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 1 플러그인 리더십

 

이번 축제를 준비하며 내심 놀란 것은 예약문화가 정착하지 않은 한국에서 이 어려운 때에 3천명이 넘는 사람이 1주일 전에 사전 등록을 끝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며 사람들이 참 리더십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 교회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이 심각한 위기를 탈피해나가기 위한 리더십이 없다는 목마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수많은 리더십이 있지만 진정한 리더는 없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많지만 따라갈 사람은 없고, 설교는 많은데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아 늘 외로워하고 목말라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 부재에 목마른 세상

 

교회는 많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왜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 설교는 홍수처럼 넘쳐 나는데 왜 우리 심령과 이 땅은 점점 강퍅해지는가, 과연 우리가 따라야 할 지도자는 누구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반성하고 재조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리더십을 스스로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리더인가?’우리가 가정, 교회, 직장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리더십의 자화상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바른 영향력과 변화를 주고 있는가 질문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 플러그 인 축제에서 성경적인 리더십, 예수님의 리더십,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리더십을 여러 강의와 여러 토론을 통해 접근하고자 합니다.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첫째, 예수님의 리더십은 섬기는 종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이 지배하는 리더십을 가졌거나 남을 조정하고 명령하는 높은 위치에 있었으면 아무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약한 자, 병든 자, 귀신 들린 자까지 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고 사랑하기 위해 오셨고 발을 씻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핵심에는 자기 포기, 희생이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과 긍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이득을 보려 하거나, 오래 살려 하거나, 권력을 가지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 선생이 학생의 발을, 사장이 직원의 발을, 목사가 교인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내 종이 아니라 내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는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십 ‘섬김, 위탁, 사랑’

 

둘째, 위탁의 리더십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의견을 말씀하거나 자기 주장을 피력하거나 자기 감정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오로지 한 관심사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나는 아버지와 하나다.’ 이것이 예수님의 리더십입니다.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로 하신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셨지만 결국 예수님의 결론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영적 리더십과 권위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리더십의 실체는 사랑과 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최대 계명은 요한복음 15장 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스스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사랑이 목마르고 공허한 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희생과 자기 포기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땀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사랑보다 더 큰 리더십이 없고 용서보다 더 큰 리더십이 없습니다. 예수님 생전보다 돌아가신 후 예수님을 따른 사람의 숫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떠나고 보니 그 영향력과 능력,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준 사랑과 눈물이 2천년간 감동과 감격의 샘물로 솟았기 때문입니다.성경에 나타난 이 예수님의 세 리더십에 기초해 크리스천 리더십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든 영적 리더십은 이것에 기초하지만 저는 이것 외에 다른 하나를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적 리더십입니다.바울은  위대한 인물이지만 사실 당시에는 위대하거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열 두 제자나 사도들은 신분과 영향력, 삶의 방식에서 보면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행전적 공동체가 로마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하게 했을까요? 지난 2천년동안 어떤 리더십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감동을 주고 교회에 영감을 줘서 세상을 변화시켰겠습니까? 그 기초는 예수님의 리더십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적 리더십입니다. 그 실체를 우리는 플러그 인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새롭게 출현했고 우리가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가 사도행전적 교회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교회 리더들이 사도행전적 리더십을 바로 이해하고 깨닫고 따라갈 수 있다면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세계 교회는 다시 한 번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적 리더십

 

플러그 인 리더십, 접속하는 리더십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난 이후 제자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와 오순절에 모인 120명이 다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 사람들의 믿음과 인격, 삶의 수준은 그다지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오순절 사건을 경험 한 후 그들은 180도 변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관심과 해답이 있습니다. 그들이 변할 수 있으면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어둠과 사단, 죄악의 세력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라 할지라도 사도행전의 리더십과 영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에 나타난 플러그인 리더십의 실체는 네 가지 접속입니다. 첫째, 120명이 오순절 성령님에게 접속 당했습니다. 이들은 오순절에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불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다락방에 머물 수 없어 뛰쳐나갔습니다. 성령에 붙잡힌 사람마다 뛰쳐나갑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기득권에 머물고 현실에 안주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 움직이고 떠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교회가 재미있고 좋다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누어서라도 계속 개척하려는 영이 교회 안에 있게 됩니다. 개인 전도 뿐 아니라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와 서바나를 본 것처럼 우리 관심은 여기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은 세계를 보게 하고 우주를 보게 합니다.둘째, 말씀의 접속입니다. 성령을 경험한 후 그들은 사도들에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전에도 물론 말씀을 공부했겠지만 그냥 공부하는 것과 성령으로 공부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떠났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말씀을 읽으면 두 날개를 달고 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능력이 되고 기적이 되고 복이 됩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됩니다. 말씀의 특징은 비전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큰 비전을 줍니다. 셋째, 사도행전의 플러그인은 성령 받은 사람끼리의 접속입니다. 오순절이 이르렀고 성령 임재가 이르렀을 때 날 하루 3천명이 세례 받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3만 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떡을 떼고 교제하며 기도하고, 물건을 통용했으며 그들이 모일 때마다 사랑과 용서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가정, 사회, 국가 제도에서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와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사회,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적 리더십입니다.넷째, 세상과 접속입니다. 사도행전적 리더십에서 성령 받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만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사람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라고 종교가 다른 사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과 접속하고 말씀과 접속하고 믿는 사람끼리 접속해 교회를 만든 사람들은 여기서 끝낸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유대 땅, 중앙아시아로 일대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고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난 것처럼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유대 종교, 이방 종교를 막론하고 만났습니다. 파도처럼 밀물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돌아다니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3장부터 28장까지 일어나는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여행입니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가는 것도 모자라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들어가고 미지의 세계인 스페인으로 복음을 들고 가길 소망하는 그런 접속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접속의 전부입니다.

