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동산교회 이야기 - 전도목회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이사야 60장 22절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입니다. 작고 힘없는 어린아이, 허무와 좌절 속에서 살던 중년 남자, 그런 불쌍한 인생을 불러 전도자로 쓰신 하나님,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사울을 불러 기독교 최대 전도자로 쓰신 하나님은 여기 계신 여러분, 위성중계를 들으며 집회에 참석한 모든 개척교회의 연약한 평신도와 교역자 모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기적 '예수 만나다'
저는 예수 안 믿는 집에 태어나 예수가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4살 때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낙심해 밖으로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고 노름에 빠져 집안이 망했습니다. 저희 형제는 11명인데 죽 한끼 먹기 힘들 정도로 너무 가난해 제 밑의 동생 하나는 남을 주고 누나는 시집을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1년 동안 9명 형제 중 6명이 굶주림과 병으로 죽었습니다. 두 형이 돈 벌러 집을 떠나자 혼자 남은 저는 부천시 서사동 소사읍으로 새엄마와 살고 계신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다녔고 4학년 때 제 인생을 뒤바꿀 일이 생겼습니다.여름방학 때 예수님을 믿던 제 짝이 여름성경학교에 가자며 저희 집을 찾아왔습니다. 친구 따라 처음 교회에 갔습니다. 그 교회는 소사읍 장로교회였는데 아이들 150여 명을 모아놓고 여름성경학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와 분반공부에서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시고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가면 부활 있고 영생 있다고 말하는데 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내일 또 오라고 했지만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갈 때 받은 복숭아 하나 때문에 마음이 바뀌어 배고픈 시절 얻어먹는 재미에 교회를 나갔습니다.그렇게 10세 때부터 계속 나갔지만 25세까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으면서도 계속 나간 이유는 친구가 좋고 먹을 것을 준다는 것도 좋았지만 교회 선생님이 주신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가정형편은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1년간 돈을 벌었고 고등학교 다니면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군대에 다녀오고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5세 대학 1학년 때 선배가 권해서 CCC에 갔습니다. CCC는 배우면 바로 4영리를 들고 전도하러 나가는 훈련을 합니다. 그때 김준곤 목사님이 ‘예수의 유일성’에 대해 강의하고 4영리를 말하는 데 그것이 마치 제게 하는 말 같았고 그동안 그렇게 믿으려고 애써도 믿어지지 않았던 복음이 믿어졌습니다. 그날 72년 6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 경희대 캠퍼스에서 예수님을 믿은 지 하루밖에 안된 제가 처음 4영리로 복음을 전했습니다.예수 믿고 한달 반 만에 새벽기도 나가 제 죄를 자백하며 술,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 이후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데 담대해졌습니다. 반 미친 사람처럼 버스를 타면 4영리를 전하고 학교에 30분 먼저 가 칠판 가득 성경구절을 적으며 전도했습니다. 이 사영리로 여태까지 최소 3만 명 이상에게 개인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심방 간 집의 성도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사영리를 합니다.그러다 신학교를 갔습니다. 76년 총신대학교에 입학하고 제 가장 큰 기도제목은 ‘절 전도자가 되도록 신학교 오게 한 주님, 제가 십자가를 전하는데 도통하게 해주십시오’ 와 ‘주님 제가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는, 주님이 계획한 목회지를 알려주십시오’였습니다. 그러던 76년 가을 신학교 1학년 2학기에 동아일보에서 반월공업단지 조성 예정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많은 공단 젊은이들에게 야간학교를 세워 그들을 깨우며 청소년 전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 후 새벽기도 할 때마다 가본 적 없는 반월공단을 놓고 그곳이 하나님이 원하시던 곳이면 갈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신학교 4학년이 끝나고 졸업만 앞둔 1월에 반월에 가야겠다는 불 같은 마음이 일어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에 갔습니다. 신도시 이주마을인 그곳은 가옥이 250호 있었고 성인 80여 명이 출석하는 70년된 70평짜리 감리교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 단독주택 지하실 28평을 계약했습니다. 전세금이 350만원인데 우리가 가진 전세금은 110만원 뿐이었습니다. 주님께 기도하자 이사가기 전까지 부족한 부분을 주님이 채워주셨습니다.6월 10일을 첫 예배로 잡고 5월 30일 이사를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 마을에서 첫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열흘 동안, 이사간 집에 깔 스치로폴과 장판을 사러 들어간 철물점 주인, 동산교회 간판을 달아주고 돈을 받으러 온 간판가게 사장, 이렇게 두 사람을 전도했습니다.6월 10일 첫 예배를 드리기 위해 들어가니 간판가게 박 사장님이 앉아있었습니다. 순간 예배당이 꽉 차 보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며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뒤이어 철물점 사장님도 들어왔습니다. 제 아내 이재성 사모와 7달 된 제 딸, 서울에서 개척교회 했다고 와준 한 여 성도와 그의 세 살짜리 아들, 이 곳에 와서 전도한 두 사람 이렇게 7명이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전도한 사람이 모두 100% 출석했고 이것이 동산교회 시작이었습니다.6월 11일 강도사 시험 보고 합격한 후 본격적으로 동네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아침에는 출근길, 낮에는 주부, 밤에 퇴근길에서 4영리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6개월 동안 그 동네에서 한 집을 보통 5번, 많이 간 집은 12번 방문했습니다. 6개월 후 12월 크리스마스 예배에 어른 97명 출석했습니다. 1년 만에 어른 131명 출석해 19평 예배 공간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로도 새 단지가 들어서고 이사 오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자의 소명 갖고 기도로 간구하라
넝마주의 눈에는 모든 쓰레기가 돈이고 전도자 눈에는 모든 불신자가 전도 대상자입니다. 동산교회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입니다.첫째, 목회지, 자기 교회에 대한 소명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심히 많음이라...”(사 18:10)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 동네에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건질 계획이 있어 여기 교회와 직분자로 세워 주신 줄 믿으십시오.둘째 한 영혼에 집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희생시키시면서도 건지고자 하는 귀한 영혼입니다. 이 영혼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잘 보살피십시오. 내 대에는 다섯을 전도했더라도 그 작은 자가 천이 되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입니다. 제 모 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술 마시고 화투치고 도둑질 잘 하던 김인중이라는 아이를 쫓아내지 않고 품어 양육했더니 하나님께서 수천 명에게 전도하는 전도자로 쓰셨습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오더라도 임금처럼 대해 주십시오.셋째 골로새서 4장 2절과 3절 말씀처럼 기도하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께 자기 지역을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자기 지역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저는 25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안산 지역 모든 관공서와 아파트 단지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기도하면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넷째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긴 설교를 하지 마시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성령이 찾아오면 아무리 믿지 않으려던 사람도 마음이 바뀌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이렇게 본질과 원리를 붙잡고 전도하는 일에 미치십시오. 모든 불신자가 다 전도 대상자입니다. 여러분 동네에 우연히 교회 세워진 것 아니고 여러분이 우연히 그 곳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 동네에 건질 대상이 있고 거기에 여러분이 딱 맞아 불러주신 줄 믿으십시오. 이런 소명의식으로 날마다 두드리고 기도하면 나 같은 쓰레기도 써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존귀히 쓰실 줄 믿습니다./ 정리 : 전성희 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