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웨이브 둘째 날 저녁 부흥집회(3월 25일)
3월 25일(목) 저녁부흥집회(2) 에스겔 37장 1절-28절
제목 : 교회의 부활, 민족의 부활
에스겔 시대와 유사한 오늘
에스겔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 당시 주변 정세는 지극히 혼미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은 어떻습니까. 탄핵으로 나라가 분열돼 있고 총선이 코앞에 닥쳐왔고 국민들의 마음이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시국과 비교했을 때 에스겔 시대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초강대국이던 바벨론과 앗수르와 애굽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스라엘이 있었습니다. 사실 에스겔 자신은 BC 549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직접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 기록은 포로된 지 5년째 되던 해에 비참한 민족의 운명을 보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절망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범죄하고 우상 숭배했던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놔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택하신 백성이라도 죄를 범하고 우상숭배하고 하나님 싫어하는 것만 한다면 채찍하고 고난을 주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떤 방법으로 심판하셨을까요. 둘째, 하나님은 강대국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심판했습니다. 강대국을 사용해 이스라엘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을 초토화시켰던 그 강대국에게 죄의 대가를 묻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징계하시고 채찍하시고 고통을 주시면서도 영원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회복시키시고 부활을 시키시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다시 삼아주신다는 메시지가 바로 에스겔서에 나오는 환상이고 비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중요한 세 가지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밤에 에스겔서가 우리에게 적용이 되고 우리 민족에게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말씀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 하더라"(1절) 첫 번째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권능으로 내게 임하사 여호와의 신이 나를 데리고 해골 골짜기로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나타나는 여호와의 신은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가신 성령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지 창조 때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입니다. 천지 창조는 두 개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했고 흑암과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 속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했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됐습니다. 그때 창조가 시작됐습니다. 창조의 배경에는 말씀과 순종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창조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바람을, 영을, 성령을, 하나님의 기운을 불어넣어 생명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 날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서 그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들 머리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임재하고 기름 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교회입니다. 성령님께서 에스겔을 어디로 데려가십니까. 화려하고 아름다운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골짜기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그 골짜기는 어떤 골짜기입니까?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뼈들이 많은 어지럽게 흐트러져있는 그 뼈들이 있는 그곳으로 데려갔다는 것이죠. 그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바로 데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에스겔 때의 골짜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왜 주여 나로 이것을 보게 하십니까. 왜 이 민족을 보게 하십니까.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한번 본 걸 어떡합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성령으로 이끌어 죽음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뼈들만 남아있는 그곳을 보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본다는 것이 비전입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보지 않는데 어떻게 가겠습니까. 보지 않는데 어떻게 상상하겠습니까. 높이 나는 새가 멀리보고 보는 것만큼 가는 겁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와 동시에 이 땅의 비참함도 보게 되길 바랍니다. 해골 골짜기, 이 뼈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심히 많고 말라비틀어진 뼈 그냥 가서 뼈를 본 게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이끌고 뼈 사이를 지나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가 본 뼈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뼈가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뼈가 아주 말라 비틀어졌다는 것입니다. 비틀어졌다는 것은 아주 오래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뼈인지 알 수 없고, 다 부숴져 있는 비참한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뼈들이 다시 살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이 그런 질문을 하십니다. “에스겔아, 이 뼈가 산다고 생각하느냐”(3절). 성령님이 IQ가 낮아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게 아닙니다. 마른 뼈가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불가능한 질문을 하십니다. 통일된다고 믿느냐. 오늘 우리 민족이 살아 날수 있다고 믿느냐. 에스겔은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절).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저 사람이 예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때마다 우리는 대답합니다. “포기하세요. 저 사람은 안됩니다.” 절망가운데 모든 것이 불가능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살아난다고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세 가지 명령을 해 주십니다. 세 가지 명령 첫째, 하나님은 에스겔을 시켜서 뼈들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뼈들에게 대언하라(4절). 둘째, 뼈들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라고 명하십니다. 이 민족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 민족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민족과 저들의 영혼을 살리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뼈에게 혈관이 있습니까, 세포가 있습니까. 이 죽어 있는 뼈들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베풀 것을 이미 결정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미리 여러분을 선택하기로, 이 민족을 구원하기로, 여러분을 축복하기로, 모든 민족과 열방을 축복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역자들이 외국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나라를 대표해서 왔습니다. 일본에서 온 50여명의 사역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묻고 계십니다. 너는 일본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느냐. 너는 이 민족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느냐 라고 말입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말이 바로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입니다. 이 죽어가는 백성이, 이 희망이 없이 유랑하는 백성이 살아날 것을 믿느냐한 질문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마른 뼈들에게 말하라. 이 뼈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가 이 뼈들에게 생기를 주어 다시 살게 할 것이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과 회복은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6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굉장히 자세합니다. 굉장히 정교합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마른 뼈들 위에 힘줄을 두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체의 모든 신경조직과 인파조직들을 내가 재생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살을 입히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죽을 덮여주겠다.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도록 피부를 만들어 줄 것이다. 참 재밌습니다. 이 말씀을 보니 굉장히 놀랍습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는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믿음의 기적을 보게끔 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생기를 부어 줄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실 때 그냥 살리지 않으시고 놀랍게 질서 있게 시간을 따라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씨를 하나 뿌리면 그 씨가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하나님은 열 개를 만들고 천개를 만들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축복을 너희에게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이것을 보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뼈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합니다. 