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1/2 금)

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

패널 간증

이태현 선교사, 이은영 자매, 조호영 목사

조호영 : 안녕하세요. 조호영 목사입니다. 이 새벽에 성별, 인물, 인생의 배경도 다른 두 분을 모시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시죠.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두 분의 공통점이 있어요. CGN의 열혈 시청자시고 CGN을 많이 사랑하는 두 분이십니다. 두 분을 모시고 CGN이 삶에 어떤 부분이 영향력 미쳤는지 나누면서 패널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각자 소개 좀 해주시죠.

이은영 : 20년 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목소리를 가지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독일로 갔다가 대장암 말기로 치료차 한국에 들어왔다.

조호영 : 정말 다른 두 분이다. 이 두 분은 CGN을 사랑하셔서 첫 만남을 가지셨다. 잠깐 어떻게 CGN이 삶에 영향력을 미쳤는지 나누어 주셨다. 이태현 선교사님은 가나에서 18년차 선교사님이다.

이태현 : CGN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이라 표현하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CGN TV가 일을 하도록 돕고 있는데, 저희 선교 현장에서는 CGN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볼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 같다. 저희 사역지는 미전도 종족사역을 하기 때문에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저희 다굼바 종족 같은 경우는 98%가 무슬림인 이슬람 종족이다. 그 사이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 한 번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그 신앙을 유지하기란 어렵지 않냐. 그 외로움 가운데 싸우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가 등장을 하고 그 안에까지 찾아와주는 거다.

조호영 : 아, CGN이 직접 가나까지…?

이태현 : 네, 저희가 contact한게 아니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이런 중에 신앙생활하는 크리스천들 모습을 찾고 싶다고 해서…

조호영 : 독수리 오형제인가요?

이태현 : 네. 맞아요. 찾아와서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이나 사역들을 담아가시고, 밖으로 알려지는 좋은 계기가 됐다.

조호영 : 그 곳에 계시는 선교사님들에게도 굉장한 힘이 되시겠네요?

이태현 : 물론이다. 누군가 찾아왔는데 찾아온 분들이 같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조호영 : 방송으로만 찾아온 것이 아니라, CGN 직원들이 직접 찾아오신 거군요. 다굼바 종족에 삶을 찍은 겁니까? 그 분들이 찍은 것을 보셨습니까?

이태현 : 신기하죠. 우리나라 70년대처럼 영화 같은 것인데, 마을의 잔치처럼 화면을 설치하고 저희가 집회하기 전에 CD에 담아 보여줬는데 영화 같은 필름에서 자기가 나오고, 자기 이웃이 나오고, 우리들의 춤, 풍습이 보이니까 마을의 축제가 되는 것이죠.

조호영 : 복음의 귀한 도구가 되었네요.

이태현 : 네. 좋은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호영 : 이은영 자매님은 독일에서 20년간 사셨는데 어떻게 CGN을 접하셨나요?

이은영 : 20년 전 유학을 갔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남편을 만나게 하시고, 세 아이들을 허락하셨다. 독일에서 안정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았었는데 첫째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에게 연약한 희귀병을 선물로 주셨다. 그 때가 아마 9년 전인데, CGN TV 초창기였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으로 인해서 온 독일을 다니며 6개월 이상을 병명, 이유도 모른 채 있었다. 그 때 만난 것이 CGN TV였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는데,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하셨듯이 CGN TV의 말씀을 통해 CGN TV에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말씀을 듣고, 희귀병으로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은 대장암 말기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늘 붙잡고 살면서 이렇게 대장암 말기인데도 이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 물론 저희는 다 죽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CGN TV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TV라고 생각한다.

조호영 : 아이는 정확하게 어떤 병을 가지고 있나요?

이은영 : 결합조직이 연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유연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심장 부분인데, 심장 조직이 가장 연해서 심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이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이가 숨을 잘 못 쉬고, 밤에 할 것이 없고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CGN TV를 튼다. 거기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고난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다. 이 자리에서 제가 이렇게 대장암 말기로 왔지만 CGN TV를 통해 온누리 성도들을 뵙고 싶었다. 이 자리를 비롯해서 너무 고마움을 말씀드리고 싶었고,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고, 비록 제가 병들어서 왔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저는 믿는다. 그런 CGN TV를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비롯해 새해 아침 인사를 드린다.

