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1월17일)

간증_오동찬 집사

오동찬

 

작년에 광주 MBC가 창립 50주년이 되어 온라인 투표를 115만 명이 했는데 “선생님께서 최경주 골프선수 다음으로 표를 많이 획득을 했다.”고 희망인물로 선정이 되고, 희망인물 패를 받고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아빠가 전남 광주 희망인물로 선정이 됐단다.”고 하니 “아빠 제발 남들에게 희망을 주지 말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세요”라고 했다.

 

소록도는 물론 서울보다는 따뜻하지만 섬이다보니 외풍이 심하다. 집사람과 티격태격한다. 바닥은 따뜻한데 얼굴은 시베리아처럼 추워서 수건으로 가리고 잔다. 여자 애들이다 보니 보일러를 빵빵 틀자고 말을 하지만 저는 공무원이다 보니 기름을 아끼려고 무단히 노력을 한다. 저녁만 되면 집사람과 티격태격한다. 저는 가장이고 돈을 아껴야하기 때문에 아껴서 써~ 라고 하면 집사람은 “당신은 여자를 몰라. 여자는 따뜻하게 자야해”하면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가끔 바가지도 많이 긁는다. 시작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온누리교회도 목사님과 성도들이 사이좋게 지내시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저희 딸들과 집사람과 지내듯이 소록도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똑같이 가족같이 지내고 있다. “여보 가서 무슨 말 할 거야?” 하는 아내의 말이 있었다. 걱정이 되요. 저는 그냥 한센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센병 환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제 식구, 제 가족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좋은 일이 있으면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환자분들의 평균연령이 70세다 보니 싸우기도 하고, 고집도 피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다음날 아침이면 커피마시면서 화해하면서 웃기도 하고 한다.

 

저는 결코 대단하거나 남들과 다른 삶을 절대 살고 있지 않다. 그냥 평범한 두 딸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일 뿐이다. 그런데 제가 소록도에 20년 사는게 대단한게 아닌데 주위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과거에 한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센병은 법정 상군 전염병이자 유전병이 아니다. 균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태반을 통과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병이지만 지금까지 원인을 키우는 발견은 했지만 전염 경로가 확실치 않다. 왜? 한센병 걸린 환자의 피를 뽑아서 배양을 해서 검사를 해야 하는데 환자들에게 피를 뽑는 순간 균이 다 죽게 된다. 너무 약하다. 그래서 과거에 나이 드신 어르신 분들은 불주사라고 어깨에 맞아봤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건학적 예방 사업이 잘 돼서 아이들이 태어난 지 2개월 안에 BCD 결핵예방 접종을 의무적으로 맞는다. 그 주사를 한 번만 맞아도 한센병의 99.9%는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1950년대에 한센병 치료약이 들어와서 1980년대에 상용화가 되다 보니까 약 5년전부터 한센병 실환자가 발생이 0%다. 물론 작년에 5명의 신환자가 발생했다. 그 분들은 동남아 이주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아직도 동남아, 중국인들 중에서는 한센병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료가 된다. 즉 한센병에 걸리게 되면 주사를 한 번 약을 3개월만 복용을 해도 다 치유가 된다. 그래서 WHO에서 우리나라는 한센병이 다 치유된 나라라고 인정한 국가다.

 

