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선배를 만나다 – 권정생
그의 작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동화작가 권정생, 나는 죽고 남 살리는 삶 살다
“내 평생 모은 5천만 원으로 옥수수를 사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주시오.”
동화작가 권정생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작가다. 1969년에 발표한 단편동화 <강아지 똥>이 제1회 기독교교육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7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에서는 <아기양의 그림자 딸라이>,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됐다.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화작가로 성공한 그의 삶은 전혀 부유하지 않았다. 다섯 평밖에 되지 않는 집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다. 검소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들 사이로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길만 나 있는 문간방에 살았다.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개구리와 쥐들이 놀러 다녔다. 권정생은 그곳에서 동화를 썼다. 한 달에 몇 만 원도 쓰지 않았다.
그는 “하루치 생활비 말고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하다, 내 몫 이상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었으니 인세를 되돌려줘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2007년 5월 17일, 칠십에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위안은 하나님뿐이었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빈민가에서 5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42년에 누나들에게 처음 예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환상 속에서 십자가에 박힌 예수를 보고 죽을 때까지 마음에 새겼다.
그의 모든 작품의 밑바탕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기독교에 기반한 박애주의를 중심으로 모든 어린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자연과 생명, 북한의 어린이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바보, 거지, 외로운 노인, 강아지 똥을 그려냈다.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고, 가난하고, 하찮은 주인공들이었다. 하나같이 나는 죽고 남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었다.
그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해방이 된 후 1946년 외가가 있는 청송으로 돌아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한국전쟁 중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마쳤지만 중학교에는 진학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공부해보려고 부산에 가서 담배장수, 나무장수, 고구마장수를 했지만 끼니를 챙기기는 역부족이었다. 도리어 몸을 혹사해 병만 얻었다. 결핵, 늑막염, 폐결핵, 신장결핵, 방광결핵…. 그가 10대에 얻은 병들이다. 병은 평생 동안 그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하나님뿐이었다.
세상 것은 가벼이, 하찮게 여기는 이들은 작품에
“어지러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하면 몇 사람이나 구원받을까요?”
“나는 절대 자신 없습니다.”
권정생의 고백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호화롭게 살 수 있었지만 소박하고 가난한 생활을 택했다. 인기리에 방영되던 MBC 프로그램 ‘느낌표’에도 출연을 거부했고, 수상도 거부했다.
권정생은 떠났지만 그가 살았던 생가와 집필했던 원고들이 남아 있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819번지에 가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어린이 문학체험 학습장이 있다. 이름은 ‘권정생의 동화나라’다. 그곳에서 10~20분 남짓 떨어진 곳에 권정생의 생가도 있다. 너무 허름해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세상 것을 가벼이 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이들을 작품에 담았던 권정생. 그의 삶과 작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정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