍과 비바람과 환란 가운데 계시고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