목사님에게 물었다. “성도 분들께서 손양원 목사님 영상을 보셨나?”라고 하니 “보셨다”고 한다. 한센인들은 우리와 살지를 못한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약속한게 있는데요. 제가 질문한 번 해보겠다. 어깨 운동한답시고 손을 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연세 드신 분들도 있는데 한 번 물어보겠다. “자녀분이 한센병인 부모를 둔 자녀를 데리고 와서 사랑하니까 결혼해서 살겠다. 나는 허락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목사님 포함해서 4분 계셨다. 실은 100명 있으면 100분이 있다면 강의를 안하겠다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다시 한 번 질문하겠다. “한센인들이 여러분들과 매주 온누리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렇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되고 한센인 자녀와 결혼시켜도 된다. 왜? 이 아이는 전염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한센병으로부터 치유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작년 4월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한센인 자녀가 결혼을 하기로 해서 청첩장도 만들었다. 저와 집사람이 대리부, 대리모로 갔다. 이 친구가 10일 전에 연락이 왔다. “선생님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파혼 당했습니다.”라고 했다. “제 마음이 꺼림칙해서 신부측 부모님께 제 부모가 소록도에 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당장 이 결혼 없었던 걸로 하자고 파혼 당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비록 선녀와 나무꾼은 아니지만 아이 낳을 때까지 말하지 말지. 왜 말했냐?”라고 물으니 그 친구는 “그래도 신부 측 아버님이 장로님이시고 어머님이 권사님이시기 때문에 충분히 사랑으로 감싸 안아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는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쉽게 치유가 된다. 그러나 과거에 나병, 문둥병이라고 불리우고 특히 과거에는 한센인들이 애들 간을 빼먹는다, 어린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문둥이에게 갖다 줘버린다는 소리로 듣고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한센인들은 더불어 우리와 살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만약에 이분들을 사랑하고 좋아했으면 굳이 소록도라든지 여수 애양원이라든지 전국의 90여곳에 정착지가 있다. 이 분들만 모여산다. 이렇게 모여 살지 않아도 되는데 과거에 한센병에 걸리게 되면 저도 비록 딸들과 섬에 살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벌벌벌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과거에는 가족에 한센인이 있으면 다락방에 숨긴다든지 내쫓는다. 또 집안이 망할 것 같아서 호적에서 파인 분들도 꽤 많다. 이 분들은 소록도로 온다. 그러면 내년이면 소록도가 100년이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병원인데 일본인들이 정말 한센인들을 사랑해서 그랬겠습니까? 아니다. 여수 애양원은 선교사님들이 돌봤기 때문에 치료 요양을 해주셨다. 그런데 소록도는 너희 부모들도 너희들을 버렸는데 너희 동네에서도 버렸는데 한센인들이 과거에 수업을 받고 있다. 그 병이 발연이 되면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너희들은 버림을 받았는데 우리가 너희들을 사랑으로 대하겠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환자분들이 죽으면 세 번 죽는다고 했다. 첫 번째 그냥 죽는다. 두 번째 시신 해부를 당한다. 세 번째 화장을 당한다. 참고로 소록도는 85%가 기독교고, 15%가 카톨릭이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기도제목은 ‘주여 제발 주일날 죽게 해주세요.’가 기도제목이었다고 한다. 제가 물어봤다. 왜 주일날 죽게 해주십시오가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습니까? 라고 하니 주일날 죽게되면 저같은 국가 공무원이 근무를 안 하기 때문에 시신 해부를 안 당하고 바로 화장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신 해부가 끔찍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신 해부도 일제 강점기 때만 한게 아니라 1980년대까지 했다. 또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결혼을 한다. 소록도도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100% 정관수술을 당한다. 또 과거에 도망가다가 잡혀서 들어오면 감금실에서 90일간 16시간 두드려 맞는다. 그리고나서 풀어주면서 정관수술을 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때만 한게 아니라 1986년까지 했다. 제가 95년에 소록도에 갔다. 여러분은 예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한센인들은 과거에 소록도에 들어오면 언제 나가냐 죽을 때 나갔다. 95년에 제가 갔을 때 환자들이 손이 10개 이상 가지고 계신 분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자장면이라든지 그래서 모시고 나가면 그 때도 이름을 적는다. 잘 안 보내준다. 95년에 환자들을 데리고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 그럼 메뉴판도 적지 않게 한다. 당연히 미용실에서는 한센인이라고 받지 않는다. 식당에 가면 저는 공손이 주는데 그 당시에는 싹~ 자장면을 던진다. 자장면이 시커멓게 튀겨도 그 식당은 정말 고마운 식당이다. 받아주기 때문에. 올해 2015년이다. 지금 보통 점심시간이 11시 반에서 1시 반인데 그런데 한센인들이 저에게 “오부장 우리 밥 먹으러 갈까?”라고 하면 10시 조금 넘으면 간다. 손님 없을 때 가서 먹는다. 그나마 그 식당은 정말 고마운 식당이다. 섬 인근 육지에 10개 식당이 있다면 아직도 우리 한센인들을 받아주는 식당이 있다면 3곳 정도밖에 없다. 가서 이발하려고 미장원에 들어가면 아직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용단체가 많이 와서 봉사를 해 준다. 이게 현실이다.