조호영 : 그런데 은영 자매님이 둘째 뿐 아니라 셋째가 태어났는데, 그 아픈 가운데 셋째가 태어났다는 것을 듣고 제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너무나 의연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면서 저에게 말하는 은영 자매를 만났을 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

이은영 :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저에겐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둘째 아이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셋째 아이 때는 모든 검사를 통해 셋째 아이는 그런 병으로 태어나지 않을 거라는 의학적(세상적)인 검사로 모두 시도했지만, 결국엔 셋째 아이를 주셨을 때 ‘아,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계획이구나!’ 감사할 수 있었고, 그 아이 또한 하나님께 다시 올려드릴 수 있었다.

조호영 : 그리고 또, 자매님이 몇 개월 전에 배가 많이 아파서 독일에서 병원에 갔을 때 대장암 말기란 판정을 받았을 때 하나님 원망하지 않았나?

이은영 : 원망하지는 않았고, 기가 막혔다. ‘하나님은 이러실 분이 아니신데…’ 제가 사실은 너무 무딘지 넷째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넷째 아이가 아닌, 하나님이 암을 주셨다. 원망은 안 들고 하나님께서 둘째 아이를 키울 때 주신 말씀이 수1:9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하신 그 말씀이었기 때문에.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좌절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제가 죽어도 살 것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계획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저희를 위해 죽으신 것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죄가 사함 받았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저희를 구원해주신 것으로 말미암아 저희 병도 이미 그 때, 고쳐주셨다고 저는 믿는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드리고 싶다.

조호영 : 제가 갑자기 며칠 전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들었을 때 참 난감했다. 그런데 ‘CGN외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라는 것을 전화를 통해서 물어보고, 확인하려고 애썼을 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분의 고백은 동일했다.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이야기로 동일하게 딱 맞아떨어져서 더 이상 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선교사님 왜 그런 고백을 하게 되셨나요?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으실텐데….

이태현 : 왜냐하면, 제가 오늘 있는 이 순간도 하나님 은혜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목사님의 전화가 아니어도 누가 물어보아도 정의할 수 있는 건 하나인 것 같다. 은혜 밖에 없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좋게 주셨는데 아버님께서 목회를 하셨고, 그런데 나는 그런 목회자의 자녀인게 무엇보다 끔찍하게 싫었고, 그것이 아니고 싶어서 목회자 아닌 사람처럼 어린, 젊은 시절을 정반대로 살았는데 전화 주신 그 순간에 저를 선교사라고 부르셨듯이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순간인데 선교사라고 하는 삶의 현장이 너무 감사하다. 내 능력이 아닌데, 하나님의 은혜인거죠.

조호영 : 제가 어제 전화통화를 하면서 선교사님이 “제가 그 선교지에 가있는 거며, 선교지를 사랑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보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셨는데, 아침마다 지금 안식년으로 잠깐 나와 계시는데 그 종족을 품고 기도하신다고 해주셨는데 힘들 때는 없으셨습니까?

이태현 : 선교지나 한국 땅에 있는 이 순간이나 힘들지 않을 순 없다. 육체적으로는 정말 선교사로 부르신 하나님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워 일하다가 죽으면 좋겠다는 그 열정으로 달려갔는데 하나님께서 일은 안 시키고 자매님이 겪는 고통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아프리카에 치사율이 높은 말라리아로 높이시고 연약한 몸뚱아리 때문에 밖에 일이 널렸는데 초기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그런 제 연약함을 볼 때 제일 힘들었다.

조호영 : “이곳에 나를 앓게 하시려고 나를 보내셨나”라고 생각하셨겠네요. 그래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셨는데…

이태현 : 네.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왜냐면 내가 결정했다면 후회했겠죠.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후회를 하셔도 그 분이 하실 거고, 나는 그냥 처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단어 ‘최선밖에 없다’ 하다가 못 이루면 부르신 분이 다 안하신 거니까.. 저는 아무튼 그랬다.

조호영 : 잠깐의 전화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분을 부르셨구나…했다.

자녀들은 어떻나?

이태현 : 하나님께서 두 명을 주셨는데, 아들 둘이다. 큰 아이 서른, 작은 아이 스물여덟. 둘다 총각이다. 아이들이 한동대로 와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다 한동대를 갈 수 밖에 없었다. 사역지에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옆 나라인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냈는데, (중학교 1,2학년에 갔다)거기에서 내전이 나는 바람에 외국인들이 철수하고 아이들이 돌아올 것이 없었다. 어딘가에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하나님이 그 시기에 한동대 캠퍼스 안에 선교사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우신거에요.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 유일한 길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최고의 길이었죠. 그 안에서 중고등학교를 지내게 되었고, 대학교 까지 보내게 되었다. 거기에서 좋은 교수님들, 좋은 크리스천 마인드로 배우며 지키고 있다가 졸업을 했다.

조호영 : 큰 아이가 르완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 마음은 어떠한가?

