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2일_ 하용조 목사 십자가, 새 시대의 분기점

십자가, 새 시대의 분기점
하용조 목사
누가복음 23장 39~49절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아버지의 뜻 안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한 몸으로 영광스럽게 오셔서
우리의 약한 것을 치료해주시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시는 귀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달력상으로 보면 예수님이 오전 9시에 처형을 당하고, 해가 빛을 잃고 어둠이 깔리며 오후 3시까지 침묵의 시간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절을 하셨고 잠깐 눈을 뜨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눈을 감으신 그 날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전통적으로 금식도 하고 즐거운 오락도 멈춘 채 기념적으로 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날,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해 십자가를 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도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라고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은 상황입니다. 할 때는 모르지만 지나가고 나면 내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예수를 모독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아라!’”(39절)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이 사람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신경질을 낼까 궁금했습니다. 옆에 있는 십자가에서 만났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이 사람은 화가 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을 보고 화가 난다는 것. 인류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십자가만 보아도 예수님이란 말만 들어도 화가 나서비난하고 모독합니다.
전주대학교 스타센터를 설계한 아론이라는 형제는 홍콩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건축학자입니다. 그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한국에 와서 제일 좋은 인상을 받은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니 십자가가 많이 보인 것이 제일 좋았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십자가가 많은 것에 싫증을 내고 있는데 이 형제는 전혀 반대의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선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 십자가는 너희 나라를 지켜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십자가 옆의 사람이 예수님에게 화를 내고 삿대질과 욕을 하면서 ‘너나 구원해 보아라. 네가 메시아이면 너나 나나 구원해 주면 될 것 아니냐’라고 모욕한 사람의 배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 사람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없고 인간은 동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권력에 의지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또 인간은 본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함부로 쏟아냅니다.
여러분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데 이렇게 함부로 말합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도 곱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이고 보배로운 자이고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데 왜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말을 합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나를 존귀하게, 곱게 다루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를 존귀하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말을 함부로 했습니다. 또 한 가지 해석은 하나님께 무슨 상처를 받았었던 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받지 못한 세상 대부분의 사람의 모습을 닮고 있었습니다. 그 같은 부류의 사람을 대표해서 십자가를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
“그러나 다른 죄수는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너도 똑같은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은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40~41절)
이 사람은 똑같은 죄인이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님을 본 순간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을 옹호하며 십자가를 지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 번째는 이 사람은 구원의 필요성을 느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이 있다면 구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생각이 있는 사람, 영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순간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분이고,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신학적 관점은 내세를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할 자라는 것을 알았고 또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구원을 요청합니다.
더 재밌는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시간을 끌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에는 즉각 응답하십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전도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너무 좋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정오쯤 돼 어둠이 온 땅을 뒤덮으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됐습니다.”(44절)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실에 접근해서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의 희망은 끝났습니다.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 사인이 부활이고 세상의 모든 죄가 심판을 받고 종말을 고하는 것이 십자가이며 부활은 새로운 출발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전 9시에 예수님이 처형되시고 12시부터 3시까지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부탁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최후를 맞으셨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예수님은 억울하다고 소리치지 않고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을 겪으면서도 예수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숨은 육신의 숨도 되고 영혼의 숨도 떠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죽음에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이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이셨구나’라고 백부장은 말했습니다. 구경꾼들도 죽이라고 소리치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죽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쳤습니다.
성령의 기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금단의 문입니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사들과 같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임할 때에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영이 기도합니다. 영이 기뻐하고 구원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육신이 기도하는 것과 영이 기도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믿음의 단계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할 때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서론은 이렇게 하고 본론은 이렇게 하고 결론은 이렇게 내리고 기도제목은 이것으로 하고 그러다보면 기도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신의 기도가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도는 말씀으로 인해 영이 통하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내가 금방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로 아십니다. 보충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내 신음소리와 고통소리를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찬송을 올리는 임재의 시간 일 뿐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의미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