제가 과거에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2가지 계명을 주셨잖습니까? 두 번째 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에 괄호열고 한센인 빼고 적어놓은 적도 있다. 지금이야 다리가 나아져서 차로 다닌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다닌다. 배를 타고 오면 사람들은 저를 보고 손가락질 한다. “쯧쯧, 젊은 놈이 안됐다. 쟤는 눈썹이 있네.”라고 한다. 한센병에 걸리게 되면 임상 증상이 바로 나타나는게 아니라 3년에서 9년안에 나타난다. 즉, 말초신경이 괴사가 되어버린다. 조기 치료가 안됐을 경우 그렇다. 그러다보니까 손가락 발가락 20개 가진 분들이 거의 없다. 제가 시편 119편 71절을 과거에 묵상하다가 운적이 있다.

2007년까지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이 돼지를 키웠었다. 정말 지저분했다. 그래서 방에 파리도 많고, 쥐도 많고, 바퀴벌레도 많았다. 이 분들이 돼지를 키우는 곳에 갔다오면 샤워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주무신다. 진료를 하고 있으면 그 방에 와서 어서 “오선생 이것 봐!”하고 손을 흔든다. “그게 뭡니까?” 하면 “어젯밤에 쥐가 뜯어먹었어.”라고 하는 소리가 “나도 좀 아파 봤으면, 고통을 느껴봤으면 좋겠어.”라고 하소연을 한다. 저는 그 때 그 뜻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소록도 2년이 되었을 때 제가 몸이 굉장히 아팠다. 혹시 내가 나병?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늘로 제 손을 찔러 봤다. 너무 아팠다. 무릎 꿇고 회개했다. 저는 단순히 저랑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고통 좀 느껴봤으면..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바늘로 찔러보니까 너무 아팠다. 고통을 느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고통을 못 느꼈으면 제 손도 절단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통을 느껴봤으면 하는 말을 깨달았다. 왜? 미리 통증을 느끼면 조심하고 예방을 할텐데… 감각이 없다보니까 과거에는 연탄불도 맨손으로 옮긴다. 그냥 맨 연탄이 아니라 불이 붙은 연탄도 옮긴다. 왜? 집게를 사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 진료를 해 놓으면 밭에 가서 일을 한다. 그럼 여기서 피고름이 나면 아프니까 안하는데 이분들은 통증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한다. 그러다가 손을 자르고, 자르다보니 손가락 발가락을 20개 가진 분들이 없다. 저는 항상 제 손가락 10개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한센병에 걸리게 되면 서로 눈을 봐 보십시오. 눈동자를 보십시오. 어때요 눈동자를 보면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눈이 있으시죠? 그런데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까만색이 없으신 분이 참 많다. 가끔 소록도에 오시면 아시겠지만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 그걸 멋으로 끼고 있는게 아니라 빛이 비추면 우리는 눈을 감는다. 한센병에 걸리면 눈이 안 감아진다. 그래서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낀다.

저는 참고로 치과 의사다. 파트 중에 구강 안면 성형외과를 서울에서 전공했다. 코가 콧구멍을 갖고 계신 분이 별로 없다. 아랫입술이 쳐져버린다. 환자분들이 외적인 고통,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여러분들의 눈이다. 왜 나도 똑같은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인데 왜 나는 여러분과 더불어 살 수 없는가? 하는 한탄을 하신다.