이태현 : 저는 선교사나 NGO봉사할게 아니면 상식적인 나라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물론 제가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데 삶의 현장에서는 우리가 자라온 한국의 상식과는 안 맞을 때가 많아서 좀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때가 없을 순 없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상식적인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큰 아이는 특별히 아프리카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특별히 선교사도 아니고, NGO 봉사자도 아닌데 일을 배우겠다고 간 곳이 아프리카 르완다이다.

조호영 : 그 아이들이 아버지가 어릴 때 집을 짓고 실패하는 경험들을 통해 “내가 커서 집을 지어주겠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건축을 공부했다고 한다. 어릴 때 소망이 그 아이를 인도하는 귀한 방향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데 은영 자매는 아이들이 몇 살입니까?

이은영 : 큰 아이가 12살이고, 둘째가 하나님의 은혜로 9살이 되었고, 셋째는 6살이 되었다.

조호영 : 아이들은 엄마가 아픈 것을 알고 있나요?

이은영 : 예, 알고 있다. 제가 하나님 안에서 이런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이라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이 입력이 되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비행기를 타야 되서 인공 항문을 하고 왔다. 언제까지 숨길 수 없었고 다 오픈하고, “엄마 똥냄새 난다고” 하고 농담을 하죠. 제가 어려워했지, 아이들은 어려워하지 않는다. “엄마, 똥주머니 어서 갈고와”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자연스럽고 하나님이 다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신다.

조호영 : 남편은 어떻게 반응하시나?

이은영 : 남편은 한 몸이니 같이 아파하고 있다.

조호영 : 남편은 같이 음악을 공부하는 분이고, 듀셀도르프에서 첼로 수석으로 연주하는 분이다. 함께 연주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믿음으로 은영 자매의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남편은 마음이 다르지 않을까 한다.

이은영 : 하나님께서 저희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고 저희가 20년을 살면서 독일이라는 나라를 품고 한국에 와서 보니까 은혜 충만이고 성령 충만이다. 독일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지만 죽어가는 사람이 많고, 외롭고, 복음이 들어가야 할 곳이라는 곳을 한국에 와서 보니 더 많이 느끼고 CGN TV가 더 많이 그곳에 와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을 전하는 CGN TV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하셨다.

조호영 : 다시 돌아오면 CGN TV이네요. CGN TV를 너무 열심히 보시니까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내면 아이들이 뭐라고 그런다고 했죠?

이은영 : 엄마 CGN TV 볼 때 됐네. CGN TV 틀어줄까? 한다. 저희 가정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어린 예배(나는 예수님이 좋아요)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제가 채워줄 수 없는 영적 공급을 받고 있다. 많은 유학생들도 가족 없이 떨어져서 외로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공부하면서 CGN TV는 생명과 같은 영적 공급의 방송이구요. 옛날 40년 전에 가서 그곳에서 생활을 하셨던 교회분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친다.

조호영 :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정말 마음대로 예배하고, CGN TV를 마음대로 보고 있는 우리는 그 혜택을 마음껏 못 누리고 있고 오히려 먼 곳에 계시는 두 분께서는 가장 많은 은혜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은영 : 정말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 같다.

조호영 : 정말, 두 분은 홍보대사가 되었다.

저희는 오늘 ‘고난’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난이라는 단어보단 은혜가 더 많이 나왔다.

“선교사님 이번에 새벽 기도가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는 주제로 저희가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선교사님에게 새벽은 언제입니까?”

이태현 : 우선 시간적으로 저에겐 지금이 새벽인데, 18년 사역을 해오면서 한 곳에서 종족 사역을 했다. 처음에는 이방인 취급을 받다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다가 지금은 이웃이 됐고,

나이가 있으니까 어른들 그룹에서 추장님께서 추장으로 임명해주셔서 어느 마을을 가도 그곳에선 제가 편하다. 한국은 저를 인정을 안 하지만, 그래서 아무튼 우리의 이웃이 되어가는 행복들이 있고 사역적으로도 무슬림 지역이지만 개척이 되고, 성도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이웃들을 위해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클리닉도 짓게 하시고, 현대문명 속에 따라가야 될 컴퓨터 학교도 세우게 하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이 심겨져야 하므로 이슬람 지역에 기독학교도 세우고 해서 완공이 되었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기쁨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라고 하신 것이다. 저는 이제 할 만하고 제가 몸을 안 굴려도 혼자서 굴러 갈만큼 (기동력이 되는데) 잘 돌아가는데, 그래서 이제 가서 살펴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혜택이 없는 지역의 백성을 보게 하셔서 개척의 부담을 주셨다. 지금 개척지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조호영 : 연세가 61년 소띠다. 37살에 선교지로 가셔서 18년이 되셨다.

