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 - 소프트 파워
아테네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 때 해설자가 잘하는 선수에게 ‘몸이 유연하고 풀려있다’고 말하고 기량 발회 못하면 ‘몸이 굳고 어깨에 힘이 들어있다’고 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연함이 강함을 제압하는 것이 운동경기에 나타나는 보편적 법칙인 것 같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해 4년 간 온 힘을 다해 기량을 닦은 선수들이지만 그날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메달을 따고 못따고 결과가 달라집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고 안정감과 자신감이 있어야 자기가 닦은 역량을 전부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과 접속된 마음의 부드러움은 결국 육체적 부드러움으로 변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하고 경직되고 공격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고단하게 살아갑니다. 조직이나 사회, 국가에서 일어나는 갈등, 대립, 분열, 다툼의 원인도 유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연했던 비관적 분위기
제가 94년 10월 숙명여대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학교는 갈등, 분열, 불신이 너무 강했습니다. 자신감이 없고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조적이고 비관적으로 변한 원인을 살펴보니 보니 대학이 발전하기 위한 조건이 미비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숙대는 1906년 고종황실 순헌황귀비가 구국의 뜻을 품고 ‘여성도 지도자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립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남북이 분단되면서 조선왕조가 준 은율, 재령평야와 염전들이 북한에 있기 때문에 학교 재정지원이 중단된 상태였고 재단도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고종황제가 준 학교부지마저 해방 후 국방부, 삼림청, 재무부, 문화재 관리부 등 7군데로 나눠 국유지로 환속되었습니다. 학교부지가 국유지가 되자 학교 건물은 모두 불법이 되어 건물을 보수하기도 힘들고 새로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숙대 옆이 효창공원이라 공원부지로 묶이고 문화재 관리대상인 효창문화원 때문에 숙대도 같이 규제되는 등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역대 총장님들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인간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였고,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너무 긴 시간을 끌어 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제가 총장직을 맡았습니다. 총장 취임식 날 많은 축하객에게 축하를 받고 총장실에 와 보니 등기 우편이 와 있는데 7억 8천만 원짜리 세금 고지서였습니다. 학교부지가 국유지니 정부에서는 임대료를 달라고 하고 학교는 고종황제가 숙대 땅이라고 준 칙서가 있는데 자기 땅에 임대료를 낼 수 없다며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다시 연체료가 나오고 국유지 위에 교실을 지으니 불법이고, 무허가건물 벌금이 나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돈이 해방 후부터 50년간 쌓여 온 것입니다.
고난 중에 비전을 품다
저는 이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단 국유청 직원부터 7군데 땅 소유자인 지방관청과 국무회의, 구위원회, 시위원회를 찾아갔습니다. 구청 직원들이 절 귀찮은 사람 취급하며 박대해도 ‘지성이면 감천이니 최선을 다하자’ 생각하고 찾아다녔습니다. 아침 7시에 나와 밤 10시에 집에 들어가서는 토지문제와 관련한 법률공부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날 사람 만드시려고 내가 하기 싫어하던 일을 시키시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게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니다. 그때부터 내 자아가 많이 빠져나갔고 수십 년간 기독교인으로 있으면서도 바뀌지 않던 나를 바꾸시는 것을 느꼈습니다.9개월간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뛰어다니다 보니 탈진 현상 나타나 중환자실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학교 직원들은 되지도 않을 일에 뛰어다닌다며 체념하거나 안타까워했지만 저를돕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힘들었던 것은 일 자체보다 주위의 비난과 냉소적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 저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야 이런 분위기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제가 좋아하는 말씀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숙대는 기독교 학교가 아니지만 교문 네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히브리서 11장 1~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입니다.저는 ‘백 년 동안 사람이 운영한 학교가 이 지경으로 힘들어졌다면 어차피 내 힘으로 불가능하니 하나님께 의지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학교,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력 얻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명문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저는 “창학 100주년이 되는 2006년까지 섬기는 리더십을 갖춘 세계적 명문여대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선포하고 하버대나 프린스턴, 예일에 버금가는 명문 대학인 미국 ‘세븐 시스터스 칼리지’, 버나드, 브린마, 웰슬리 등 일곱 학교를 벤치마킹했습니다. 그 수준으로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는 건물을 11동 정도 더 지어야 하고 프로그램이나 여러 환경을 다 바꿔야 했습니다. 그 비용을 계산해보니 1천억 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숙대가 모금한 최고 실적은 도서관을 지을 때 모금된 1억 원이었습니다.저는 1천억 원을 모금하자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믿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비밀을 몰랐으니, 그때 제 별명이 ‘싸이코’였습니다. 저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야겠다 생각하고 이벤트를 하나 구상했습니다. 그것이 제 2창학 선언입니다. 제 1창학은 100년으로 끝내고 100년을 바라보며 다시 창학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지어 인간의 방식으로 운영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세우셔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저는 1천억 원 기금을 조성할 방법으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생각했습니다. 숙대 졸업생들이 4만 명인데 이들이 등록금을 한 번만 더 내주면 6백억이 모입니다. ‘창학 100주년이 10년 남았는데 숙대를 졸업한 학생이 정말 숙대를 사랑하면 그 동안 등록금 한 번 더 못 내주겠나?’ 생각했고 나머지는 2백억은 재정을 아껴 마련하고, 2백억은 기업에서 모금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월 22일에 숙대 졸업생을 모아 제 2창학을 선언하자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명문여대 만들 1천억 원 기금마련
