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마 7장 7~12, 반태효 목사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오세요.  “와~ 수지 맞았구나”라고 생각되세요 아니면 “와~ 부담 스럽다”라고 생각되십니까?”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복음이기도 하지만 부담이기도 하다. 오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12절에 보면 황금률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자는, 남에게 대접하라는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니라. 이것이 황금률이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말할 때, 율법과 선지자, 하나 더 붙여 시편이다. 즉, 율법, 선지자, 시편에 대해 구약성경이다. 율법과 선지자, 모세오경과 모든 선지서를 포함해서 구약성경을 말하고 있다. 율법과 선지자, 구약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황금률이다. 대접받고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기도의 본문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 본문과 따로 분리해서 할 수 있지만, 12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기도와 황금률은 명백하게 결론으로 맺고 있다. 기도와 황금률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하시고,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는 것,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니라는 황금률을 연결한다.

 

기도는 기도대로, 황금률은 황금률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기도가 부담이라서 그런다. 마치 끝나지 않은 숙제라는 느낌이다.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아무리 끝나지 않는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이 말씀은 마치 기도가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 처럼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못 받을 때가 많다. 구한다고 구해지지 않고, 찾는다고 찾아지지 않고, 두드린다고 두드려지지 열리지 않는 것을 경험한다. 마치 내 책임 같다.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 하는게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저에게도 있었다.

 

기도가 우리에게 달려있고 우리 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기도가 부담이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상대하시는 분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해야한다. 일대일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면 하나님과 상대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다. 우리가 상대하기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불편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대면하는 우리의 막막한 느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차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가 작아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도 황금률로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여유가 없고 우리가 항상(사람을 만나면) 피해의식이 있다. 우리가 계산을 안 할 수 없다. Give and Take, 주는 것 만큼 돌려준다. 주는 것만큼 돌려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보통은 받고는 안준다. 너가 하는 것 봐서 내가 할게. 대부분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Give and Take를 배운다. 계산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다 자존심이 있어서 내가 먼저 대접하고자 하는 맘이 없다. 네가 하는 것 봐서. 내가 먼저 고개 숙일 이유 없다. 내가 먼저 대접하지. 하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겐 별로 없다.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 중보기도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기도하는 것도 힘든데 남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자체가 해결해야 할 기도의 숙제가 너무 많다. 기도의 짐도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간다. 기도의 짐도 많기 때문에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어렵다. 40일 동안 특별새벽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로는 특별한 것은 기대감도 있다.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될 이 기도가 특별해지는 것은 문제라고 저는 생각한다. 기도는 특별해지면 안 된다. 기도는 일상화가 되고, 삶이 되어야 한다. 기도가 특별해지는 것도 부담이라서 숙제를 한꺼번에 해놓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40일 동안 문제에 매달리고, 기도제목에 매달리기 참 쉽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동행해야하는 시간이기 보다는 해결해야 될 기도의 숙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부담감으로 나아갈 때가 많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이 우리 부담이 되어 기도할 때 2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는 교만해진다. 응답을 난 받은 사람, 구하는 대로 얻는 사람이다 라는 교만에 빠지기 쉽다. 둘째는 낙심한다. 40일을 부르짖었는데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나를 거절할 것과 같을 때가 많다. 특별히 이 본문은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본문이다. “구하십시오!찾으십시오! 두드리십시오!” 하며 “구하는 자가 찾을 것이고, 찾는 자가 얻을 것이고, 두르리는 자에게 열릴 것입니다” 강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어있다. “목사님, 기도하는데도 안 되는데..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본문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말씀이다.

 

신학교 다닐 때 교만했던 적이 있었다. 조금 은혜 받고 얼마나 교만했는지 모른다. 기도하는 친구들끼리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서 기도제목을 나누는데 요즘 새벽기도를 못하고, 기도의 자리를 놓친다고 하는 사람에게 “뭐 이런게 기도제목이냐 그냥 하면 되지!”라고 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조금 은혜 받고, 어마어마하게 교만했었던 적이 있는데, 지나서 보니 그게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게 안 되더라.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일들이 안되더라.

