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 4월 18일

▲ 하용조 목사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믿음만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능력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붙들고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고린도전서 1장 18~31절
기독교는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홍해를 건넜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점은 장정만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 같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고, 탁월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공동체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도 공동체 지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모을 때 힘이 있습니다.
변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고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를 건너는 것만이 구원 여행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고보니 광야가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의 훈련은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광야는 물이 없고, 햇빛을 가릴 곳도,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광야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내 인격과 사고방식, 말하는 법이 철저하게 고쳐져야 합니다. 변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자 약은 고난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부족해지면 하나님의 팔을 붙들게 됩니다.
신앙은 인식이 아닌 경험입니다.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삶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네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이 됩니다. ‘저기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기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를 통과했다고 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곧바로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홍해가 ‘구원의 강’이라면 요단강은 ‘성결의 강’입니다. 하지만 요단강이 끝이 아닙니다.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뜻합니다. 무섭고 거대하고 이길 수 없는 악으로 가득찬 세상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렇듯 어마어마한 여리고 성 앞에서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성을 바라보며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여리고 성들이 나타납니다. 병이나 가난, 가정 파괴나 사업 실패, 패배 등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내 힘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금새 깨닫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기도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앞에 당도했을 때 첫 번째로 일어난 일은 40년 동안 먹던 만나가 끊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먹던 음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었지만 앞으로는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또 여리고 성 앞에서 여호수아가 고민하며 기도할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납니다. 하늘의 천사이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것입니다. 그 순간 여호수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일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소풍을 나온 것이 아니라 격렬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로 끼어들려고 합니다. 깨어 있고 경계심을 조금이라도 흩트리면 마귀는 그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입대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경계입니다. 저녁에 간첩이 쳐들어올까,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을까를 대비해 밤새도록 보초를 서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는 사자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마귀를 대적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승리할 수 있는 믿음 생겨
새벽기도란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40일 동안은 마귀가 얼씬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병과 갈등, 무거운 짐은 떠나갈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난 여호수아는 백성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와 백성이 함께 여리고 성을 돌며 기도할 때 여리고 성은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린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여러분이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의 때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십니다.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일사천리로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갔습니다.
온누리 공동체가 새벽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에서는 영적 초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때는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합니다. 생각이 좋은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길로 갑니다.
기도의 능력 ‘십자가’
번쩍인다고 모두 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이 옳은 것입니다. 생각 대신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생기면 골몰이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생각하면 내가 움직이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우리가 비전의 땅을 놓고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그만 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합니다. 기도가 충만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생각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울며 떼쓴다고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믿음을 집어넣어 주십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기도의 핵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냥 기도하면 주문, 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면 능력이 생깁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든, 사업을 위한 기도든, 가정을 위한 기도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 일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본이 살아납니다.
리비아를 중심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시민 반란이 일어났는데 왕들은 그 사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반란군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만듭니다.
여러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로 달려갑니다. 울어도 하나님 앞에서 우십시오.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은 약하게만 보입니다. 천둥번개를 쳐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하시면 간단한 일을, 왜 하나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기다리고 계실까요.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 척 하고, 아는 척하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면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왜 더디 오실까’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마 ‘일찍 가면 너부터 죽는다. 네가 구원받고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심판은 이미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미 우리들의 머리 위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행하는 믿음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함과 같습니다.(30~31절)”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조상이 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믿음이 반드시 여러분에게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매일반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에게 들어가면 여러분의 병은 천리만리로 떠날 것입니다. 믿음이 들어오면 모든 불안이 사라집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능력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십자가를 붙들고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