저랑 같이 식당에 가게 되면 이 분들이 저에게 미안해한다. 괜히 본인 때문에 피해를 당할 것 같아서다. 실은 제가 구강외과를 한 이유가 동남아인은 언청이가 많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살려고 공부를 했고 수료를 받았는데 기도하는 도중에 소록도를 보여주셔서 소록도를 가게 되었다. 실은 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서 말기 암에 걸리셨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도 안 된다고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수술을 무사히 끝나고 5년만 살게 해주신다면 제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 일 하다가 죽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수술도 무사히 끝나고 어머니도 5년만 살게 하시고 돌아가게 하셨다. 그 때 후회한다. 10년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걸…

오늘이 아버님 팔순이다. 어머님은 19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은 상태로 소록도로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첫 마디가 ‘너 미쳤냐’ 왜 당신은 어릴 때 주위에 돌아다니는 한센인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막연한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과거에 한센인들이 오면 밥도 주고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당신의 아들이 소록도에 간다니까 당장 한다는 소리가 ‘너 미쳤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면 가라.’고 하셨다. ‘저 어머니 때문에 갑니다.’ 라고 할 순 없잖아요. 저는 다만 ‘저의 약속을 들어주셨기 때문에 즐겁게 갑니다’라고 말씀을 못 드리고 어머님께는 소록도에 가게 되면 1년만 있으면 의사들은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기 때문에 1년만 하다가 오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록도에서 1년만 하다 오면 의사들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하고 소록도를 갔다. 첫 환자가 저를 감동을 주셨다. 환자 한 분, 여자분이 들어오셨는데 아랫입술이 쳐져있었다. 한센병에 걸리면 아랫입술이 쳐진다. 침이 질질질 흐른다. 손이 없다. 침을 흘리면 손수건으로 침을 닦는다. 이 분들은 손으로 닦지만 얼굴의 껍질이 벗겨진다. 또 너무나 환경이 지저분하다보니 파리와 더불어 온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라고 하니 “얼굴이 부어서” 손이 없다보니 양치를 할 수가 없다. 얼굴에 고름이 든 환자들이 온다. 그리고 코로 잘 숨을 못 쉬다 보니 진료를 하다보면 얼굴을 하게 되면 제 얼굴에 침을 퉤퉤 뱉는다. 그래서 저는 로션을 얼굴을 바르는 횟수보다 우리 환자분이 제 얼굴에 침으로 선사하는 로션을 바르는 횟수가 더 많다. “침으로 로션을 바르다보니 버짐도 안 나고 괜찮지요.” 어제도 진료하면서 투~ 하신다. 호흡하기가 힘드시니까요. 너무나 불쌍한거에요. 그 환자를 보고 울었다. “왜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했다. 수술하고 지금이야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보다 잘 살지만 과거에는 형편이 어려우셨다. 그러나 그 당시 제 월급이 23만원이었다. 수련 받았을 때 월급이 80-100만원이었는데 월급이 적었다. 그 돈은 제게 많은 돈이어서 환자분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다드리고 틀니도 해드리고 집사람이 저에게 구박을 많이 했었다. 출근 하려고 하면 “여보 쌀 떨어졌어.” 저는 걱정이 안됐다. 출근하면 환자분들이 부식으로 쌀도 가져다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재밌게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 집사람이 출근하는데 쌀 떨어졌다고 하면 마음이 찢어진다. 치과의사인데. 그런데 그 때는 집 식구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환자들만 들어왔다. 수술하고 위해주고 하는 것으로 일상을 반복했다. 수술 없는 날은 가운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환자분들이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고 그 땐 참 교만했죠. 가운을 벗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소록도는 4개 병동과 7개 마을이 있다. 마을을 돌아다닌다. 환자분들이 선생님 오십니까? 하며 반기는게 아니라 문을 닫는다. “왜 그러는 줄 압니까?” 너무나 의사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혹시 자기들을 신고한다든지, 조사를 하러 온다든지 과거에 시신 해부를 당한다던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의사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래서 가운을 벗고 돌아다닌다.

