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율법을 버리고 성령의 새 것으로 - 이재훈 목사

율법을 버리고 성령의 새 것으로로마서 7장 1~12절이재훈 목사

 

 

 

우리의 마음에 성령, 사랑, 진리의 법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이 법으로 인해 이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로서 성령의 법에 따라 살면 비로소 성령에 속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6장에서는 죄라는 관점에서, 7장에서는 율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같은 내용을 7장에서는 법의 관점으로 다시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죄와 율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율법을 통해 지지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죄인이 되고 정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죄는 율법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이 죄는 아니지만 죄는 율법을 통해서 지지를 받습니다.

 

율법에 대해 죽은 자

 

“그러므로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에게 속해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4절).

죄와 율법은 동전의 앞면과 같이 서로 붙어 있습니다. 죄에 대해 죽은 자는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워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워져야 합니다.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정당한 의무이자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불의한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보여주고 정죄해서  또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율법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기준에 미달하는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의 요구 앞에 날마다 정죄를 받고 죄책감에 빠지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덕과 윤리를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철저한 윤리와 도덕을 통해서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의로운 인생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오늘의 본문 1절부터 6절까지는 이러한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기에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율법의 요구에 의해서 정죄 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대해 정죄를 받고 율법의 요구 앞에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타락한 옛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의 요구에 의해서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 죽은 자는 곧 율법의 요구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와 율법의 관계, 우리와 죄의 관계, 우리와 율법의 관계는 마치 부부관계처럼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습니다. 부부가 한 몸인 것처럼 이 관계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늘 율법의 정죄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지배를 당합니다. 법이 없는 사회에서도 양심의 법에 따라 지배를 받습니다. 어떤 법이든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의 속박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순기능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에 비춰 보지 않았다면 나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인해 기회를 타서 내 안에 각종 탐심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입니다”(7~8절).

오늘 본문 7~8절에서는 죄와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율법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율법에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율법 앞에서 우리의 영혼을 스캔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말씀을 거울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외모를 거울을 통해 다듬는 것처럼, 말씀과 율법 앞에서 우리의 영혼을 살펴보고 어떤 죄가 내 안에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순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법이 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죄가 법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 법을 어기고 싶게 하는 탐심을 만듭니다. 법에 대한 반발심을 만들어 내고, 죄는 그 기회를 타고 탐심을 일으킵니다.

 

우리와 율법의 새 관계

 

그렇다면 율법과 우리는 어떠한 관계여야 합니까. 그리스도로 인해 의롭게 된 자는 율법과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6절).

이 말씀은 우리와 율법의 새로운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는 율법주의에 빠질 필요도 없고 또한 율법을 무시하며 율법과 우리는 상관없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새로운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생명과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님이 오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는 판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판에 새긴 율법이 주어짐으로 우리가 율법을 읽고 판단하고 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읽지 않으면 율법을 행할 수가 없고, 율법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면 율법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잘 읽고 깨닫는다 해도 행할 마음이 없으면 율법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분명히 주어졌어도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성령의 법’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령의 법, 사랑의 법, 생명의 법이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이것이 ‘성령의 법’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예전에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벌이 임했기 때문에 해야만 했고 죄책감을 느꼈지만, 성령의 새로운 것이 내 안에 임하면 주님의 법을 순종하게 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순종,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마음에서 순종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성령의 법’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시고 율법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율법의 모든 정죄를 예수님이 모두 감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과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되어 성령님을 통해 율법과 새로운 관계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에는 성령, 사랑, 진리의 법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법,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법이 새겨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법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었던 우리가,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인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법으로 살면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로서 성령의 법에 따라 살면 우리는 성령에 속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의 율법이 새겨지길 바랍니다. 그 성령의 법이 우리의 삶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거짓 없는 삶으로 이끌어 의로운 삶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롭게 되어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율법과 새로운 관계를 이룸으로써 날마다 의로운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조유진 기자 uji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