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Jerusalem
최바울 선교사 샬롬.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정말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엄청난 역사를 이뤄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사도행전 1장 10~11절을 보십시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시 오시리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주제를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구약은 ‘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은 ‘다시 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처럼 구약에서 오시리라고 하신 예수님은 오셨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다시 오십니까. 말씀의 예언대로 오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즉각 개입하시면서 여자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언대로 입성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예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언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구속사적 예언과 세속사적 예언입니다. 세상의 흥망성쇠에 관한 세속사적 예언은 히브리 민족의 역사와 맞물려 진행해 왔습니다. 구속사적 예언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성취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당시 살기 좋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예언은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단어는 ‘모든 민족’입니다. 부활하신 후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오순절 불과 바람으로 임하셔서 제일 먼저 하신 사역은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성경은 왜 ‘모든 민족’을 강조합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처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6,000여 종족과 복음의 서진 예수님께서 아직 오지 않으신 까닭은 복음을 받지 않은 민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89년 당시 세계에는 모두 24,000 종족이 있었는데 이 중 13,000 종족이 복음을 받았음에 반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이 11,000 종족이나 있었습니다. 2000년을 10여 년 앞두고 당시 교회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왔습니다. 복음화된 나라를 향해, 성직자 중심으로 펼쳐왔던 선교는 미전도 변방으로, 평신도를 중심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과 약 15년 만에 작년을 기준으로 미전도종족이 6,000 종족으로 줄었습니다. 그 중 10/40창(아시아 북위 10~40도 지역)으로 설명되는 아시아지역이 가장 어려운 상황입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유럽, 아프리카, 북남미를 거쳐 아시아에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 4000여 년 동안 세계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 영적전쟁을 해 왔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형제간 갈등이 팽창한 역사였습니다. 우리들은 에덴의 사건처럼 아브라함 자녀들의 갈등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는 중동에서 10년 정도 선교하면서 이슬람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타락한 서구 문명에 대항한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닙니다. 어떻게 보면 9.11 테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는 물질주의적 팽창주의의 상징이고, 국방성은 군사적 패권주의의 상징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은 문명사적으로 보면 이슬람 종교문명과 서구 물질문명과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이삭과 이스마엘 갈등의 팽창과정에서 비롯된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보면 때를 알 수 있습니다.9.11 사태가 난 뒤 세계를 보니 한반도를 중심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서구 대 비서구의 지구적 갈등 양상이었고, 한쪽은 분노로 또 다른 한쪽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낀 한반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피스메이커(Peace Maker)의 역할입니다. 백인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서쪽, 이슬람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피를 많이 흘려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다윗처럼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것이 한 원인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이제 한국교회가 더욱 섬겨야 할 때입니다. 1억5천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있는 중국교회도 하나님이 쓰실 것입니다. 중국교회가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의 비전으로 서진한다면 엄청난 속도로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님의 재림도 가까워질 것입니다. 중국교회의 사명은 이사야 49장의 ‘시온의 대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바벨론에 의해 유대인들은 북아프리카, 북반구 등으로 흩어졌고, 이 중 극히 일부가 돌아와 성전을 복원했습니다. 이후 1920년대에 유럽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복귀를 외치다 48년도에 돌아왔고, 60년대엔 북아프리카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2차 귀환이, 그리고 소비에트가 무너진 90년대에 가장 많은 유대인들의 3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아에서 언급하고 있는 ‘북방’이 바로 제3차 귀환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세계인들의 백투예루살렘입니다. 지상의 역사는 예루살렘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직경 3000km 지역이 가장 강력한 어둠의 영적 진입니다. 화해·회복·평화의 약속 누가복음 19장 4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2,000년 넘게 분쟁과 폭력에 휘말릴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눈물입니다. 평화가 쉬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중심엔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슬람이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이기에 분쟁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하지만 분명 하나님은 화해와 회복, 평화를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이사야 19장 23~25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세계 중에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나아갈 때 엄청난 축복이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날 것입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