제가 한 가지만 교만하겠다. 아랫입술이 쳐진다. 그러면 침도 흘리고, 손도 없다보니 손에 고무줄을 묶고 식사를 하신다. 밥을 푸기도 힘들지만 입안에 들어가도 대부분이 음식물이 빠져나온다. 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봐도 마음이 아프잖아요. 저 수술을 해줘야겠다고 하며 문헌을 찾아봤더니 방법이 없다. 물론 이쪽 근육끼리 묶는 수술이 있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입이 안 벌어진다. 그래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수술 방법을 주시더라. 입술 두툼한 사람들은 얇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을 이용해서 6-7시간 수술을 한다. 환자분들도 자의 반 타의 반 거절하기도 하고 싫다고 하는게 대부분이었는데 한 분 이 와서 성공을 하니까 다들 와서 하시더라구요. 약 450여분의 수술을 다 해드렸다. 그런데 그것은 제가 한게 아니다. 저는 환자분과 함께 기도하고 제가 한 것은 칼을 대고 꼬맨 것 밖에 없다. 정말 치유는 하나님이 해주시더라. 그렇게 기도하고 하면…“주님 당신 보기에 불쌍하지 않냐고.. 그러면 침 흘리지 않고 밥이라도 잘 먹게 해주셔야하지 않겠냐고”기도한다. 그런데 이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입술이 붙는다. 지금 만 20년이 지났는데도 입술 처진 분들이 없다. 이것은 제가 한게 아니다. 그리고 2002년에 브라질에 가서 브라질에서 세계 나병 학회를 이 케이스 보고를 했더니 부끄러운 이야긴데 제가 최초로 했다고 해서 오스 메소드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컬한 것은 한센병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병인데, 그 많은 의사들이 한센인들에게 접근해서 진료를 해줬다면 충분히 이런 고통을 안 당 했을텐데.. 2007년에는 의사가 저밖에 없을 때가 있었다. 안 믿겨지시죠. 국립병원인데…정규직 의사는 원장님과 저뿐이고, 공중보건의가 5명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원장님이 그만두고 가셨다. 그리고 원장 직무대리를 10개월 했다. 공중보건의 4월 말, 5월이 된다. 전임의들도 3월말에 가버린다. 저 혼자 팔다리 썩어 들어가는 것 자리고, 내과 들어가는 것 다 본다. 물론 당직도 다 본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배가 아파 병원을 갔는데 치과 의사가 보고 있다면 화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화나겠죠? 당장 그 병원 고소하겠죠. 여러분은 그러시겠죠. 환자들을 데리고 밖에 있는 병원을 가면 되지 않느냐. 물론 모시고 간다. 그런데 잘 진료하지 않는다. 우리 병원에 한센인이 저 병원에 문둥이들이 진료받네 하면 일반인들이 잘 안간다. 그래서 잘 안받아준다. 지금은 사정해서 가서 진료 받는다. 그런데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2014년 이야기다. 우리 환자들이 입원을 한다. 식판을 가져온다. 숟가락에 브이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제가 물어본다. 거기 밥 갖다 주는 분이 “소록도에서 오신 분들과 구별하려고 한다.” 그렇다. 제가 아까 결혼에 대해 물어보고 정말 여러분들이 예배 볼 수 있는가에 대해 물어봤을 때 너무 많은 분들이 손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제가 오죽했으면 한센인 빼고 이렇게 써놨겠습니까 특히 저 같은 기독교인들이 한센인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잘못된 구약의 번역 때문이다.

