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부흥집회 4월 3일 - 보혈의 능력과 헌신된 일꾼들 / 하용조 목사
요한복음 19절 31~4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인해 우리의 죄가 녹아 없어지고 저주가 사라졌습니다. “그날은 예비일이었고 그 다음날은 특별한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시체의 다리를 꺾어서 내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31절) 말씀에서 ‘특별한 안식일’이라는 말은 안식일 기간 중에 유월절이 포함됐다는 의미입니다. 유월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린양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어린양이나 소를 잡아 피를 흘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로 인해 아담과 하와가 심어놓은 원죄가 녹아 없어지고 저주가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사라지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자 마귀가 소리치며 떠나는 영적 경험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런 영적 경험을 하는 사람과 지적으로, 이성으로, 상식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도 실족하거나 시험을 받고 유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혈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이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고난은 고난대로 오고 병은 병대로 걸리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이 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의 다리를 꺾었고 뒤이어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 와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32~34절)유대인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안식일에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 군인들에게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확인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두 명의 다리를 꺾고 시체를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신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구약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았던 것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온전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로마 군인 중 한 명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의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피와 물은 어린양의 속죄를 의미하는 ‘보혈과 생수’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고난 주간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매고 채찍에 맞는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면서도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요셉은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렸습니다.”(38절)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부자였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는 지도층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었는데 그것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위협과 무시를 받을 수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 속에서 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명화는 오랫동안 봐야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잠깐만 봐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 감동이 있는 것이 위대한 명화입니다. 위대한 음악 역시 반복해서 들었을 때가 아니라 단 한 번 들었을 뿐인데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맞은 하늘의 평화 요셉과 니고데모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봤습니다. 그들은 비참하게 조롱을 당하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두 손에 못이 박히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울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또 하늘의 평화를 느끼며 영적 죄사함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찾아갔던 것입니다. 일부 크리스천도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손해를 보게 되거나 비난받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헌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헌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과 보혈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적이 없거나 그저 내 상식과 경험의 수준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십자가, 구약 예언의 성취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과 생수를 보고 변화됐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단순한 피와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샘물 같은 보혈, 생수 같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보면서 그곳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고, 해가 빛을 잃고, 휘장이 찢어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영적인 눈이 뜨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말씀된 예언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사건에 우연은 없습니다. 고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 위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교회는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교회는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연주하기에 앞서 수많은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음을 조율하는 튜닝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악기들이 서로 조율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수록 훌륭한 음악이 연주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교향곡이 연주되기 위해서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어느 하나의 악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에 이끌려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