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S 29 Vision
3월 24일 오전 주제강의 1
우리들이 꿈꾸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꿈꾸시는 교회요 성령님께서 춤추시는 교회입니다. 때로는 교회가 세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지만 본질적으로 교회는 주님의 꿈이고 희망입니다. 저는 교회가 교파나 교단 등 인간적인 것들을 다 떠나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원형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대안이라고 믿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한 교회 중에서 예수님께서 꿈꾸시고 성령님께서 춤추시는 그런 교회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완전한, 흠이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흠이 있고 연약하고 문제가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아니라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의 모습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첫 시간에 먼저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델은 어떤 것이가, 사도행전적 교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28장을 보면 열 가지 교회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도행전 교회의 두드러진 특성은 성령으로 교회가 탄생되었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성령으로 탄생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에 오순절날 성령님의 강림과 함께 120명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충만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고 밖으로 나가 예수님께서 우리 주인이시며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성령 체험이 없는 교회, 성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회는 인간적, 제도적인 교회는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안의 조직, 건물로서는 존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로서 성령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이 시대에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성령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목사님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고 건물이 크고 프로그램이 많고, 구제하고 봉사하며 세상에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곳이 그 곳이라면 그곳이 비록 작은 교회요, 시골에 있는 교회라도 그 교회는 기적 만들어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교회의 첫째 특성이 성령으로 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 공동체
둘째 2장 42~47절에 나타난 사도행전 교회의 실체는 예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들은 서로 모여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공동체, 떡을 떼는 공동체,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나 교파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릇일 뿐입니다. 우리가 물을 담기 위해 그릇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 안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그릇이 깨끗한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극장이 아닙니다. 예배는 공연이 아닙니다. 교회 오는 것은 좋은 공연을 보고, 한 바탕 스트레스를 푸는 종교적 잔치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보혈,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 공동체, 하나님 나라를 이땅에서 경험하는 것이 사도행전에서 보여 준 교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축복하고, 믿음을 논하고, 가진 재물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약한 자를 위로하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는 실제로 그런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로마가 흔들렸습니다. 그들 삶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세상 철학과 이념은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만든 사람들은 세상 속에 살았지만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징은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서 10절 말씀에 나오는 사건은 사도행전의 상징적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손을 들고 찬미하며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기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설교가 홍수처럼 많지만 그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현대 교회에 사도행전적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순, 구역, 모임에서 술, 담배 도박을 끊고 성중독에서 해방되고 우울증을 벗어나고 어둠, 죽음의 세력이 떠나가는 기막힌 간증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쓰레기 줍고 세상이 잠을 잘 때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새로운 기적이 날마다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기적이 아닌 장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시대가 악하면 지금도 악하고 그 시대가 혼돈스럽다면 지금도 혼돈스럽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초대교회가 존재했다면 오늘 이 시대에 초대교회가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 그런 일, 그런 부흥이 끝나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한, 보혈의 능력이 있는 한, 성령이 역사하는 한 이런 기적이 날마다 있을 줄 믿습니다.
넷째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은 소유를 나누는 것입니다. 4장 32절부터 35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몇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자기 물건을 제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 속에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면 낮은 곳을 다 덮습니다. 어느 특정한 지역만 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어느 특정한 지역, 특정한 사람에게만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파도가 친다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우리가 물질 문명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예수 믿거나 안 믿거나 물질의 영향력을 받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적 교회는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아픔을 나눠준 공동체였습니다. 물질이 중심이 아닌 예수가 중심인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공동체는 물질의 유혹과 인간적인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이 지상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새로운 사회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만약 온누리교회 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교회가 이런 사도행전적 사회를 실현한다면 이 지상의 모든 갈등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거룩과 순결 지키는 예수중심 공동체
다섯째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징은 거룩과 순결을 강조합니다. 5장 1절에서 4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 땅을 팔아 그 중 얼마를 빼돌린 후 다 내놓은 것처럼 속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즉사시켰습니다. 저는 그 본문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너무 하신다 생각했습니다. 요즘 시대 같으면 죽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즉사 시킨 이유는 그만큼 교회의 거룩과 순결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읽기 위해 촛불 한 자루를 훔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노동자를 착취해 십일조하고 불법으로 돈을 벌어 헌금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하면 어떠냐? 네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였다’며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초대교회에서 지체 없이 제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행전 교회는 어떤 어려움과 고난과 위기가 있다 할지라도 거룩과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일 때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 많은 일을 하고 선교사 많이 보내고 전도했다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거룩할 때 영광 받습니다. 교회가 순결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여섯째 사도행전적 교회는 고난 중에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5장 17절과 20절의 말씀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8장을 통해 발견하는 메시지는 복음은 고난 중에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는 고난 당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핍박하고 고난을 주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했던 만큼 예수 믿고 나서 그대로 당합니다. 돌에 맞고, 매맞고 굶주리고 쫓겨났습니다. 