 

어제 두 목사님이 오셔서 출애굽기 이야기가 나왔다. “저는 별로 모세를 안 좋아합니다.”라고 하니 깜짝 놀라시더라. “출애굽기 4:6절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 때 모세가 바로 순종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순종을 안하다보니 시험을 하신다. 가슴에 손을 넣어보라고. 이게 바로 한센병으로 나온다.” 이것도 부족해서 성경은 레위기 13-14장을 나병에 대한 규례를 2장에 대해 나온다. 그런데 그것 아니다. 임상증상 맞지 않는다. 히브리어로 차라 아트라고 해서 피부질환이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민수기 12장을 보면 미리암이 모세에게 대든다. 하나님이 준 벌이 한센병이다. 그래서 한센병은 부정한 병으로 인정되어서 일반 성도들과 합치지도 못한다.

엘리사 시대 때도 마찬가지다. 나아만 장군이 한센병이 치유가 된다. 그것까지도 아름다운 현상인데 그놈의 게이사가 욕심 때문에 옮긴 병이 한센병이다. 구약은 그렇게 표현해놓았다. 실질적으로 마 8:2-3절을 보며 회개를 많이 했다. 처음에 가서 진료를 할 때 거리를 두고 진료했다. 솔직히 말씀 드리겠다. 그러다가 마태복음 2-3절을 보며 정말 회개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한센인이 와서 치료받기 원합니다 라고 말씀했을 때 말씀으로만 하면서도 분명히 치유가 되었을텐데 ‘만지시면서’라는 구절이 있다. 제가 회개 많이 했다. 우리 한센인들 정말 만져주는 것 좋아한다. 아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지금은 만져주고 안아주기도 하고 여자 환자분들에게는 볼에다가 뽀뽀도 해드린다. 가끔 할아버지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그렇게 산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처음 갔을 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수고하시게”라고 했다. 정말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무료로 틀니도 해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성형 수술을 6-7시간을 해드려도 인간이니까 “오 선생 고마워”라는 소리가 듣고 싶기도 했지만 절대 “고마워”라고 하지 않으신다. “오선생도 1년 있으면 떠날건데…” 우리가 정을 주면 떠나면 우리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정주기 싫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진료하고 수술이 없으면 매일 마을로 간다. 물론 가운을 벗고 간다. 그 때는 제가 했던 일은 천장에다가 노란 파리장 딱지를 붙인다. 그 다음날 가면 그 파리장이 시커먼 색으로 변한다. 왜, 환자들이 돼지를 키우셨다. 그 당시는 샤워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주무시고, 청소라는 것도 없었다. 일단 몸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남생리라는 마을에 96세 되신 정완수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 할아버지가 저를 불러서 짐을 옮겨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어이~ 오선생 밥 좀 먹고가~”라고 하시더라. 참고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저녁 식사를 4시에 하신다. 아침을 5시반, 6시반에 드신다. 새벽기도를 4시에 하거든요. 2시 정도가 되면 새벽기도를 하러 가신다. 아무리 못해도 3시간 이상 기도하신다. 그래서 이제 오후 4시 좀 넘으면 밥을 먹고 가라고 하니까 그 당시 할머니는 조복권 할머니인데 86세시다. 밥을 내오시는데 밥상이 녹이 너무 많이 슬었다.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도 오래된 밥그릇이다 보니 지저분하다. 밥통에서 밥을 가지고 오시는데 2-3일만 놔둬도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잖아요.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밥 언제 하셨어요?”하니 “지난주에 해놨나?”라고 하시는거에요. 밥이 노란색이 아니라 단단했다. 반찬은 고추, 된장, 물, 김치였다. 김치를 내오셨는데 김치도 손이 없으셔서 흐물하다. 밥상을 차려오니까 먼저 온 손님들이 있다. 파리들이 와서 쫓아도 가지 않는다. 목사님은 그 밥 드실 수 있겠습니까? 정말 못 먹겠더라.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믿음이 좋으시다구요. 밥 먹기 전에 꼭 기도하신다. 그런데 저는 그 때 후회했다. 앞으로 성경을 많이 보면 안 되겠구나 했다. 기도를 하는데 마태복음 15장 말씀이 생각나는 것이다. 나오는 것이 더럽지 들어가는 것은 똥으로 나온다 라고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먹었다. 정완수 할아버지는 쳐다만 보셨다. ‘이놈이 먹나 안 먹나’했다. 그래서 일단 밥이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물에 말아 먹었다. 그 다음날 진료를 하는데 소록도에 7개 마을이 있거든요. 새 마을에 사는 분이 오셨다. “어이 오선생 어제 정노인 집에 가서 밥 먹었다매”라고 하시며 “그럼 오늘 우리집에도 와봐”라고 하셨다. 소록도가 참 좋다. 