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선택강의 - 당신이 감동받을 때까지
Future Upgrade | 선택강의 유 태 식 (MK택시 부회장) " 친절은 회사와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MK 택시는 더 친절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 VIP 뿐만 아니라 천황까지도 타는 택시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어릴 때 7형제를 둔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초학업만을 마치고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생존을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감사하게도 택시사업을 신청하자 배경도 보지 않고 택시 10대를 나에게 주더군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밥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택시사업을 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택시기사들은 파일럿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심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택시기사들은 가족들조차 주위에 그 직업을 숨길 정도로 꺼려하는 사회적 기피직종의 하나였습니다. 한번은 거금을 들여 모리 하나에라는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MK 택시 기사들의 유니폼 디자인을 부탁했는데, 그는 택시 기사가 천대 받는 지위라는 것을 이유로 디자인을 하지 못하겠다고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라고 파일럿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친절하게 모시는 똑같은 서비스인데 달라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MK택시 기사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경영방침을 정했습니다. 부러움의 대상, MK택시 기사 당시 택시 기사들은 교육과 월급의 차이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MK택시는 기사들의 친절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그에 따르는 회사의 이윤을 최대한 기사들에게 나누어줬습니다. 특히 당시 MK택시는 학사 드라이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모두가 천대하는 택시기사임에도 불구하고 MK택시는 학사 출신들을 등용해 철저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0초반의 이들 청년들이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유니폼을 입고 승객들에게 깍듯이 절하는 등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반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매년 대졸자 8,000여 명이 MK택시에 입사를 지원해 약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학과시험을 치르는 데도 말입니다. 일본에는 약 1만개의 택시업체가 있지만 대졸자를 교육시켜 택시 드라이버로 고용하는 업체는 당시 한 업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몰려든 우수 인력에게는 친절교육이 강조되었습니다. 철저히 교육시켰습니다. 인사를 잘하는 등 무엇보다 친절이 최고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떤 MK택시 기사든지 승객이 타면 ▷MK택시입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객의 말에 복창하며) 어디로 가겠습니다. ▷오늘은 아무개가 승객을 책임지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잃어버린 물건은 없습니까 등 4가지 원칙을 철저히 실천해 내도록 교육시켰습니다. 이렇게 유례없는 친절교육을 시켰더니 기사들 사이에 난리가 일어났습니다. 경영자의 머리가 돌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기사들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회사는 지나친 숫자의 사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지만 친절교육을 등한시 하지 않았습니다. 더 강화시켰습니다. 결국 이긴다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MK택시는 시민들의 신뢰를 쌓아가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자꾸 MK택시를 탔습니다. 그러면서 회사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은 친절에 대한 대가로 택시기사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파일럿에 맞먹을 정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주택정책도 실시했습니다. 하루는 택시기사들이 사고를 많이 내는 이유를 고민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는 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잦은 사고의 주요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기사들에게 독신용 주택 14개실, 가족용 주택 14개실을 지어 살도록 했습니다. 미쯔이 아파트 전문회사의 도움으로 당시 25가구의 아파트를 지었고, 현재는 오바코 맨션을 분양받아 50채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MK회사가 정가의 45%를 부담하고 사원들에게 엄청나게 낮은 저리로 주는 조건입니다. 친절로 감동 줘야 일등국가 시민들은 줄 서있는 일반택시를 타지 않고 신호등에 걸려있는 MK택시를 탔습니다. 이렇듯 MK택시가 승승장구하자 시기심 어린 움직임들도 나타났습니다. 왜 쓸데없는 운동을 벌여 사람을 힘들게 하냐는 것입니다. 경쟁사들은 MK택시를 없애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제일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이들 다른 회사 사장들은 돈을 모아 정치인을 매수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확성기를 사무실 앞에 틀어놓고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라고 빈정대기까지 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내도 물어주지 않는 회사라고 허위사실까지 유포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 친절하게 섬겼다고 자부하는데도 그런 시련이 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MK택시는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라면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더 친절하게 나갈 것을 결의했습니다. MK택시를 경영하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친절’입니다. 친절은 돈입니다. 친절은 회사와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면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친절이 뼈와 살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바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여기서 MK택시가 벌인 친절운동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체장애인 우선 승차제입니다. 어느 날 장애인에게서 편지 한통을 받고 눈이 번쩍 뜨여 MK택시는 앞으로 신체장애인을 우선적으로 승차시키고 요금은 10% 인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정부에 인가를 신청했습니다. 노조는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싫다고 했습니다. 협회에 가서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한 사람도 동조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기사들도 아침에 붙여준 홍보스티커를 떼고 영업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택시에 그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니 장애인 우선주차를 하는 MK택시를 후원하는 회사들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당신들이 사회에서 위대한 일을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고 말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승객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승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우선 승차제는 결국 전국의 택시회사로 번져갔습니다. 기사, “목숨을 걸고 MK 지킬 것” 당초 저는 학비와 생활을 책임져주는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서울 아가씨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발에 흉터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이 좌절되고 결혼도 서울 아가씨와 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MK택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 커터 전 미대통령, 리관유 전 싱가폴 수상 등 유명한 국가 VIP들은 물론 천황까지도 MK택시를 탔습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택시회사가 말입니다. 식목일 행사 때 천황을 태운 MK택시의 한 일본 기사는 “대우 못 받던 택시기사가 이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목숨을 걸고 MK라는 브랜드를 지키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MK택시와 저를 존경합니다. 