 

한국 교회 거듭나야

 

저는 오늘 한국 교회에 이 네 접속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제일 먼저 성령님과 접속하십시오. 모든 교회는 성령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다시 태어나는 일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 시대를 변화시키려면 우리가 집을 짓고 하드웨어를 만들고 조직과 교파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의 설교와 목회의 사역, 모든 선교가 성령으로 돌아와야 합니다.둘,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종교개혁처럼 말씀의 재발견, 말씀의 헌신, 살아있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예언자적 심정으로 전하는, 모든 듣는 사람이 여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느끼는 그런 설교가 되길 축원합니다. 교회가 멋있고 크다고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부흥의 원천은 성령님과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적 영성이고 사도행전 리더들이 경험한 것입니다.우리가 셋째로 회복해야 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요 대안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교회가 많은데 세상이 변하지 않고 교인은 많은데 무기력하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디서 잘못 됐을까요? 교회는 경쟁하고 비교하면 안됩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성령 받은 사람끼리 접속하는 곳이어야 합니다.사도행전적 리더십의 또 하나 특징은 공동체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리더십이 탁월해 조직과 사회를 끌고가는 리더십도 있지만 사도행전적 리더십은 한 개인의 탁월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물론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 같은 걸출한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개인의 리더십이 초대교회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스데반을 순교자라 하고 빌립을 전도자라 말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을 열심히 전도했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도했습니다. 협동입니다.저는 온누리교회가 몇 몇 교회와 팀워크를 이룰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기쁩니다. 어제 대전 라준석 목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주에 1천여 명 모이는 큰 교회 목사님이 라 목사님에게 4시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요청해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협동입니다. 교회가 협동해 리더십을 만들고 서로 좋은 점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교회끼리 매트릭스를 만들고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한국교회는 60년대부터 많은 교파 싸움에 상처와 쓴 뿌리가 많아 팀워크를 이루는 것이 감정적으로 어렵지만 주 안에서는 내 교파, 네 교파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팀을 만들어 한 지역을 변화하고 도시를 거룩하게 만드는 성시화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적 개념입니다.

 

세상의 본 되는 교회

 

제가 시카고에서 강의할 때 일반 방송 텔레비전 기자가 절 찾아왔습니다. 그 자매가 “이민 교회가 이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하고 질문 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한국 교회가 한국의 희망과 한국 사회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라고 다시 한국으로 돌려 봤습니다. 오늘날 교회 현실과 교회 리더십이 그런 수준에 이르렀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교회는 크고 성도가 많지만 힘과 영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끼리는 열심이지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면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의 본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도행전적 리더십이 성경의 매트릭스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에는 다양성과 일치성이 있습니다. 교파와 교단의 벽을 넘어서고, 동양과 서양, 성직자와 평신도, 인종, 성별, 문화, 지역, 계층, 세대, 이념간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매트릭스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새롭게 변신해 새로운 비전을 보는 복이 있길 축원합니다.확실한 것은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념이나 정치적 갈등이 팽배한 현실을 보며 우리는 과연 교회가 어떤 모델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 믿지 않는 많은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며 "저것이 희망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답이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그 리더십이 플러그 인 리더십입니다. 하나님과 접속하고 성령과 말씀에 접속하고 믿는 사람들과 접속하고 세상 속으로 접속해 들어가 영향력을 미쳐 변화를 유도하는 성령의 매트릭스가 여러분과 내 안에 있길 축원합니다. 한국 교회에 충만하길 축원합니다.우리가 얼마나 다른 지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얼마나 같은가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축복하고 격려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협력해 네트워킹을 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마음만 없으면 이 일은 간단합니다. 내가 주도권을 갖겠다는 마음만 없으면 간단합니다. 저는 한국교회에 이 성령의 매트릭스가 기름 부어져 한국 교회 전체가 부흥하고 변하는 놀라운 리더십이 싹트길 축원합니다.

 

/ 정리: 전성희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