 

저도 24년 온누리 교회에 있으면서 새벽기도는 안 빠지려고 노력했지만 1년을 기도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첫 애가 태어났을 때다. 첫 애가 자립심이 강해서 아주 힘들었었다. 애가 자주 깨고 밤에 경기하듯 자주 깨서 잠을 못자고, 아이를 돌보다 보니까 새벽기도를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신학교 때 친구에게 뭐라 했던 것에 대해 얼마나 회개 했는지 모른다. “아! 기도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 힘으로 달린 것처럼 내가 하는 것처럼 했던 것이 얼마나 교만했나”라는 것을 그 때 회개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은 부담이 아니다. 말씀처럼 날마다 우리의 구원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기도의 짐을 지시고,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그 짐을 내게 맡기라는 말씀이다. 기도는 성령님의 사역이다. 롬 8:26절,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기도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구하라, 찾ㅇ라, 두드리라는 말씀은 복음이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다.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다는 자체가 복음이다.

 

대통령 만나기 쉽지 않다. 여당 대표도 비서실장에게 조차도 그냥 못 나간다. 항상 찾아가고, 항상 찾을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을 돌보신다. 주무시고, 졸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 세상에 나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주목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복음이다. 기도와 황금률을 연결한 이유는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알고 계신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신다. 알고 계시면 알아서 해주시지. 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르시는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힘들다. 다 아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 아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문제 해결보다도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문제 해결만이 전부였다면 다 아시는 주님께서 미리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다. 부모라도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아이들이 말하기 전에 미리 해결해준다. 문제 해결만이 목적이라면 부모가 다 알아서 해준다. 하지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하신 것은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니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때 구하고 더 깊이, 찾고 두드릴 때 더 깊이 나아가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붙들고 두드려야 할 일이 생긴다. 계속해서 두드리고 깊이 있게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시는 목적은 문제 해결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는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우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문제 해결에 매달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셔서 우리를 붙드신 하나님을 붙드시게 하신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문제 때문에 밤새 고민했다. 그가 20년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라반이라는 그의 장인이자 그의 외삼촌을 멋지게 역전승으로 승리한다. 그런데 또 한번 넘어야 할 것은 에서였다. 그런 에서는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환영인파일 수는 없다. 나를 잡으러 오는구나. 20년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유도에서 때문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다. 식구들을 강에 다 건너놓고, 자기 홀로 남았을 때 갑자기 천사가 야곱에게 달려든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먼저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 고민을 한 것이다. 자기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다. 갑자기 천사가 들이닥쳐서 자기를 붙들기 시작한다. 강하게 붙드는 천사와 씨름한다. 결론은 씨름이 끝날 때 천사가 뿌리치고 깨닫는다. 야곱이 깨달았던 것은 “문제였구나. 내가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달려야하는 분은 이 분이시구나” 비로소 문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기 시작한다. 비로소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하는 자리는 문제를 붙들다가 하나님을 붙드는 순간 그는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로 변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었다. 오랫동안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문제와 씨름해서이다. 기도제목과 씨름해서다. 기도제목은 문제는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한 통로요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 나갔으면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매달리기 보다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일생을 기도해도 안 변할 게 있다. 하나님께 매달리고 우리의 초점을 하나님께 매달리고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시선이라는 찬양에서 보면 우리의 눈을 들어 그 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로 변화될 줄 믿는다.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돌릴 때, 변화될 줄로 믿는다.