서울은 별이 안보이죠. 소록도는 별도 보인다. 비가 오면 차가 정말 깨끗해진다. 단점은 소문이 금방 퍼진다. 한 집만 가면 그 다음 집은 어렵지 않다. 도둑이 처음엔 도둑질하기 어렵지만 그 다음엔 쉽잖아요. 그 다음 집은 좀 나았다. 정노인 집은 바로 방 옆이 돼지방이었다. 그런데 그 새마을은 좀 높은데 있다 보니까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돼지방이 있다. 그래서 파리가 좀 적다. 그래도 가서 먹었다. 가끔 저희 환자분들이 제가 팥죽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른다. “어이 팥죽 쒀놨어. 와”라고 한다. 오전에 팥죽을 해놓았기 때문에 오후에 가면 팥죽은 다 식고 파리들이 붙어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눈이 안 좋으시니까 손짓으로만 한다. 그러면 한 꺼풀 걷어내고 그냥 먹는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20년째 먹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배탈 난 적이 한번도 없다. 전 이게 기적이라고 본다. 그 이후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에게 “고마워. 감사해”라고 하신다. 그리고 지금은 밖에 나가 밥을 먹을 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밥값을 내신다. 그럼 저는 내라고 한다. 너무나 행복해하신다. 1년이 지나도 이놈이 안 나오니까 어머니가 오셨다. 정말 소록도에 살다보니까 집에 간다는게 환자분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한 달에 환자가 20-30명 되다보니까 못가겠더라. 어머니가 1년이 지나도 안나오니까 오셨다. 그러면서 환자분들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화를 내실 줄 알았지만 “동찬아 미안하다. 이렇게 불쌍한 분들인지 모르고 너한테 못 가게 해서 미안하다. 엄마 대하듯이 대해라.” 그리고 그 말씀하시고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남들은 저에게 참 훌륭하다, 대단하다 하지만 아직도 이쪽 가슴 속에 영원한 불효자로 낙인 찍혀 있다. 오늘이 아버지 팔순이라서 부랴부랴 끝나서 소록도에서 식구들을 데리고 광주로 가야되는데 항상 아버님 생신때만 되면 좀 죄송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그 분과 약속했기 때문에 그 분이 저의 약속을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냥 그 약속을 지키면서 살 뿐이다. 그리고 소록도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10년 전부터 두 딸을 데리고 외국에 있는 한센인 마을과 무의촌에 가서 진료를 하고 온다. 가기 위해서 매달 60만원씩 돈을 모은다. 그런데 둘째달이 미친 중2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둘째딸이 여섯 살 때부터 해외진료를 쫓아다녔다. 도와야 된다. 저는 진료를 하고 집사람은 과거의 간호사였기 때문에 진료를 하면서 피가 묻잖아요. 그럼 소독을 한다. 둘째는 소독기구를 갖다주고, 첫째는 약을 나눠주고 외국인들에게 주는 역할이 있다. 둘째의 소원은 “아빠 저의 소원은 저는 캄보디아, 베트남, 몽골, 말고 제발 다른 나라 가는게 소원입니다. 홍콩이나, 괌이나, 하와이나, 싱가폴을 가는게 소원입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2월에 필리핀을 간다. 4명이 가면 참 좋은 것은 올 때 선물을 안 사와도 되니까 좋다. 항상 4명이 같이 간다. 500만원 정도 있으면 무의촌에가서 진료를 하고 200만원 정도면 무료급식을 하라고 준다. 그런데 원래는 전 한 번만 간다. 돈을 모아서 그런데 두,세번 가라고 돈을 주시더라구요. 정말 한 번 갔다올 때마다 힘든데… 작년에는 진료를 하고 거기 선교사님이 5만원이면 우리는 목사님과 세 명이 자장면, 탕수육을 먹으면 5만원이 들어간다. 거기는 60명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200만원을 드렸더니 그러면 무료급식을 할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 큰 애가 “개업을 했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주겠냐”고 하더라. 제가 1억 생기면 무료 급식하는 곳으로 줄게 라고 했나보다. 저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작년에 1억원 상당에 상을 받았다. 고민했다. 효도할 겸 장인, 장모님을 위해 조금 떼어드리고 우리 둘째딸 소원대로 네 나라 뺀 나머지 나라를 좀 가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서 둘째는 너무 행복해했다. 집사람도 너무나 좋아했다. 우리가 가족회의를 했다. 큰 딸이 한다는 소리가 “아빠는 참 나쁜 사람인 것 같다. 왜? 작년에 저에게 뭐라고 했냐 1억원이 생기면 굶고 있는 사람에게 기부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더라. 저는 집이 없다. 집이 없어서 관사에 살고 있다. 예전에 집사람이 애 낳을 때 자연분만을 할줄 알고 자연분만비만 남겨놨는데 부인이 몸이 약해서 수술을 하다보니까 수술 비용이 세배로 들어갔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퇴원을 못 시킨 적도 있었다. 치과 의사인데…