이로써 저는 애국자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친절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면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어릴 때 7형제를 둔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초학업만을 마치고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생존을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감사하게도 택시사업을 신청하자 배경도 보지 않고 택시 10대를 나에게 주더군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밥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택시사업을 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택시기사들은 파일럿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심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택시기사들은 가족들조차 주위에 그 직업을 숨길 정도로 꺼려하는 사회적 기피직종의 하나였습니다. 한번은 거금을 들여 모리 하나에라는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MK 택시 기사들의 유니폼 디자인을 부탁했는데, 그는 택시 기사가 천대 받는 지위라는 것을 이유로 디자인을 하지 못하겠다고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라고 파일럿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친절하게 모시는 똑같은 서비스인데 달라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MK택시 기사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경영방침을 정했습니다. 부러움의 대상, MK택시 기사 당시 택시 기사들은 교육과 월급의 차이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MK택시는 기사들의 친절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그에 따르는 회사의 이윤을 최대한 기사들에게 나누어줬습니다. 특히 당시 MK택시는 학사 드라이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모두가 천대하는 택시기사임에도 불구하고 MK택시는 학사 출신들을 등용해 철저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0초반의 이들 청년들이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유니폼을 입고 승객들에게 깍듯이 절하는 등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반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매년 대졸자 8,000여 명이 MK택시에 입사를 지원해 약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학과시험을 치르는 데도 말입니다. 일본에는 약 1만개의 택시업체가 있지만 대졸자를 교육시켜 택시 드라이버로 고용하는 업체는 당시 한 업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몰려든 우수 인력에게는 친절교육이 강조되었습니다. 철저히 교육시켰습니다. 인사를 잘하는 등 무엇보다 친절이 최고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떤 MK택시 기사든지 승객이 타면 ▷MK택시입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객의 말에 복창하며) 어디로 가겠습니다. ▷오늘은 아무개가 승객을 책임지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잃어버린 물건은 없습니까 등 4가지 원칙을 철저히 실천해 내도록 교육시켰습니다. 이렇게 유례없는 친절교육을 시켰더니 기사들 사이에 난리가 일어났습니다. 경영자의 머리가 돌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기사들이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회사는 지나친 숫자의 사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지만 친절교육을 등한시 하지 않았습니다. 더 강화시켰습니다. 결국 이긴다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MK택시는 시민들의 신뢰를 쌓아가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자꾸 MK택시를 탔습니다. 그러면서 회사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은 친절에 대한 대가로 택시기사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파일럿에 맞먹을 정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주택정책도 실시했습니다. 하루는 택시기사들이 사고를 많이 내는 이유를 고민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는 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잦은 사고의 주요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기사들에게 독신용 주택 14개실, 가족용 주택 14개실을 지어 살도록 했습니다. 미쯔이 아파트 전문회사의 도움으로 당시 25가구의 아파트를 지었고, 현재는 오바코 맨션을 분양받아 50채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MK회사가 정가의 45%를 부담하고 사원들에게 엄청나게 낮은 저리로 주는 조건입니다. 친절로 감동 줘야 일등국가 시민들은 줄 서있는 일반택시를 타지 않고 신호등에 걸려있는 MK택시를 탔습니다. 이렇듯 MK택시가 승승장구하자 시기심 어린 움직임들도 나타났습니다. 왜 쓸데없는 운동을 벌여 사람을 힘들게 하냐는 것입니다. 경쟁사들은 MK택시를 없애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제일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이들 다른 회사 사장들은 돈을 모아 정치인을 매수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확성기를 사무실 앞에 틀어놓고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라고 빈정대기까지 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내도 물어주지 않는 회사라고 허위사실까지 유포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로서 친절하게 섬겼다고 자부하는데도 그런 시련이 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MK택시는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라면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더 친절하게 나갈 것을 결의했습니다. MK택시를 경영하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친절’입니다. 친절은 돈입니다. 친절은 회사와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면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친절이 뼈와 살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바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여기서 MK택시가 벌인 친절운동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체장애인 우선 승차제입니다. 어느 날 장애인에게서 편지 한통을 받고 눈이 번쩍 뜨여 MK택시는 앞으로 신체장애인을 우선적으로 승차시키고 요금은 10% 인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정부에 인가를 신청했습니다. 노조는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싫다고 했습니다. 협회에 가서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한 사람도 동조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기사들도 아침에 붙여준 홍보스티커를 떼고 영업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택시에 그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니 장애인 우선주차를 하는 MK택시를 후원하는 회사들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당신들이 사회에서 위대한 일을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고 말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승객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당초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승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우선 승차제는 결국 전국의 택시회사로 번져갔습니다. 기사, “목숨을 걸고 MK 지킬 것” 당초 저는 학비와 생활을 책임져주는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서울 아가씨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발에 흉터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이 좌절되고 결혼도 서울 아가씨와 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MK택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 커터 전 미대통령, 리관유 전 싱가폴 수상 등 유명한 국가 VIP들은 물론 천황까지도 MK택시를 탔습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택시회사가 말입니다. 식목일 행사 때 천황을 태운 MK택시의 한 일본 기사는 “대우 못 받던 택시기사가 이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목숨을 걸고 MK라는 브랜드를 지키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MK택시와 저를 존경합니다. 이로써 저는 애국자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친절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면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