 

(9-11절) 하나님의 놀라운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다.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아비는 없다.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아비는 없다. 적어도 아비라면 자각을 하고 있다면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왜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는가,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한다.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으십니까”하나님 아버지, 하면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가 얼만큼 가까워 좁혀집니까,

 

제가 처음 은혜를 받고 기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등을 외칠 때 “아버지”라고 하면 목에 걸린다. 믿음으로 온전하고, 친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 할 때는 자연스레 나오지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남에 아버지가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은 제가 말하면서 남이 말하는 것 같았다. 정말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달라진 것은, 기도가 바뀌었다. 정말 하나님이 아버지시다. 저는 저의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아버님은 가깝고 친밀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 아버님은 진짜 아버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시구나.를 경험했다. 그 친밀감, 기도를 깊이하고 우리의 시선을 문제로부터 하나님께로 옮기면 점점 하나님과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친밀감의 축복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것이다. 기도의 사람을 만나면 “저 분은 하나님하고 친하다”고 한다. 기도도 하고, 경건해보이지만 하나님과 별로 안 친한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기도의 사람을 만나면 그 분에게 기도 부탁을 하면 중보기도가 바로 상달될 것 같다. 기도의 축복, 우리의 시선을 문제로부터 하나님께 돌릴 때 점점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가까워질 줄 믿는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것이 좋은 것인줄로 믿었는데 그것이 최선이라 구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뱀이었기 때문에 허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응답을 받으면 큰일 날 일 많다.

저도 저의 진로를 위해 기도한 것이 많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은 하나도 안 해 주셨다. 지금이렇게 돌아보면 응답안하신 것을 너무 감사하다. 여러분 몇 명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이제 아셨군요.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됐으면 어떻게 할 뻔 했나. 내가 원하던 그 여자와 결혼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안 된게 감사한 것이다.

 

여러분 깊은 기도의 자리로 가면 점점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 점점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우리를 대접할 때 죄인으로 대접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대접할 때 종으로 대접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대접할 때 믿음 없는 사람으로 무시하지 않는다. 신앙생활 할 때 우리는 주변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믿음 없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죄인으로도 우리를 종으로 믿음으로 대우하지 않으시고 아들로 대우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기도해야 만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 얼마나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지 기도할 때 시선을 들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내게 최선의 것으로 대접한다는 사실은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야 경험할 수 있다. 기도의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해 주만 바라보고 주를 바라보고 주만 따라갈 때.. 왜 문제가 없겠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보이고 늑대들도 보이고 사자떼들도 보이고, 이 길을 가는데 살아서 나갈 수 있겠나 하는 것이 많지만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께 초점을 보이고 나가면 결국은 우리 잔이 넘치게 하실 줄 믿는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길 축원한다.

 

기도야말로 가장 은혜의 사건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해주시는 하나님, 기도를 해야 가장 좋은 길로 하나님은 인도하신다. 네비게이션을 틀어놓으면 실시간으로 차 막히지 않는 곳, 가장 빠른 코스로 인도해준다. 성격 급할 땐 마음에 안 들기도 한다. 고집부리다가 네비게이션의 실시간 검색이 옳은 것을 깨닫는다. 우리 생각대로 안갈 때도 있다. 그 길 따라 가면 좋은 길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도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길로 가면 안될 것 같은데, 그 길 따라 가면 가장 좋은 길 인줄 믿는다. 기도와 황금률이 연결된 이유는 기도는 은혜의 사건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는지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더 이상 사람을 계산하고 만나지 않는다. 주는 것만큼 돌려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니가 먼저 대접하면 내가 대접하겠다는 자존심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은혜로 대할 수 있다. 내가 은혜 받은 자이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받기 보다는 남을 먼저 사랑하고, 용서받기 보다는 먼저 용서하고, 받기보다는 먼저 주기 원하는 자로 변화될 줄로 믿는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은혜의 사람인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있는가, 만약에 오랜 시간동안 기도도 하고 신앙을 지키면서도 황금률의 삶과 우리의 삶이 거리가 멀다면 아직 기도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니다.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알아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살아계시는 하나님,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면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으로 알면 황금률의 사람으로 변화될 줄로 믿는다. 그제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을,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변화되면 드디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문제도, 태산 같은 문제도 평지가 될 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한다.

 

기도하실 때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기 축원한다. 기도를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데, 몇 일을 금식했는데, 내가 몇 일을 작정 했는데를 믿지 말고 단 한번을 기도하더라도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내 힘이 아닌 성령님의 힘으로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은혜의 황금률의 사람으로 변화될 줄 믿는다.

작성자  조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