당대 지성인, 당대 위대한 학자가 그렇게 살 이유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지상에는 아직도 고난 당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전세계에 우리 나라처럼 복음 전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목회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북한 공산정권 치하, 중국 처소교회, 아랍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우리들이 할 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사람 중 고난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고난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 오해를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일곱째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징이 6장 3절에서 7절에 나타납니다. 영적 리더를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최근 위기는 지도력을 나누지 않고 독점하는 것입니다. 지도력을 독점하는 것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교회는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데 전무해야 하기 때문에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 그들을 격려하고 축복해 일을 담대히 맡깁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나눠주는 리더십, 평신도를 세우는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와 평신도가 환상적인 팀워크을 이루는 드림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목사가 할 역할이 따로 있고 평신도가 할 역할이 따로 있는 리더십,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리더십, 지배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십, 영향력을 주는 리더십을 만들 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이 일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놀랍습니다. 그 당시 정치, 경제, 노예 체제와 너무 다른 체재를 교회가 먼저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희망은 교회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리더십부터 변해야 합니다. 누구도 교회 리더십을 독점하면 안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성령의 리더십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저는 목사라는 엑스트라에 불과합니다. 어떤 분은 장로라는 역할을 하는 엑스트라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공동체에 와보면 사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느껴져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사람이 영광을 받으면 교회는 죽기 시작합니다.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성령님에게 있습니다. 말씀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은사와 능력에 따라 한 몸을 이뤄 봉사를 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적 교회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복음 전하며 쓰는 사도행전 29장
여덟째 사도행전적 교회의 특성은 이방인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입니다. 10장 44절에서 48절은 이탈리아 군대장관 고넬료와 그 당시 예수님 제자들의 책임자인 베드로와 만난 이야기입니다. 고넬료는 의인이고 구제하는 사람이었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도 믿었고 부활도 믿었지만 유대주의자였기에 이방인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섭리를 깨달아 고넬료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줍니다.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했으니 내가 왜 하나님의 신비스런 세례를 금하리요?’ 이것은 사도행전 사건 중 아주 획기적이고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 주는 사건입니다. 이방인에게도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동일하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 차별이 참 많습니다. 남성 여성 차별이 있고, 어린 아이에 대해 차별이 있습니다. 제가 굉장히 속상한 것이 이 땅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고 사랑하고 받아줘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방인이냐 선민이냐 차별이 없습니다. 민족적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별을 합니다. 우리민족이 세계화 되려면 이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외국인이 살기 힘든 땅입니다. 유대인도 중국인도 우리 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편협합니다.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외골수로 가는지 모릅니다. 얼굴 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신분이 다른 사람을 품는 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입니다. 아홉째 사도행전적 교회 특징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담임 목사가 선교사로 가는 교회입니다. 13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제일 먼저 선교사로 갔습니다. 교회 자체가 선교였습니다.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몸소 앞장서서 중앙아시아, 유럽, 죄수의 몸으로 로마까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은 땅끝 어디든지 갔던 사람이 사도바울이며 그것을 기록한 책이 사도행전입니다. 선교는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목회나 전도도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평할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같은 환경에서 불평하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가고 굶주리고 핍박 받고 찬송도 부를 수 없고 성경도 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불평하고 싸우는 주제 중 복음에 관련된 본질적인 것이 별로 없습니다. 땅끝까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한 교회와 복음을 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도행전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모델로 삼고자 하는 우리 시대 희망, 진정한 대안인 모습입니다.
마지막 사도행전 교회는 사도행전 29장을 쓰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의 끝이 참 좋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마지막 장인 28장 30절~31절에서 바울이 이년 동안 성경공부를 했다고 끝났지만 우리는 계속해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지?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지? 어떤 일이 일어났지?’ 그때 성경 공부 한 사람들이 나가서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가르치고 죽고 배운 사람들이 다시 나가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죽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고 가르쳐서 온누리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29장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의 역사는 끝이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끝이 없습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에 한 순간 쓰임 받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없다고 우리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가 내 역할을 하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시고 복을 주시고 부흥하게 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죽은 자를 살리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이 되게 하고 역사를 새롭게 하는 그런 기적과 능력이 계속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교회입니다. 생명을 바쳐 섬겨야 할 주님의 꿈 ‘교회’ 제가 사도행전적 교회의 열 가지 특징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잉태된 교회, 둘째 예수 공동체를 이뤄낸 교회, 셋째 날마다 기적을 베푸는 교회, 넷째 소유를 나누는 교회, 다섯째 거룩한 순결 지향하는 교회, 여섯 째 고난 중에도 복음 전하는 교회, 일곱째 영적 리더십을 세우고 분산시키는 교회, 여덟째 이방인 가슴에 품는 교회, 아홉째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 열번째는 사도행전 29장을 계속해 쓰는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것만 생각합니다. 이 교회가 제 그림이요 목표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제가 온누리교회 목회를 한 것이 금년이 19년째입니다. 목회를 하며 처음이나 끝이나 지금까지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이 사도행전적 교회를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처음에는 미숙해서 그 그림이 정확하지 않고 막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제 생각과 기도와 관심은 여기에 집중합니다. 저는 24시간 교회만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에 미친 사람입니다. 교회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진정한 교회는 이 세상을 구원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도 이런 동일한 그림을 그리고 같은 비전을 가지고 같은 목표를 향하여 우리가 생명을 바쳐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 드립니다. 생명 바칠 일이 아니면 시작하려 하면 안됩니다. 힘들면 뒤돌아서고 깨버리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내 생명을 바쳐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한국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고 영광스러워지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길 축원합니다. 모든 목사님이, 모든 성도들이 사도행전적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