뼈들아 움직여라. 그런 일이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생기는 없더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7,8절) 저는 여기서 제일 놀랍니다. 뼈야 제자리로 돌아갈 지어다 라고 명령했더니 저 쪽에 있는 뼈가 여기에 와서 제자리를 찾아 맞춰갑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다 붙어나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할렐루야. 더 놀라운 사실은 힘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살이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위에 가죽이 덮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생겼으나 무엇이 없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생기가 없더라.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껍질은 변했는데 속은 아직 안 변했다는 것입니다. 형태는 다 됐는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가 안 되기를 바랍니다. 집도 크고 숫자도 많고 돈도 많고 사람도 많고 프로그램도 많은데 생기가 없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형태는 다 돼있어요. 그러나 시체와 같습니다. 성령님이 없는 교회는 죽은 시체입니다. 사람들만 움직이고 프로그램들만 왔다갔다 하고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가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산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합 왕을 기억하십니까. 바알 제사장들이 제단을 쌓고 거기에 송아지를 가져다 놓고 이 사람들이 소리를 치고 춤을 추고 아무리 해도 불이 안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오늘 교회가 그렇게 많이 예배를 드렸는데 그렇게 찬송을 많이 불렀는데 그렇게 많이 설교를 들었는데도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어요.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변화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더 자극적인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현란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끄럽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 너희가 송아지 잡고 요란하게 뭘 하지만 난 피곤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예배 안 받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죄악을 품고 드리는 그런 예배는 안 받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악을 품고 드리는 예배,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 모양만 화려한 예배, 형식만 있는 예배, 모양만 갖춘 예배 이 모든 것에 난 질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상한 심령이요. 그런 형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있어야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여러분 육 가지고 뭘 어떡하겠다는 것입니까. 시체가 아무리 많아도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십만 명이 모이고 백만 명이 모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부에서 6부까지 예배를 드려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시체와 같습니다. 첫 번째에서 하나님이 뼈들에게 명령하라고 하셨고 이제 두 번째 생기에게 명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기에게 대언하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 나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9,10절) 오순절 말씀 같습니다. 뼈들에게 들어가라고 생기에게 명령합니다.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겁니다. 요단강에서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겁니다. 에베소교회 사람들에게 바울이 안수할 때 그들에게 이 성령이 들어갔습니다. 오늘 이 집회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통과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교회를 통과하길 바랍니다. 목사님들을 통과하길 바랍니다. 그들의 사고방식 속에 그들의 생각 속에 능력과 기적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있음을 고백하도록 성령님이 통과하시길 축원합니다. 생기여, 이 사망당한 자에게 들어갈 지어다. 오늘 저녁 이런 일들이 여러분께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성령을 부어 주옵소서. 이 척박한 이 저주스런 이 피 많이 흘린 땅에 하나님의 성령의 세례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은혜 받는 교회는 자동차 앞바퀴가 교회 문턱에 닿기만 해도 은혜 받는 걸 봤습니다. 은혜가 되는 교회들은 그 교회에 들어가기만 해도 은혜 받습니다. 내가 뭘 해서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안에 성령님이 계시니깐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잘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냥 잘 되는 겁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부어 주실 때는 그냥 부어 주시는 겁니다. 조건 없이 부어 주시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면 죽은 해골 뼈들이 살아나는 겁니다. 그것을 주님이 오늘 보여 주십니다. 큰 군대를 이룬 것처럼. 주님, 오늘 우리에게 이런 축복과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내 영혼이 심히 갈급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살도 있고 건물도 있고 사람도 있고 프로그램도 있고 조직도 있고 다 있지만 생기가 없습니다. 예배도 있고 설교도 있고 성경공부도 있지만 생기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당신이 오시옵소서. 당신이 움직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죠. 그 분이 움직이고 말하는 겁니다. 그 분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생기야, 마른 뼈에게 들어갈 지어다 명령하십시오. 생기야, 저 마른 뼈들에게 들어갈 지어다. 죽어 있는 교회 속에 들어가시옵소서. 믿음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죽음과 분열과 저주와 극한 대립 속에 주의 영이 임하여 주옵소서. 저들을 살려 주옵소서. 여러분 안에 있는 귀신이 떠나가고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절망과 저주가 떠나갈 지어다. 분열의 영이 떠나갈 지어다. 미움의 영이 떠나갈 지어다. 이렇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생기야 들어갈 지어다. 그것이 안수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영이 들어와야 육이 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만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일어나서 이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생기가 들어간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교회에 부흥이 얼어날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간구하고 명령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성령이 움직이십니다. 마른 뼈는 이스라엘 11절에 이 뼈들은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합니다. 포로에 지친 그들, 절망했던 그들, 성전을 빼앗겼던 그들,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던 그들, 헌금할 수 없었던 그들, 부인은 끌려가고 건강한 청년들도 노예로 끌려가고 어린 아이만 남고, 성전을 초토화되고 사방 어디를 보나 희망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 뼈들이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11절) 여러분, 부흥은 성령님이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뼈들에게 명령하라, 생기에게 말하라, 그리하면 큰 군대를 이루리라. 이것이 부흥의 모든 것입니다. 부흥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에스겔 37장과 같은 기적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민족 통일의 비전을 주십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두 쪽으로 갈라진 막대기를 합하여 붙이이라 약속하십니다. 교파가 하나 되어라 교단이 하나 돼 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는 요한복음 17장의 핵심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게 하시고 저들이 하나 되길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임금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입니다. 이 땅을 통치하시는 분은 노무현도 김정일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논리는 야당, 여당이 아닙니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리고의 논리가 아닙니다. 보수가 옳습니까, 진보가 옳습니까. 이런 논리로 가면 피 흘림이 있습니다. 민주화에 속지 마십시오. 민주인사에 속지 마십시오. 예수화요 복음화만이 답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민족의 왕이 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통일입니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 시키지 마십시오. 역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왕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의 교회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발문) 1. 마른 뼈들에게 명령하십시오. 생기에게 들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민족 통일을 위해 한 한 임금,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심을 인정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베풀 것을 이미 결정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정리 차명권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