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예루살렘의 평화를 구하라

구원을 다양한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구원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복이다.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원의 사건은 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기나긴 세월 속에 구원을 이뤄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고, 소설적 기법으로 말한다면 구원 역사의 복선(plot)을 볼 수 있다. 그 복선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특별한 장소를 배경으로 나타난다. 그곳은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 중에서도 예루살렘이다. 아주 특별한 곳 예루살렘  하나님께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이다. 당신의 아들이 죽고 부활하신 곳이다. 하나님은 그 땅을 한 번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당신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바로 그곳에 있었는데 어찌 그곳을 단 한 번이라도 잊으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될 새 예루살렘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신다. (계 21:2).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가장 마음을 크게 두신 곳이며 우리의 구원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도시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 122:6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어 원문의 말씀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의 평화(샬롬)를 구하라! 너(예루살렘)를 사랑하는 자들이 안녕(번성)하리라."그렇다! 예루살렘의 평화를 구하는 일은 우리의 의무 사항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루살렘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루살렘의 어떤 평화를 구해야 하는가? 지금 예루살렘은 종교와 민족들이 서로 얽혀 반목하는 장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특히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 상태에 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미 주고 받아버린 증오의 숨결만 느껴지는 이곳에서 이룰 수 있는 평화는 무엇인가? 과연 화해와 회복을 통한 평화는 가능한가?  화해의 열쇠 ‘십자가’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 일방적인 한쪽의 물리적 승리로 인한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고 파괴의 상처 위에 올려진 피의 탑일 뿐이다. 이들은 스스로 평화를 가져올 능력이 없다. 평화의 깃발 보다는 적의의 총칼을 드는 것이 훨씬 익숙해 있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화해의 구호란 비웃음을 살 뿐이다. 평화란 단어를 떠올리면 오히려 절망이란 말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말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에 관한 한 절망의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미리 봐 두시고(‘여호와이레’를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뜻) 아브라함에게 궁극적으로 보여주시고자 했던 그 땅, 바로 그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사건이 그 해결의 열쇠이다. 나는 단언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인들과 그들의 형제인 팔레스틴 백성들이 예수의 무릎 앞에 꿇고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지 않는 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다. 정치적인 모든 노력은 한시적인 평온에 불과하다. 샬롬은 외적인 평온이 아니라 완전함에서 오는 평화이다. 하나님의 통치에서 비롯된 완전함에서 오는 평화야 말로 참된 샬롬이다.  영적 전쟁은 시작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복음화를 구해야 한다. 우리 기도의 구체성은 결국 복음화로 귀결된다. 복음이 시작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지금은 복음이 공동화된 상태이다. 이제 복음은 세계로 뻗어나가 다시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정복의 깃발을 꽂게 될 것이다. 그때 세계의 평화는 완성된다. 주님께서 통치자로 다시 오시는 것이다.이제 영적인 전략 지도를 펴보자. 사탄의 최후의 날은 언제인가? 최후 수성인 예루살렘이 복음으로 함락될 때이다. 그렇기에 사탄은 전략적으로 이스라엘의 방어 체제를 가장 굳건히 하고 있다. 사탄이 우리의 의지를 꺾으려고 얼마나 많은 시도와 작전을 구사하겠는가? 우리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겠는가?  우리는 이-팔 평화회담에 도움을 주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행진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이 닫아 놓은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기 위해 행진한다. 사랑만큼 사탄에게 치명적인 무기는 없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품고 그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곳에서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진주군이 아니다. 최후 입성을 위해 적진의 주요 공격 목표를 타격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고도 지속적인 전략과 기도와 복음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이양묵 목사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