사람들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일이었습니다. 홍보를 해야 사람이 모이니까 팜플렛을 찍었습니다. 제 2 창학식 이벤트에 관련해든 비용이 3억이었습니다. 그해 숙대가 지출해야 할 예산은 160억인데 수입은 140억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서 3억을 썼으니 일이 갈수록 가관이었습니다. 저는 직원회의, 교수회의, 계모임 등 정보만 얻으면 찾아가 설득했지만 사람들은 어디 두고 보자는 분위기 이었습니다.95년 당시는 교육개혁안이 나와 사람들이 교육개혁에 관심이 많던 때였습니다. 저는 홍보를 위해 방송국을 찾아 좋은 교육개혁에 대한 복안을 이야기 할 테니 10분만 출연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담당자의 승낙을 받고 출연해 질의응답을 하던 중 “총장을 해보니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개혁하려면 정말 재정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동문, 국가, 모두가 힘을 합해 도와야 한다. 그래서 숙대도 2월 22일 호텔에 모여 제2창학 발기대회를 한다.”고 홍보했습니다.방송의 힘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방송을 본 동문과 방송을 보지 못했어도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동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당일 티켓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또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에 교수 집단이 제일 먼저 참여했고 숙명여대 직원들도 100퍼센트 참여했습니다.행사 당일 오후 3시,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 경찰서에서 나와 교통정리를 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호텔 측 추산으로 그날 참석자는 2500명에서 2600명이었고 약정한 긱금이 62억이었습니다.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란 것을 얼마나 실감했는지 모릅니다. 천신만고 끝에 공원용지 문제도 풀렸습니다.
학교를 둘러싼 문제가 다 풀리고 돈이 모이고 동문들이 분위기를 띄우니 학교 분위기가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요즘 2020년까지 대한민국 지도자 10퍼센트를 숙대에서 배출한 섬기는 지도자로 채우겠다는 새 비전을 품고 이 비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교문에 새긴 또 다른 말씀은 여호수아 1장 9절 “마음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입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1천 억 모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자신만만했지만 눈만 뜨면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대로 눈을 뜨지 않고 눈 감고 살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때 주신 말씀이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이 말씀을 되뇌면 세상에 겁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지난 10년 간 건물 16동을 지었고 부지는 두 배, 건평은 세 배 늘어났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과 열매들입니다. 제가 진정 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섬기는 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늘 기쁨과 감사, 사랑, 말씀, 기도가 있는 사람이 섬기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숙대 리더십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숙명 리더십’이라는 고유명사를 씁니다. 이 리더십은 겸손하고 헌신하고, 남을 존중하고 섬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십입니다.
섬기는 지도자 배출
학교의 모든 커리큘럼을 그런 리더십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리더십 센터를 만들고 의사소통 능력개발, 멘토 시스템 등 학교 모든 시스템과 사람에 관한 프로그램과 문화를 바꿔갔습니다. 98년부터 섬김문화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했고 칭찬 릴레이를 했습니다. 칭찬과 격려, 긍정적인 말을 권장하고 미소 짓기 운동을 했습니다. 기도모임도 많아졌습니다. 동문, 교수, 재학생 등이 기도모임을 만들어 하나님을 사랑하며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를 교문에 새기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학교 교문에 새긴 넷째 말씀은 이사야 60장 1절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입니다. 하나님의 학교라고 서원 기도한 학교가 문 닫기 직전까지 갔다고 생각했을 때 탈진한 상태에서 울면서 몇 시간 기도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자인데 어째서 제 때에 숙대를 문 닫게 하십니까? 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려 하십니까?” 그때 들려오는 것이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졌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문제 생기면 내 힘으로 풀려고 노력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 뒤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구하자 문제가 많이 풀렸습니다.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학생들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문에 이사야 말씀을 새기고 기도하자 많은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번 학생대표가 IVF에서 나왔는데 학생회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을 봉사 중심으로 건전하지만 재미있게 기획하고, 축제 때 바자에서 걷은 돈을 유니세프에 보냈습니다. 학생대표가 참 고마워 ‘어떻게 그렇게 기특한 일을 했느냐’고 칭찬을 했는데 그 학생의 대답이 저를 또 한번 감동시켰습니다. “4년간 보도 듣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는데요.”지도자는 남을 섬기려는 의지와 열망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모두 지도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숙대에 100주년 기념관을 리더십 센터로 만들고 있습니다. 기념관이 완성되면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프로그램으로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사랑할 줄 아는 지도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지도자는 세상과 사람을 바꾸는 모범이 되는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를 정직하고 신뢰를 주는 나라, 세계에서 찾아오고 싶어 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이 리더십 센터를 통해 오늘 축제에서 훈련받는 것 같은 내용이 대학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고 함께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 정리: 전성희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