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부흥집회 4월 2일 - 사랑과 사명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 / 라준석 목사
요한복음 19장 23~30절 ‘자기 십자가’는 맡겨주신 그 사람, 그 일, 그 장소입니다. 죽기까지 그것을 놓지 않고 따라야 합니다. 사명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며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3절에서 30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오전 9시부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오후 3시까지 여섯 시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여섯 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하지 않고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여섯 시간 동안 하셨던 모든 행동을 다 보면서 생생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십자가, 하나님 사랑의 정점 예수님의 모습을 19장에서는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절에 “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 사이에 질서가 있는데 그 질서를 어그러뜨리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본래 인간은 심판의 대상이고 하나님은 심판자의 위치에 서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날의 위치를 보면 인간이 심판자가 됐고,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것은 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죄의 오메가 포인트이자 하나님의 사랑이 정점에 달하는 사랑의 오메가 포인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말씀은 심성과 양심이 깨어지고 도덕이 파괴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옷을 넷으로 나눠 각각 하나씩 갖고 속옷까지 가졌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옷을 네 명이 하나씩 나눠가진 후 마지막 남은 속옷을 갖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과 마음이 완전히 깨어진 타락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24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었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시편 22편 18절 말씀을 그대로 이루기 위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예언된 사건입니다. 더 나아가면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죽이는 그 자리를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그곳에 계셨습니다. 요한은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역사를 이뤄가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십자가 사랑’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모습을 봐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양심이 깨어지고 하나님과 위치가 전도된 모습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런 나의 모습과 관계없이 늘 그 자리에 계셔서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까지도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어머니와 예수님의 관계를 통해서 또 다른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모습이 25절부터 27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를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무덤이 열렸습니다. 무덤에 죽어 있던 사람이 살아나서 동네에 들어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칼로 찢기도 어려운 휘장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위에서 아래로 다 찢어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다 들었고 보았지만 그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못 박는 인간의 죄악된 모습과 그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예수님께서는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옆에 있던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를 부탁하고 돌아가십니다. 여러분,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연구해보면 굉장한 고통이라고 합니다. 여섯 시간을 버티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집중합니다. 죽어가는 심한 고통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한 사람에게 집중한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깨닫기 시작합니다. 긴박한 순간에서도 예수님은 핑계 대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인류 구원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빛났던 첫 번째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 때문에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어머니를 부탁하는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집중하셨듯이 하나님은 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랑입니다. 사명을 끝까지 이루시는 예수님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함께 빛나는 또 한 가지를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이루려는 예수님의 사명을 기록한 것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의 마음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었습니다. 28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 말씀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핵심에 구원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2편 15절과 시편 69편 3절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신포도주가 담긴 그릇을 우슬초 줄기에 매달아 올려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습니다”라는 사건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시편 69편 21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이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 계획, 예언,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끝까지 붙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 16:24) ‘자기 십자가’는 맡겨주신 그 사람, 그 일, 그 장소입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그것을 놓지 않고 따라야 합니다. 사명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며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사랑하시는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사명을 죽기까지 이루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십자가 밑에서 사도 요한이 보았던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사명감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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