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30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우리가 섬겨야 할 가장 큰 자 본문: 누가복음 9장 37~48절 크다 작다로 말하지 마십시오. 물질적인 것으로 비교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장 귀히 여깁니다. 높이 생각하십니다.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맞았습니다.”(37절)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 때 무리 중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부탁입니다. 제 아들 좀 봐 주십시오. 제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이 아이를 사로잡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게 하고 아이에게 발작을 일으켜 입에 거품을 물게도 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은 해내지 못했습니다.”(38~40절) 사람을 상하게 하는 귀신 귀신들린 자녀를 가진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럽고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왔습니다. 사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수없이 부탁을 했지만 귀신이 자꾸 들어온 것입니다. 천장에서 쥐가 뛰어다닐 때 빗자루로 아무리 쫓아봐야 또 옵니다. 쥐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정욕, 돈, 말실수, 화 내는 것 등 사람에 따라 늘 무너지는 데가 있습니다. 거기가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그것을 꽉 잡아버리면 귀신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에베소서에도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4장 27절)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첫째 그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마틴 루터가 “새가 내 머리 위에 날아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아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순간순간 유혹이 번뜩이며 지나갑니다.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오지만 향기 있는 데는 못 옵니다. 예수님 계신 데는 더러운 귀신이 못 옵니다. 그러나 내 인격이 더러워지면 귀신들이 자꾸 달라붙습니다. 둘째, 귀신이 사로잡으면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화가 한 번 나면 소리를 지르는 겉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귀신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나도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이런 분들은 화가 벌컥 날 때 속으로 ‘더러운 귀신아 떠나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화가 없어집니다. 셋째, 귀신이 사로잡으면 일종의 정신발작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기 힘으로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겁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못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자꾸 하게 됩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도 그런 것이고 중독이라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또한 귀신은 사로잡은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떠났다가 자기 쉴 곳이 없으면 다시 들어옵니다. 사탄의 존재는 인정, 역사는 부인 귀신을 쫓으려면 먼저 여러분 안에 있는 귀신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귀신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고 귀신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귀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귀신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귀신은 종이호랑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들어와서 병도 주고, 슬픔도 주고, 고통도 주고, 비참함도 주고. 우울증도 줍니다. 남을 괴롭히고 비판하는 그런 음침한 곳은 귀신이 집짓기가 좋습니다. 그러니 내 자신을 밝고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슬픈 사건도 기쁨으로 바꾸십시오. 제가 좋은 말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통과’. 웬만한 건 전부 ‘통과’ 하고 보내십시오. 전부 보내고 오직 예수님만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귀신이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참아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제자들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속이 좀 상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능력을 행하기 원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막 16:17 ~18) 할렐루야. 우리는 멋진 크리스천이요, 능력 있는 크리스천이요, 어떤 원수 앞에서도 패배하지 않고 항상 승리하는 장수들입니다. 학교에 가서, 직장에 가서, 가정에 가서 패배하지 마십시오. 새벽기도 끝나면 꼭 주차장 문에 귀신이 하나 달라붙어 ‘내 차 찍혔네 안 찍혔네’ 이러면서 여러분을 넘어트리려고 합니다. 아침에 집에 들어가 보면 더러운 귀신이 여러분을 넘어트리기 위해 문턱에 있습니다. 거기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이러면서 탁 넘어가십시오. 그 아이가 오는 길에서도 귀신이 아이 몸을 바닥에 내던지자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꾸짖으셨습니다.(42절) 귀신에게 “나가주세요” 이러지 말고 “더러운 귀신아. 내가 너를 꾸짖노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너한테 명령한다”고 꾸짖으십시오. 여러분의 영적 권위를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모두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그 모든 일에 다들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43절) 예수님은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자기가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항상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뭘 할 지를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자주 잊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그 일에 빠져 목적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가 가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시시때때로 그가 중요한 순간마다 상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 예수님께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유의해 들으라. 인자가 배반을 당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누가 제일 큰 사람인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44~46절)‘누가 크냐’ 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고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누가 크냐’는 ‘누가 더 계급이 높으냐’, ‘누가 더 주도권을 잡느냐’ 이런 문제도 됩니다. 제자들 사이에도 ‘내가 예수님 오른팔이냐, 왼팔이냐?’ 이런 걸로 늘 예민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인정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내면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정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못 견뎌하는 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로 겪는 거절감은 깊은 상처가 됩니다. 내가 이 학교를 가고 싶은데 그 학교가 날 거절합니다. 나는 이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나를 거절합니다. 그러면 거절감의 상처가 생깁니다. 그런데 거절하지 않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을 환영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아시고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곁에 세우며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47~48절)제자들의 사고방식을 깨버리신 겁니다. 제자들이 늘 생각해왔던 질서체계를 바꿔버리셨습니다. 여러분, 크다 작다로 말하지 마십시오. 물질적인 것으로 비교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가장 귀히 여깁니다. 높이 생각하십니다.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오늘도 여러분의 생활에 충만하기 바랍니다. / 정리 전성희 기자 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