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고난주간 특별새벽부흥집회 3월 31일 - 고난의 종 / 이재훈 목사

 이사야 52장 13절 ~ 53장 6절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십자가가 바로 내가 있어야 될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를 대신해 죽으신 장소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 삶은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언서를 읽을 때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예언이 누구에 대한 예언이냐는 것입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언은 때로는 모든 사람을 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어떤 한 나라를 한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해서 말하거나 어떤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사야 예언은 어떤 한 사람,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과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왜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와야 하는가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고난받는 종이 지극히 높임을 받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라. 내 종이 잘 될 것이다. 그가 드높아지고 존귀하게 될 것이다.”(13절)장차 오실 메시아를 나의 종, 곧 하나님의 종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잘 될 것이다’는 것은 지혜롭게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해서 소명을 완벽하게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맡겨진 소명을 완전히 성취해서 지극히 존귀하게 높임을 받게 될까요? 이에 대한 설명이 14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14~15절에 사람들의 반응이 묘사됩니다. 여기에 보면 두 가지 놀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14절에서 비참하게 엉망이 되어버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두 번째 놀람은 고난당하신 분이 바로 진정한 메시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나타납니다. 그들은 입을 열지 못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14~ 15절에서 ‘전에는’이라는 단어와 ‘이제는’이라는 단어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53장부터는 왜 많은 나라와 왕들이 입을 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53장 2절에 보면 “그는 수려한 풍채도 없고 화려한 위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볼품이 없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목할 만한 외모로 나타나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기적이나 능력으로 메시아의 일을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신 종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하신 것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순종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  또한 1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분의 팔을 누구에게 드러내셨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팔’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팔’은 ‘힘’의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돼 있습니다.첫째는 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2절에서 ‘자라났다’는 과거형 시제입니다. 이 예언이 예수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이미 일어난 과거형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사야 전 시대나 동시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미래에 일어날 일인데 과거형으로 기록된 것이 참 많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너무나 확실하게 일어날 사건이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언적 과거’라고 설명합니다.‘새싹’은 나무의 생명력을 높이기 위해서 나오자마자 제거됩니다. 2절에서 마른 땅에서 뚫고 나온 싹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른 땅에서 싹이 나기 위해서는 힘겨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른 땅에서 간신히 뚫고 나온 싹과 같이 이 땅에 계실 때 연약한 모습으로 자라나셨습니다. 4절부터는 3절까지의 내용과 완전히 대조적인 분위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3절까지는 ‘많은 사람들’, ‘나라들’, ‘왕들’ 등 3인칭으로 쓰다가 4절부터 ‘우리들’로 바뀝니다.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메시아가 고난 받는 종으로서 왜 고통을 받고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멸시하고 배척하고 비난하다가 실상을 깨달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베일이 벗겨지게 됩니다. 진실을 알게 됩니다. 그 진실은 견딜 수 없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종의 고통, 고난, 죽음은 바로 우리의 고통, 고난, 죽음을 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일관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속, 칭의, 화목, 화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러한 단어들을 종합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속’이라는 단어입니다. 가장 포괄적으로 모든 구원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단어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세 가지 진리  십자가는 세 가지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양과 같아서 길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길을 잃어버린 영혼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는 선한 목자 같아서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그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양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분은 하나님이셨고,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시고, 속죄제물이 되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모든 구원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대리자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을 보면 죄와 구원의 관계가 잘 설명돼 있습니다. 죄란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로 오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온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내려오셔서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사건,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왜 그토록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를 무시하고 비난하고 배척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가 멸시받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영원히 멸시받았을 것이고, 그가 버림받지 않았다면 우리가 영원히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듣지 못했던 소식입니다. 어떤 종교, 어떤 사상에서도 듣지 못한 소식입니다.그런데 이 소식의 실상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입을 다물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경외함을 가지고 십자가를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십자가가 바로 내가 있어야 될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를 대신해 죽으신 장소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