그래서 1억원이 생기니까 제 나름대로 욕심이 생겼다. 큰 딸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아빠 이거 기부하기로 하지 않았냐고…”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듣고 아침에 생명의 삶으로 묵상을 하는데 그 단락이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 묵상을 하는 것이다. 설마…하며 구약으로 묵상을 하고 오전에 근무를 하고 퇴근 할 때쯤 되면 신약으로 다시 성경을 보는데 하필이면 그 날 묵상한게 똑같이 그 구절이 나왔다. 눈을 감고 아프리카 기아대책 본부에 써서 보내는데 손이 덜덜덜 떨렸다. 저도 아직 인간이 덜 됐구나 라고 하신 것 같다. 큰 애는 우리 집은 참 부자라고 이야기한다. 큰 애는 우리는 마음이 부자야. 라고 이야기하지만 미친 중2는 그건 없는 사람이 하는 소리야.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는 참 감사한게 있다. 제가 20년동안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해드린게 없다. 솔직히 이건 사실이다. 고구마 튀김을 좋아한다면 손이 세 개 밖에 없는 할머님이 고구마를 썰어서 튀김을 해 오신다. 정말 맛있다. 제가 입은 넥타이, 와이셔츠 모두 환자분이 주신 것이다. 아들로 생각하니까 주시더라. 과거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천원, 이천원 주시던데 지금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만원, 이만원씩 주시며 돈을 벌어온다. 그래서 제 호주머니도 2만원이 있는데 제가 온누리교회에 간다고 기도부탁을 했다. 그저께 목요일에 할머니한 분이 오셔서 기도할테니까 2만원을 주셨다. 이것을 꼭 쓰고 가야한다. 제가 이 분들에게 해드리는 것은 없다. 이 분들이 너무나 감사한게 뭐냐면 저를 가족으로 생각해주셨다. 그게 정말 감사할 뿐이다. 기도제목 하나 있다. 20년 동안 소록도에 머무르다 보니 거의 지겨웠다. 물론 10년 전부터 외국에서 한센인 마을에서 진료를 하게 된다. 중국은 약 천 만명 정도 되고, 인도는 약 이천 만명 정도 있고, 동남아에도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소록도를 접고 외국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 가서 도울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한센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이 만드신 정말 아름다운 창조물이기 때문에 똑같이 대해주셨으면 한다.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훌륭한 의사도 아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20년 이상 근무하신 분들 계시잖아요. 저도 그런 분들과 똑같다. 그렇게 바라봐주셨으면 더 감사하겠다.

작성자  김남원