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일_ 조정민 목사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
조정민 목사
야고보서 4장 11절 ~17절
“여러분,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마십시오.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판단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굽 땅에서 구원받을 때에도 공동체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훈련받을 때 역시 공동체로 훈련을 받았고 가나안땅으로 파송될 때에도 공동체로 함께 갔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12명의 제자를 불러서 공동체로 세웠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바로 공동체를 깨뜨리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무너뜨립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해야 공동체가 지켜지고, 번영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방, 판단하지 마십시오
"형제들이여,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비방하거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율법을 판단한다면 당신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11절)
여러분,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비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비방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없을 때 상대방을 좋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판단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판단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갑니까? 우리는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판단과 분별(구별)은 어떻게 다릅니까?
판단은 자신의 생각이자 경험입니다. 판단은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나’입니다. 그러나 분별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분별의 기준은 말씀입니다. 분별의 기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끊임없이 판단하는 사람은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판단의 시작이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비판하는 것이 습관이 되는 것을 아십니까? 비판 하는 것이 회로가 형성 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이 끊임없이 비판적인 시각과 사고로 판단하고 그런 회로가 형성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안보이고 그것만 얘기하게 됩니다. 마치 현명한 것처럼,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습관이 들어버린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오늘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비방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판단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비난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상대방이 다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다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금지하는 것은 생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실 때, 우리가 진실로 사는 방법 우리가 제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하라고 명령하시거나 ‘하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비난은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쪽저쪽 모두에 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을 베기 전에 내가 먼저 베여야 타인을 벨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방하지 말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난하게 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첫째는 당신이 그렇게 판단하기 시작하면 바로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섬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을 때에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모저모를 따지고, 과거와 현재를 감찰하듯이 바라보면, 그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판단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게 되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만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도 실수로 이 땅에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보내신 목적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그 목적이나 소명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판단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내려주신 목적과 소명을 판단하는 것이고 비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허락하신 모든 것들을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눈을 가려주시고 은혜로 마음을 만져주셔서 말씀이 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 그 사람을 세우신 하나님을 보고 찬양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순간 사랑할 수도 섬길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말씀의 능력을 따르십시오
"율법을 주신 이와 심판하시는 이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망시키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12절)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마지막 때에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이웃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라 말하며 끊임없이 유혹으로 속삭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우리의 무의식까지 파고들도록 회로를 만듭니다. 그것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러니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1년 동안 지내며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13~14절)
우리는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판단에는 삼단논법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옳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나는 그 사람을 다 안다는 전제입니다. 셋째는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내리는 판단은 다 옳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런 우리가 무엇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판단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는 것, 그것의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비난을 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 상황을 바꾸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바꾸거나 내 비전을 새롭게 하면 됩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결
"그러니 여러분은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합니다. 이러한 자랑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5~16절)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난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랑하면 공동체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랑은 진실이 아니라 부풀려지는 것입니다. 자랑은 죄악의 뿌리이자 악의 근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여러분, 공동체는 가정하고 교회밖에는 없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란 시기하지 않는 것이고 질투하지 않는 것이고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질투하고 다투고 비판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안은 그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흘러넘치는 가정과 교회에 무슨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없지 않느냐.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부어주시고 소망을 줄 것이며, 너희들이 날마다 내게 간구하면 지혜를 부어줄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그리고 비전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전으로 하나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땅과 건물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전’을 놓고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 그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되게 하시옵소서.
/ 정리 조유진 기자 uji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