이태현 : 그래서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힘들었던 부분이 제가 그 크신 하나님의 일을 해야하는데 저는 무능한 존재였잖아요. 지금도 하나님께서 개척하라고 나를 옮기시는데 저는 너무나 약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 이 상황인데 어두움이 짙은 새벽 같은 느낌이다. 새벽이 아무리 어두워도 찬양처럼 찬란히 떠오를 빛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달려가고 있다. 상황적으로는 다굼바 종족 자체가 새벽인 것 같다. 정말 암담하고 사람을 만나 말을 하려고 해도 예수라는 말 자체가 튀어나오는 종족이기 때문에 정말 깜깜해요. 제가 능력이나 지혜나 달란트로는 도저히 접촉할 수 없고, 접근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떠오를 빛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선교사로 지내는데 고난이나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으로 은혜로 보낼 수 있는 축복이 있는 것 같다.

조호영 : 곧 떠오를 동트는 빛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계시군요.

우리 선교사님에게 다가올 새벽을 찬란한 빛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기대하는 소망이 있는 시간이 새벽이시군요. 은영 자매님은 어떠신가요?

이은영 :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아이가 연약한 몸으로 신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태어날 때부터 ‘이 아이는 죽을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말만 들을 때마다 그 다음날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찬양으로 만남을 통해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귀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늘 도우시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도움을 어떻게 저에게 지혜로 주시고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금같은 어두운 시간들을 지내게 하시면서 한 가지 저에게 훈련시키고 알게 해주신 사실은 “은영아, 믿어라. 믿고 맡겨라. 내가 다 이루었다” 그 훈련을 계속 받고 있고 그것을 알고 믿고 나아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싶다.

조호영 : 마지막으로 이방인이신 두 손님께서 이곳에서 살고 있었던 저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을 나눠주셨으면 한다.

이태현 : 특별한 말씀보다는 제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습관적으로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을 나누고 싶어요.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생각을 한다. 몸을 뒤척이면서 눈을 뜨기 전에 하나님께서 오늘 하실 일에 대한 소망을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오늘 어떤 일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있다. 비가 오나, 50도가 넘는 훠시즌이라고 하는데, 내가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말라리아로 고생할 때나) 그냥 아침이면 하나님께서 오늘 어떤 일을 하실까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루에 무슨 일이 있어도(배신을 당하고, 상처가 나고, 건축하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어떤 때는 똑같은 말을 한다. “하나님 오늘도 은혜 였다”라고 하는 호흡처럼 하는 말이다. 성도님들도 눈을 뜨기 전에 한 번 해보세요. “하나님 오늘, 어떤 일을 하시렵니까, 기대 됩니다.”라고 해라.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 오늘 은혜였습니다.”로 마무리 지어라. 이것은 제가 한 어르신을 통해 배웠는데, 70살 정도 되신 분에게 배운 것이다. 20대 때, 사업적으로 완전히 성공을 해서 무슬림 사회 속에서는 인정받는 어른이셨다. 60즈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분이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20대에 이룬 성공, 30-40대에 이른 가속도의 성공을 50대에 다 잃었다. 여러 명들의 부인들이 다 도망갔고, 여러 명의 자녀들이 밥도 해주지 않고, 씻을 물도 갖다 주지 않는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된 상황이다. 이 분이 세상 것을 다 놓쳤는데 하나 놓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 분은 그런다. “나는 이제 새로운 빛을 만났다. 이 빛을 잃고 싶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그 분에 비하면 제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작은 것을 잃고도 가슴을 칠 때가 많았다. 하나님께서 그 분을 통해 메시지를 주셔서 눈 뜨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기대한다.

조호영 : 우리 모두 고백했으면 좋겠다. “하나님 오늘 기대합니다. 저녁에 자기 전에 하나님 하루가 은혜였습니다.” 잊지 말고 우리는 매일매일 고백했으면 좋겠다.

이은영 : “사랑합니다”라고 말씀하고 싶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제가 독일에 오기 전에 제 병을 알고 독일에서 치료를 해야 될지 한국에서 치료해야 될지 하는 갈등 속에서 여름 안에 독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이 있었지만 독일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제가 나의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CGN TV를 통해 만난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제권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랑을 나누고 싶고, 전하고 싶다. 저는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올 한해도 우리가 받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사랑으로 올 한해 살기를 소망한다.

조호영 : 우리 은영 자매가 소프라노시다. 자신의 삶을 대변해주실 수 있는 곡을 준비해오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 첼로로 연주하면서 챔버들이 함께 연습했다. 우리 모두의 고백으로 올려드렸으면 좋겠다.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