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부흥집회 3월 30일 -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 / 조정민 목사
시편 22편 12~21절 기독교는 고난의 섭리에 동참하는 믿음의 희망입니다. 고난을 자청하고 고난 가운데로 뛰어들어 악의 실체를 드러내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고난 가운데서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겪는 고난 많은 종교들이 고난 없는 세상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 고난 가운데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끝내 그 고난을 이겨냅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신비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십자가를 들어 능히 죽음을 이기셨고 무엇보다 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십자가에 담긴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난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자초한 고통은 고난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고난은 하나님 때문에 겪는 고난입니다.여러분, 고난은 기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고난을 겪으면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채워주십니다. 또한 고난은 영적인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가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고난 가운데 드러나는 ‘악의 실체’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악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많은 소들이 나를 둘러쌌습니다.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포효하며 먹이를 찢는 사자처럼 그들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듭니다.”(12~13절)악은 무리지어 다닙니다. 소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악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악은 무리짓고 연합해 강력한 힘을 내뿜습니다. 악은 처음엔 먼 곳에서 은밀하게 먹이를 살피다가 먹이를 향해 돌진해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어느새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악이 우리 앞에 나타날 때는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처럼 매섭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악은 공격적이고 잔인합니다. 악은 우리를 궁지로 몰고 피할 곳이 없는 곳으로 내몹니다. 그때 우리는 악의 실체 앞에서 무기력해집니다. 이때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불러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고난을 받는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때 우리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나는 물처럼 쏟아졌고 내 뼈들은 다 어그러졌습니다. 내 마음은 초가 녹아내리듯 창자 아래로 녹아내렸습니다. 내 힘이 질그릇 조각처럼 말라 버렸고 내 혀는 입천장에 붙어 버렸습니다. 주께서 나를 죽음의 흙바닥에 두신 것입니다.”(14~15절)우리는 악에게 쫓길 때 고난의 실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통은 육신과 정신적인 것이지만 고난은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고난, 즉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처럼 쏟아지고 뼈가 어그러지는 고통입니다. 도저히 견딜 힘이 없습니다. 힘에 겨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마음은 초가 녹아내리듯 창자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이때는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할 힘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입천장에 혀가 말라붙을 정도의 고통은 우리의 육신과 혼 그리고 영을 파괴합니다. 고난 가운데 만나주시는 예수님 지금 다윗이 겪고 있는 고난은 자신이 벌 받을 만한 행위의 대가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처참한 심정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때문에 겪는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가운데에서 만나주시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할 수 없고, 더 이상 그 누구도 의지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또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버릴 때,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인정받지 못할 때 예수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토록 처참한 고난을 안겨준 악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다윗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겪은 고통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개들이 나를 둘러싸고 악인의 무리가 나를 에워싸 내 손발을 찔렀습니다. 내가 내 뼈들을 다 셀 수 있을 정도가 됐으므로 사람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을 나누며 내 속옷을 두고 제비를 뽑습니다.”(16~18절) 16~18절까지는 고난의 환상입니다. 이런 일은 천 년 뒤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에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악인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죽었는지를 살피고자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볼 정도로 잔인합니다. 그들의 목적이 전리품이기 때문입니다. 즉 돈과 명예, 인기입니다. 또한 자신들끼리 속옷을 두고 제비를 뽑습니다. 속옷을 나누는 현장은 수치의 현장입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처절한 현장인 것입니다. 이처럼 잔인한 현장에서 악인들은 잔치를 벌입니다. 다윗이 본 십자가의 환상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순전한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 이처럼 잔인한 순간에 왜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하나님은 왜 응답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의 순전한 믿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형통할 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태양과 별처럼 빛이 납니다. 또한 믿음은 어떤 고난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고난이 닥쳐와도 담대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전한 믿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또한 순전한 믿음을 보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셔야 할 악을 드러내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의인이 고난 받을 때 악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인내를 나타내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오 여호와여, 멀리 계시지 마소서. 오 내 힘이시여, 어서 나를 도우소서. 내 목숨을 칼로부터 건져 주시고 하나뿐인 내 목숨을 개들의 세력에서 구해 주소서. 사자들의 입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주께서는 들소들의 뿔 가운데 있는 내 말을 들으셨습니다.”(19~21절)여러분,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간구를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기도 응답을 우리 때에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응답은 열매가 되어 우리 자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의 섭리에 동참하는 믿음의 희망입니다. 고난을 자청하고 고난 가운데로 뛰어들어 악의 실체를 드러내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요, 축복입니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고난 가운데서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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