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공간(The Space between Us)”
“우리 사이의 공간(The Space between Us)”
사도행전 17:16~34
어윈맥매너스 목사(LA모자이크교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아직 발견되어 질 것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발견되지 않고 숨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험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서 나아가고, 개척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접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펼쳐주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모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공간 중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너와 나의 사이, 우리 사이에 있는 공간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서로 바로 옆에 앉아 있다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듯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두 인간 사이에 있는 공간, 모르는 사이에서 친구가 되기까지 그 공간의 틈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겠습니까.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그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매우 격분했습니다”(16절).
도대체 무엇이 바울사도를 격분하게 했습니까. 바로 우상숭배하는 그 거리가 그를 화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에 경배하는 그들을 보고 격분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하나님, 경배를 받으셔야 하는 그분에게 경배가 올라가지 않은 것에 대한 격분입니다. 바울사도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회당에 가서 말했습니다. 아테네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데 왜 회당에 가서 말한 것일까요. 그곳에서 얘기한다고 아테네가 변화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과 같이 있기를 좋아합니다. 상반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초면인데도 처음부터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안에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익숙한 문화에 젖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바로 교회입니다.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즐기는 음악, 가치관도 비스하고 믿는 내용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들과 사는 것은 너무 쉽지 않습니까. 내 마음 속 기대를 채워줄 수 있고 공감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교회에 데려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은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모든 행위들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통역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일단 교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정말 사랑한다면 교회 속 예배는 세상으로부터 친구를 데려왔을 때에도 함께 찬양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우리에게만 익숙한 곳이 아니라 처음 온 사람에게도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곳에도 문을 열고 전도대상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일차적인 공간을 떠나 이차적인 공간을 발견해야 합니다. 일차적인 공간에 있다가도 이차적인 공간으로 나아가 그곳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 직장, 커피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주말을 보내는 공간,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시장과 같습니다. 바울사도도 계속해서 시장에 나아가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만 경배하고 주중에는 주님에 대해서 벙어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중에 이차적인 공간에서 살면서 그곳으로 돌진하여 솔직하게 하나님을 증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해야 할 일은 주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즐기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주어진 모든 순간을 즐기고 만끽하는 것을 먼저 하십시오. 만약 이곳에서 즐기면서 살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더 먼 땅으로 보내시길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 여호와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돌진하고 모험하고 있다면 세상이 자석처럼 여러분에게 들러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차적 공간,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헬라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귀한 곳, 바로 영성이 있다는 장소로 바울사도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다 새로웠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나 성경을 가지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만든 우상을 보고 그 우상숭배를 하는 문구를 가지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하는 중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이 아직 모르지만 알게 될 하나님으로 향해 갔습니다.
제가 부인이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방청하기 위해 오랫동안 긴 줄을 서야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기에 옆에 사람과 자연스럽게 한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류에게 다가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다 믿을 수 있겠냐,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자 생명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저 멀리 인도 땅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과 전 태어난 곳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부인이 좋아하는 쇼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저와 당신은 서로가 태어난 땅도 아닌 이곳에서 줄을 서다가 우연히 만났습니다. 태어나 자란 곳은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살면서 영어를 배우게 하셨고 미국에서 지내게 하셔서 지금 이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 오게 하셨다면, 그런 하나님이시라면 인도에 계신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지대한 관심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순간, 정말 어색했던 그 장시간의 공간속에 정말로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사람과 제가 예수님 안에서 가족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고 제대로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모험할 준비를 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현장의 삶속에서 셩령을 붙잡고 모험하지 않는다면 저는 여러분을 설득해 어떤 선교지를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무엇인가 발견하고 모험하고 개척하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먼 훗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았다고 주님과 함께하는 모험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함께 이런 인생을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봅시다.
/ 정리 조유진 기자 uji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기자 onnuri@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